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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이산저산구름 2010. 2. 4. 14:43

 

[배움,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김 태현 (사회디자인연구소 이사/책임연구원)

 2010년은 매우 의미 있는 해입니다. 4.19 민주혁명 50주년이고 5.18 광주민중항쟁 30주년, 6.15공동선언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2010년 지방선거는 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의 의미와 생활정치를 뿌리 내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제 정당 시민사회단체들을 망라한 민주진보개혁진영이 통 큰 정치기획으로 감동을 주는 정치를 보여줄 때, 국민은 뜻을 모아 줄 것이라 봅니다. 민주진보개혁진영이 연합정치를 성공적으로 발전시켜 좋은 후보 좋은 정책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관건이라 하겠습니다.

다가오는 경인년(庚寅年)은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동물인 호랑이의 해입니다. 그것도 60년 만에 오는 ‘백호랑이’의 해라고 합니다. 새해에는 호랑이의 모습처럼 당당하게 포효하고 성취하는 한 해가 되길 빌어봅니다.

  

메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삭풍이 흐르고 아스라이 멀어져가는 다사다난한 기축년(己丑年) 한 해를 보내면서 지금은 지나온 날을 뒤돌아보고 정리도 하고 계획도 해보는 시기입니다.  이런 때 한 두 권의 잠언집에 절로 손이 가고 문득 커다란 영혼의 울림으로 다가서기도 합니다. 때론 수십 수백 권의 책보다 잠언 한 편이 주는 감동이 더 오래 지속되듯 가는 해를 보내고 다가오는 해를 맞이하는 이즈음은 ‘잠언의 계절’이도 한 듯합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몇 권의 잠언집에서 인상적인 몇 편의 글을 함께 소리 내 읽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삶에서 성공하는 법  

모든 사람이

인생의 사업에서

성공자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에서

성공자가 될 수는 있다.

 

그것은 무엇이 되느냐에

목표를 두지 않고,

어떻게 사느냐에

목표를 두는

삶의 길을 택할 때 가능해진다.

 

   

내 생을 의미 있게 하는 것  

양심에 충실하게 사는 것은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유일한 길이다.

양심을 따라 사는 생만이

인생에 있어서

성공의 진실한 가치를 보장하며,

설사 실패했다 하더라도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

양심에 입각한 삶은

현실적으로 성공했든 실패했든

하느님의 축복이 따르기 때문이다.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 

소비와 소유의 극대화로

행복을 성취하려는 오늘의 인류는

결국 좌절과 소외의 불행을 맛볼 뿐이다.

 

우리의 진정한 행복은

자기능력의 계발,

이웃에의 사랑과 봉사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조화로운 길 

1. 바른 정치인이 되려면

서생적인 문제의식(書生的 問題意識)과

상인적 현실감각(商人的 現實感覺),

이 두 가지를 겸비해야 한다.

 

2. 어느 분야에서나 성공하려면

서생과 같이 양발을 원칙 위에 확고하게 딛고,

상인과 같이 양손은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두 가지 조화 있는 발전을 기해야 한다.

 

 

정치는 예술이다. 

정치도 하나의 예술이다.

물론 정치를 잘못할 때는

국민을 괴롭히는 질곡이고

혐오와 불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정치를 잘해 모든 국민이 자유와 정의 속에

행복을 누리게 될 때는 더없이 아름다운 예술이 된다.

국민의 일부, 혹은 특정세대만이 아닌

모든 국민에게 기쁨을 주는 원대한 예술이다.

 

 

스스로 결정하는 길 

민주주의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government by the people이다.

참여의 정치다.

참여의 정치란 백성이 주인 되는 정치,

백성이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정치,

백성이 스스로 신이 나서 건설하고 나라 지키는 정치,

백성이 그 속에서 발전하는 정치이다.

 

 

모두가 함께 가는 길 

진정한 정치가 할 일은

억압받는 자와 가난한 자의

권리와 생활을 보장하고

그들을 정치의 주체로서 참여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억압하던 자와 빼앗던 자들도

그들의 죄로부터 해방시켜서

올바른 대열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그럴 때 정치는 예술이 된다.

 

 

근원적인 것과 표면적인 것 

우리는 삶의 자세를 갖출 때,

언제나 사물을 근원적인 것과 표면적인 것을 합쳐서 파악하고

부분적인 것과 전체적인 면을 아울러 볼 줄 알아야 한다.

강의 표면과 저류를 아울러 생각하고,

본류와 지류를 같이 파악해야 한다.

현대인들은 강의 표면과 자기가 전문으로 하는 어느 지류에만 집착한 나머지,

그것을 강 전체로 판단한다.

바로 여기에 실패의 원인이 있다고 본다.

