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짓기

단청, 기복과 장엄의 미학

이산저산구름 2009. 6. 9. 12:40



화려한 색채예술 단청
인류가 조영했던 건축미술은 다양하다. 역사상 전통건축양식의 뿌리는 동아시아의 목조형태, 중앙·서아시아의 찰흙이나 벽돌로 만든 형태, 유럽·미국의 석조나 벽돌로 만든 형태 등이 대표적이다. 이 세 가지 대표적인 전통양식은 저마다 독특한 환경적 요인을 바탕으로 형성되어 재료와 규모가 각기 다른 독특한 특성을 자아낸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어떠한 형태로든 내·외부에 치장하는 장식의장을 들 수 있다. 유럽의 전통건축의장은 패턴과 부조의 장식이 대세였으며, 중앙·서아시아는 각양각색의 벽돌·보석·돌 등으로 연속무늬를 치장하였다. 그러나 목조를 주재료로 한 동아시아의 의장은 각종 금은채색으로 문양을 채화하는 단청이 대세였다.  
 
목조건축문화에서 단청은 필수조건이다. 인류는 일찍이 자연 환경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목재를 이용하여 집을 지었다. 인류의위대한 생산혁명 시대라 불리는 신석기시대부터 움집형태의 원시건축이 조영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원시가옥의 출발은 차츰 본격적인 목조건축으로 진보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목재를 가공 조립하여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부터 건축물의 수명연장이 최대의 난관으로 봉착되었다. 특히 동북아지역에서 건축재로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이 소나무이다. 재질 특성상 내강耐强, 내구耐久, 내곡성耐曲性 장점이 있으나 동시에 목재의 표면이 거칠고, 건조 후 열상裂傷 크다는 단점도 따른다. 따라서 고대인들은 쉽게 썩고 갈라지며 왜곡되는 나무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무언가 조치를 강구해야만 했다. 그 해결점이 바로 단청()이다.
 

나무의 조악성을 감추고, 부식을 막기 위하여 부재에 천연의 채료彩料 칠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했다. 그런데 건축부재에 채색하는 작업에도 인간 본성의 미의식이 발휘되었다. 수명연장을 위하여 부재에 채색을 하더라도 기왕이면 아름다움까지 고려하여 각종의 문양을 장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그 행위로부터 건축단청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단청은 삼국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삼국사기』·「권 제33」옥사조屋舍條에는 귀족의 등급에 따라 단청의 규범을 마련, 제한하는 내용이 수록되었다. 이것은 당시 단청의 화려함을 간접적으로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또한 오늘날에 전하는 고구려벽화고분에는 당시 단청의 문채紋彩 알 수 있는 실례가 다수 전한다. 이러한 단청의 전통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로 이어지면서 전통건축문화의 꽃을 활짝 피웠다.

단청장엄은 건축물의 성격에 따라 그 의장특색이 다르다. 즉 종교적 엄숙함이나 왕권의 위력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에 상응한 문양을 선택적으로 장식했다. 우리나라의 단청양식은 바로 그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건축물 성격에 따른 장엄특색의 상이성이 확연한 경우가 곧 궁궐단청과 사찰단청이다. 이외에도 검약함의 미덕을 나타내는 유교 건축과 망자의 극락왕생을 위한 능원의 건물들도 저마다 오색빛깔 고운 특색의 만상萬狀 입었다.

평천하平天下 서원한 궁궐단청
우리나라의 궁궐 단청양식은 웅건하면서도 정적인 인상의 의장특성을 보여준다. 권위와 부귀, 장수를 상징하는 길상들이 대부분인 왕실단청은 화사한 색상대비를 구사하면서도 은근한 품격이 베어난다.

궁궐에는 정전·대문·편전·침전·배례전·각루 등 다양한 건물이 존재한다. 이들 건축물에는 각기 그 등급에 따라 높고 낮은 단청양식이 장엄된다. 국왕이 정사를 돌보는 가장 상징적이고도 웅장한 건물은 궁궐중심에 위치한 정전이다. 경복궁 근정전·창덕궁 인정전·창경궁 명전전·경희궁 숭전전·덕수궁 중화전이 조선시대 5대궁의 정전들이다. 이러한 건축물에는 국왕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특징적인 의장을 장엄한다. 그리고 왕실의 침전이나 편전, 배례전 등에는 부귀와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문양들이 간결하면서도 운치 있는 필치로 그려졌다. 

궁궐단청의 문양특징을 일별하자면 대량이나 평방, 창방과 같은 긴 부재라 하더라도 사찰에서 사용하는 장구머리초와 같은 복잡한 도안은 사용하지 않고 비교적 단아한 병머리초양식을 장식한다. 기둥에는 주의초를 생략하고 단순히 석간주만을 도채하며, 계풍에도 금문이나 별화를 생략한 채 뇌록단색만을 칠하여 번잡함을 피했다.

