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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가을을 타고
그는 또다시 강화도를 찾았다. 자신의 고향 황해도와 말투며 정취가 비슷한 강화도는 그가 가장 자주 오는 곳, 좋아하는 곳이다. 강화도에 있는 전등사의 방문은 불과 1주일 전에도 ‘산사음악회’ 진행 때문에 있었지만 자주 와도 늘 편안함을 주는 곳이기에 올 때마다 즐겁다. 전등사를 올라가는 길은 꽤나 가파르고 먼 길인데 우거진 나무들이 내뿜어 주는 상쾌한 산소와 이름 모를 새들의 맑은 지저귐이 있어 발걸음이 가볍다. 영혼을 정화하며 불법의 등불을 전해주는 곳으로 향하는 길에서 인생의 반쯤을 살고, 다시 힘찬 나머지 반의 인생을 살고자 하는 그의 다짐이 좀 더 굳건해진다.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함께 왔었던 곳, 방송국 시절에도 가끔 왔었던 곳, 사진작가로의 삶을 새롭게 살면서 자주 왔었던 전등사는 그에게 있어서 고향집과도 같은 친근함이 서려있다. 자신의 옛 추억을 담고 있을 만큼 전등사가 자리를 지킨 세월은 적지 않음이 분명한데, 우리나라 최고의 고찰이라니 그 유구한 시간 앞에서 왠지 모를 숙연함이 그를 감싼다.
“저는 나무를 좋아해요. 절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도 참 아름답죠. 절에 있는 것들은 모두 나무의 연장이에요. 특히나 역사를 담고 있는 나무들이죠. 묵묵히 의연한 모습으로 수천 년의 시간동안 세상을 바라본 나무 앞에서 지난 세월을 돌아보게 돼요.”
전등사 입구에 다다르니 삼랑성 사이로 붉게 물든 가을 나무들이 어서 오라는 손짓을 한다. 가을은 깊었고, 인생도 깊었으니 이제 그는 자연이 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임에 어색함이 조금도 없다.
전설은 전등사를 타고
전등사의 시작은 고구려 소수림왕 때부터이다. 진나라 아도 화상이 강화도를 우리나라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한 교두보로 삼으면서 창건한 것이 전등사였던 것이다. 사실 그때 이름은 ‘진종사’였으나, 고려 왕실에서는 삼랑성 안에 가궐을 지은 후 진종사를 크게 중창시키고(1266년), 16년이 지난 1282년(충렬왕 8년)에는 왕비인 정화궁주가 진종사에 경전과 옥등을 시주한 것을 계기로 ‘전등사’라 사찰 명칭을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몽골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한 호국 사찰의 성향이 강했던 의연한 전등사의 기운은 이제 찾아 볼 수 없지만 이제 너그럽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이 나라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제 그는 이 전등사를 자신만의 무한대 앵글로 바라보며 머리와 가슴 그리고 사진 속에 담아내고 있었다.  “불교에는 모든 예술이 담겨 있어요. 염불, 단청, 승무를 생각해보세요. 또 건축, 조각들까지도 볼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예술 분야가 숨 쉬고 있는 것이 불교이고 사찰에서 그것들을 느낄 수가 있지요.”
인위적이지 않은 곳, 자연스러운 곳, 그가 사찰을 좋아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가 불심을 갖게 되면서부터는 더욱더 친숙한 종교현장이 되어버렸다. 만나는 신도들과 담소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고 갖가지 모습으로 계신 부처님들을 보는 것이 평온한 그의 모습에서 부처를 닮은 자비가 엿보였다.
“오랜 세월의 모습을 지닌 대웅전이지만 위엄과 더불어 재미있는 모습이 있어요. 기둥을 받치고 있는 나부상이 보이나요? 전등사에 오면 꼭 이 나부상을 보아야 해요. 전등사 창건 당시 도편수가 근처 주모와 사랑에 빠져 매일 받은 삯을 주모에게 주었다지요. 그리고 공사 후에 함께 살림을 내려고 했는데 글쎄 공사를 마치기 전날에 주모가 도망을 간 것이에요. 그 배신감과 슬픔을 이 나부상으로 표현을 했대요. 처마를 바치고 있어야만 하는 벌과 이제는 참회하고 올바르게 살라는 염원이 담겨있기도 하답니다.”
 전등사 곳곳에 숨어있는 옛 전설을 그에게 듣는 것은 감칠 맛 나고 더 즐거운 일이었다. 모두에게 이미 친숙해진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익살스러운 그의 표정에서 생생해진다. 가만히 나부상을 들여다보면 네 귀퉁이 중에 한 귀퉁이의 나부는 한손으로만 처마를 받치고 있다. 꾀를 낸 그 나부의 모습에서 조상들의 재치를 엿볼 수도 있다. 그는 대웅전을 둘러보고는 옆에 놓여있는 대형의 ‘드무’에 관심을 보였다. 방화수를 넣어 두었던 ‘드무’에서 목조 건축을 지어놓고 화재를 대비했던 조상들의 슬기에 감탄을 하며 이제는 비어있는 드무 속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았다. 그리고 대웅전을 바라보는 거대한 은행나무 앞에 앉아 전등사의 정취에 흠뻑 빠져 있었다. 깊은 사색을 하게 만드는 사찰여행의 묘미는 이런 여유로움에 있었다. 발걸음을 옮겨 대웅전을 지나 약사전을 지나는 길에는 기다랗게 줄을 지어 ‘기와불사’가 놓여있다. 전등사를 찾는 이들의 소원을 담은 기왓장을 하나하나 만지며 그는 그 애틋한 불심을 생각했다.
“이것이 함께 참여하는 불심이에요. 절은 그저 혼자 덩그러니 있지 않아요. 절을 찾는 이들과 함께하죠. ‘기와불사’ 좀 보세요. 불심에 동참하는 이 마음들이 아름답지 않나요?”
그는 꿈을 타고
사진을 시작하면서 나무, 사찰들과 벗하면서 그의 삶은 좀 더 젊어졌다. ‘이 나이에 뭘…’ 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 앞에서 ‘이 나이’ 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 나이’에 맞는 새로운 일들을 찾아낸다.
“인생을 1모작 할 때 난 이미 2모작을 생각해요. 지금 사진에 푹 빠져 있지만, 또 다른 꿈을 꾸고 있어요. 퉁소를 배우고 싶어요. 퉁소는 가장 인간적인 소리를 내는 악기거든요. 평생 동심으로 살 수 있는 것은 꿈을 꾸는 것이에요.”
불법이 등불이 되어 삶을 비추고 있는 고즈넉한 전등사에서 그는 부처의 얼굴을 닮은 온화한 얼굴로 그가 깨달은 삶의 지혜들을 풀어 놓았다. 깊어가는 가을의 단풍이 이제 지는 계절을 닮은 것이 아니라 세월이 지날수록 열정적인 그의 모습과 참으로 닮아 있었다.
 홍익대 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방송에 입문한 뒤 여러 인기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활동했다. 그는 25회 한국방송대상, 대통령상, 자랑스러운 홍익인상 등을 수상했다. 2005년 방송을 잠시 접고 사진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해 제2의 인생을 꾸려가고 있다. 2007년 6월 서울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고, 광주 김대중 컨벤션센터에서 전남일보 창사 기념 초대전을 가지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나무를 좋아하고 사찰을 좋아해 『내안에 나무이야기』라는 책을 쓰고 불교방송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사계절 중 특히 가을의 전등사 모습을 좋아한다는 그는 지금도 사진기를 추켜들고 전등사 어딘가에서 아름다운 나무 모습을 찍고 있을 것이다. 글·김진희 사진·최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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