전체와 부분, 근원과 현상을 같이 보고,

그리고 나아가 경중, 완급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언제나 그러한 입장에서 자기 인격을 형성하는 동시에

독서에 있어서도 종합적인 지식 형성에 힘써야 한다.

 

  

내가 존경하는 사람 

나는 특정한 한두 사람만 존경하지는 않는다.

백성을 하늘같이 받들고 헌신하는 사람들,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서

무엇이 되느냐보다는 어떻게 사느냐에 힘쓰는 사람들,

성인으로부터 길거리의 초동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보고 배우되 그것을 내 것으로 재창조한 사람들,

누구든지 이런 사람들을 존경해왔고, 또 지금도 존경하고 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는

자유를 위한 투쟁,

번영을 위한 투쟁,

그리고 정의를 위한 투쟁,

이 세 가지는 삼위일체를 이루어야 한다.

 

 

아직 오지 않은 날에 대한 믿음  

인간의 역사에

아직도 많은 죄와 고난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눈으로 볼 때

세상은 보다 정의롭고 보다 살기 좋은 방향으로

전진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과거에 비추어 봤을 때

우리는 이러한 진화가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점점 더 많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

이는 단순한 신학의 논리가 아니라 과학의 증명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래에 대한 믿음과 희망 속에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모든 악과 고난을 받아들이고

또 이를 극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개울가에 앉아 무심히 귀 기울이고 있으면

물만이 아니라

모든 것은 멈추어 있지 않고 지나간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우리가 겪는 것은

모두가 한 때일 뿐.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은

세월도 그렇고 인심도 그렇고

세상만사가 다 흘러가며 변한다.

 

인간사도 전 생애의 과정에서 보면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이 지나가는

한때의 감정이다.

이 세상에서 고정불변한 채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세상일이란 내 자신이 지금 당장 겪고 있을 때는

견디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러운 일도

지내 놓고 보면 그때 그곳에 그 나름의 이유와

의미가 있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이 세상일에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그 누구도 아닌 우리들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우리 스스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겪는 온갖 고통과

그 고통을 이겨 내기 위한 의지적인 노력은

다른 한편 이다음에 새로운 열매가 될 것이다.

이 어려움을 어떤 방법으로 극복하는가에 따라

미래의 우리 모습은 결정된다.

 

  

하늘 같은 사람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사람한테서 하늘 냄새를 맡아 본 적이 있는가.

스스로 하늘 냄새를 지닌 사람만이

그런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권태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늘 함께 있으면서 부딪친다고 해서

생기는 것만이 아니다.

창조적인 노력을 기울여 변화를 가져오지 않고,

그저 날마다 비슷비슷하게 되풀이되는

습관적인 일상의 반복에서 삶에 녹이 스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두러내기 위해 가꾸고 다듬는 일도 무시할 수 없지만

자신의 삶이 녹이 슬지 않도록

늘 깨어 있으면서 안으로 헤아리고 높이는 일에

근본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사람은 저마다 홀로 자기 세계를 가꾸면서

공유하는 만남이 있어야 한다.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한 가락에 떨면서도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거문고 줄처럼’

그런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거문고 줄은 서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울리는 것이지,

함께 붙어 있으면 소리를 낼 수가 없다.

공유하는 영역이 너무 넓으면 다시 범속에 떨어진다.

 

행복은 절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생각이나 행동에 있어서 지나친 것은 행복을 침식한다.

사람끼리 만나는 일에도 이런 절제가 있어야 한다.

행복이란 말 자체가 사랑이란 표현처럼

범속한 것으로 전락한 세상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행복이란

가슴속에 사랑을 채움으로써 오고,

신뢰와 희망으로부터 오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데서 움이 튼다.

 

그러므로 따뜻한 마음이 고였을 때,

그리움이 가득 넘치려고 할 때,

영혼의 향기가 배어 있을 때 친구도 만나야 한다.

습관적으로 만나면 우정도 행복도 쌓이지 않는다.

 

혹시 이런 경험이 없는가.

텃밭에서 이슬이 내려앉은 애호박을 보았을 때,

친구한테 따서 보내주고 싶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또는,

들길이나 산길을 거닐다가

청초하게 피어 있는 들꽃과 마주쳤을 때,

그 아름다움의 설레임을 친구에게 전해 주고 싶었던

그런 경험은 없는가?

 

이런 마음을 지닌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영혼의 그림자처럼 함께 할 수 있어 좋은 친구이다.

좋은 친구는 인생에서 가장 큰 보배이다.

친구를 통해서 삶의 바탕을 가꾸라.

 

 

 영원한 것은 없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어려운 일도

어떤 즐거운 일도 영원하지 않다.

 

모두 한때이다.

한 생애를 통해 어려움만 지속된다면

누가 감내 하겠는가.

다 도중에 하차하고 말 것이다.