궁궐에 장식되는 문양의 종류를 살펴보면 우선, 머리초는 석류와 연꽃으로 결합된 패턴이 주로 장식되었다. 배불숭유시대의 조선궁궐에서 불교의 성화聖花 연꽃이 어찌 된 것인가? 라고 반문하는 독자가 많을 것이다. 연꽃과 석류 결합패턴의 원류는 석류와 석류꽃이다. 석류꽃은 자웅동주雌雄同株 생장특성을 나타낸다. 먼저 자성雌性 꽃이 피고지면, 웅성雄性 꽃이 피어나는데 그 형태가 마치 작은 연꽃모양이다. 명나라 초기 북경 자금성의 건축물에 처음 단청되었던 이 패턴은 분명 석류와 석류꽃이었다.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석류꽃은 연꽃으로 변화하기 시작하였고, 오늘날엔 완연한 연꽃으로 변모하였다. 그러나 형상은 변화되었다 하더라도 그 의미는 변하지 않는 법, 다산의 상징인 석류를 장식하여 왕실의 자손子孫번성을 기원하였던 것이다.

궁궐의 정전 내부에는 용과 봉황이 주로 장식된다. 특히 임금이 자리하는 용상 위 보개寶蓋에는 국왕의 숭고한 귄위를 표방하는 황룡黃龍 풍부한 생동감으로 묘사되었다. 내부 우물천장에는 암수 한 쌍의 봉황이 수려하고도 근엄한 자태로 표현된다.

이밖에도 궁궐단청의 주요 문양으로는 모란꽃, 국화꽃, 운학雲鶴 등을 들 수 있다. 꽃 중의 꽃 모란은 왕실의 부귀영화를 염원하며, 국화와 운학은 나라님과 왕족의 무병장수를 위하여 그려졌다.

오늘날 전해지는 조선궁궐의 단청양식은 본래의 모습에서 상당부분 달라졌음을 추정할 수 있다.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한양의 5대궁궐이 전소되었고, 지금의 건물들은 그 후 재건된 것이다. 조선시대 중기 이후에는 단청안료가 비쌌기 때문에 화려한 단청을 국법으로 금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후기 궁궐단청은 그 위엄의 빛을 잃지 않았다. 단아하면서도 웅건한 기풍의 조선궁궐단청, 이제 그 진수를 되살려야 할 때다.

오채금장 빛 발하는 화장華裝장엄의 세계, 사찰단청
오늘날 우리나라 사찰단청은 한국단청예술의 정수를 이어오는 중요한 보고이다. 현재 남아있는 거의 대부분의 불교사찰 목조건물은 임진란 이후에 재건된 것으로 단청의 유구가 풍부하게 전해지고 있다. 사찰의 건물은 대불전(대웅전·대웅보전·대적광전·비로전·극락전·무량수전 등보살전(원통전·명부전·용화전·미륵전 등영산전·팔상전·조사전·판전·삼성각·종루·요사채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바로 그러한 건물들에 한국단청의 모든 조형양식이 장엄되고 있다.

다종다양한 길상문이 총 망라된 사찰단청은 개체의 조합과 각색으로 승화된 창의적 패턴의 완성미를 보여준다. 또한 안료의 발달과 더불어 오채금장五彩金裝 대비와 조화가 마치 기라홍군綺羅紅裙 자태를 보는 듯 화려하다.
 

머리초 형식은 장구머리초가 보통이며 대량에는 겹장구머리초와 같은 매우 복잡한 도안을 사용한다. 부재의 중심부분에는 각종의 비단무늬를 바탕에 장식하고 중심에 안상을 구획하여 다양한 소재의 별화를 도채 한다. 기둥에는 궁궐단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화장세계의 장엄을 번안한 비단모양의 주의초가 화려하게 장식된다. 사찰단청의 의장특징은 불교교리와 관련된 소재를 중심으로 거의 모든 종류를 다양하게 이용하는 것에 있다. 각종의 화려한 꽃들과 칠보, 길상, 서수, 서조무늬가 총 망라되는 사찰단청에서도 주류는 연꽃, 보상화, 주화, 여의두, 금문錦文, , 봉황, 칠보 등이다. 불교의 성화聖華 연화는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필수불가결한 장식요소이다. 감꼭지에서 유래된 주화朱花 튼튼한 뿌리의 생장적 특성 때문에 기둥상부 주두에 장식되었다. 보상화는 불교의 이상화이자 화장華裝장엄의 정수를 상징하기 때문에 일명 만다라화曼陀羅華 불린다. 만사형통을 의미하는 여의무늬는 현세기복신앙의 표상이며, 칠보무늬는 서방극락세계의 장엄을 상징한다.

오늘에 전하는 우리나라 사찰단청의 대표적 양식은 19세기 이후에 정립된 금단청양식이다. 이것은 중국, 일본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창의적 장식수법으로 한국전통예술의 비잔틴식 정수로 거듭났다.  
글·사진 | 곽동해 문화재전문위원, 동국대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