 

좋은 일도 그렇다.

좋은 일도 늘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러면 사람이 오만해진다.

어려운 때일수록 낙천적인 인생관을 가져야 한다.

덜 갖고도 더 많이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전에는 무심히 관심 갖지 않던 인관관계도

더욱 살뜰히 챙겨야 한다.

더 검소하고 작은 것으로써 기쁨을 느껴야 한다.

 

삶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은

어떤 사회적인 지위나 신분,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일이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당했을 때

‘도대체 나는 누구지?’ 하고

자기존재를 확인해야 한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직위나 돈, 재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따라

삶의 가치가 결정된다.

 

 

물처럼 흐르라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살든

그 속에서 물이 흐르고

꽃이 피어날 수 있어야 한다.

 

물이 흘러야

막히지 않고,

팍팍하지 않으며

침체되지 않는다.

 

물은 한 곳에 고이면

그 생기를 잃고 부패하기 마련이다.

 

강물처럼 어디에 갇히지 않고

영원히 흐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무처럼 

새싹을 틔우고

잎을 펼치고

열매를 맺고

그러다가 때가 되면 훨훨 벗어 버리고

빈 몸으로 겨울 하늘 아래

당당하게 서 있는 나무.

 

새들이 날아와 팔이나 품에 안겨도

그저 무심할 수 있고,

폭풍우가 몰아쳐도 가지 하나쯤 꺾여도

끄떡없는 요지부동.

곁에서 꽃을 피우는 꽃나무가 있어

나비와 벌들이 찾아가는 것을 볼지라도

시샘할 줄 모르는 의연하고 담담한 나무.

 

한여름이면 발치에 서늘한 그늘을 드리워

지나가는 나그네들을 쉬어가게 하면서도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는

덕을 지닌 나무...... .

 

나무처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저것 복잡한 분별없이

단순하고 담백하고 무심히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처음처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이다.

 

 

夜深星兪輝(야심성유휘)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난다.”는

사실보다 더 따뜻한 위로는 없습니다.

이것은 밤하늘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어둔 밤을 걸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옷이 얇으면 겨울을 정직하게 만나게 되듯이

그러한 정직함이 일으켜 세우는

우리들의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水(수) 

최고의 선은 물과 같습니다.(上善若水)

첫째, 만물을 이롭게 하기 때문입니다.(善利萬物)

둘째,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자신을 두기 때문입니다.(處衆人之所惡)

셋째, 다투지 않기 때문입니다.(夫唯不爭)

산이 가로 막으면 그 빈곳을 가득 채운 다음 나아갑니다.

마음을 비우고 때가 무르익어야 움직입니다.(心善淵動善時)

결코 무리하게 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허물이 없습니다.

 

 

높이 나는 새는 뼈를 가볍게 합니다. 

높이 나는 새는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하여

많은 것을 버립니다.

심지어 뼈 속까지 비워야(骨空) 합니다.

무심히 하늘을 나는 새 한 마리가

가르치는 이야기입니다.

 

 

더불어 한 길 

배운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함께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아가면서 길을 만듭니다. 

중요한 것은 ‘나아가면서 길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가 서 있는

‘여기’서부터 길을 만들기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나마도 동시대의 평범한 사람들과 더불어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여럿이 함께  

‘여럿이 함께’라는 글 속에는 방법만이 있고

목표가 없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그러나 목표는 ‘함께’ 속에 있습니다. 우리들이 지향해야 할 목표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속에 있습니다.

‘여럿이 함께’는 목표에 이르는 방법이면서

동시에 목표 그 자체입니다.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은 뒤에 생겨나는 법입니다.

먼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로부터 당면의 실천적 과제를 받아오는

이른바 건축의지(建築意志)는 거꾸로 된 구조입니다.

목표와 성과에 매달리게 하고 그에 이르는 전 과정을

수단화하고 황폐화 합니다.

설계와 시공은 부단히 통일되어야 합니다.

‘여럿이 함께’는 방법이면서 목표입니다.

 

 

衆志動天(중지동천) 

“많은 사람들의 뜻이 모이면 하늘도 움직일 수 있다.”

중지(衆志)가 하늘의 뜻이라고 읽어야 옳습니다.

왕보다는 사직(社稷)이,

사직보다는 민(民)이 더 중하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갑니다.

세상 사람들은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합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인 것은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간다는 사실입니다.

 

 

화이부동(和而不同)

화(和)는 공존의 원리인 반면에 동(同)은 지배의 논리입니다.

화가 차이(差異)를 인정하고 다양성(多樣性)을 승인하는

평화의 원리임에 반하여,

동(同)은 흡수와 통합의 패권주의(覇權主義) 논리입니다.

동(同)의 논리가 화(和)의 원리로 바뀌어야

비로소 문명의 전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