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 싶은 글

희망 그 자체로 걸어온, 놀라운 가르침 "장영희"

이산저산구름 2009. 5. 14. 14:17

 
   희망 그 자체로 걸어온, 놀라운 가르침 "장영희"   
http://booklog.kyobobook.co.kr/zenrami/B3707462/89243
 

쉰일곱의 나이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장영희 교수가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새겨지고 있습니다. 장영희 교수의 글과 가르침, 놀랍도록 강인한 의지와 아름다운 희망은 불황, 절망으로 얼룩진 요즘에 생명수와도 같았습니다.

 

마지막 길까지, 나보다는 어머니를 걱정하며, 그래도 행복했다고 사흘를 걸쳐 쓴 마지막 말씀이 두고두고 목이 메이게 합니다.

"엄마 미안해, 이렇게 엄마를 먼저 떠나게 돼서.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 찾아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지지리 속도 썩였는데 그래도 난 엄마 딸이라서 참 좋았어. 엄마, 엄마는 이 아름다운 세상 더 보고 오래오래 더 기다리면서 나중에 다시 만나"

 

 늘 삶을 아끼고 즐기고 예뻐했던 장 교수님이 안타까운 이유는, 그녀의 삶 자체가 놀라운 희망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릴적 겪은 소아마비에 굴하지 않고,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갈고닦은 결과 교수에까지 오른 그의 노력은 대단하다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성한 몸으로, 큰 노력 없이 시간을 소비하는 사람들에게는 "장영희" 자체가 벼락과도 같은 가르침일 것입니다.

 

 "길고 가늘게 사느니 굵고 짧게 사는 것이 낫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는데 화끈하고 굵게, 그렇지만 짧게 살다가느니 보통밖에 안 되게, 보일 듯 말 듯 가늘게 살아도 오래 살고 싶다."는 그의 말이 무색하게, 아까우리만큼 짧았던 장영희 교수의 희망 메시지를 다시 돌아보고 싶습니다.

 

<생일 - 사랑이 내게 온날 나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

 

서강대 영문학 교수인 장영희선생님이 셰익스피어부터 예이츠, T. S. 엘리엇, 에밀리 디킨슨 등 영미시의 거장 시인들의 시와 그들의 희로애락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왠 "시"냐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매일의 벅찬 일상 속에서 단 5분만 시간을 내서, 밝은 햇살을 드리울 수 있다면 또한 유럽의 푸른 포도밭을 거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면 시 한편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매일이 생일과도 같은 소중함과 따뜻함과 가슴벅참을 선사할 <생일>은   화가 김점선의 그림들이 명시를 풍부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합니다.  화가 김전선은 제1회 앙데팡당 전에서 백남준의 심사로 파리 비엔날레에 출품했고, 그 자유롭고 파격적인 그림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1987~88년 2년 연속 평론가협회가 선정한 미술 부문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로 선정되기도 한 현대 한국의 스타화가였습니다. KBS-TV ‘문화지대’의 진행자를 맡는 등 문화 전방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왔습니다. <점선뎐> 출간 후, 오랜 항암치료 끝에 작고한 김점선 화백의 삶이 묘하게 장영희 교수의 마지막과 닮아있어, 너무나 소중했던 두 분을 잃은 아픔이 다시금 되살아납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생일>과 장영희 교수의 따뜻한 해석을 실어보았습니다.

 

A Birthday - Christina Rossetti

 

My Heart is like a singing bird                    내 마음은 물가의 가지에 둥지 튼
Whose nest is in a watered shoot:             한 마리 노래하는 새입니다.
My Heart is like an apple-tree                    내 마음은 탐스런 열매로 가지가
Whose boughs are bent with thickest fruit:  휘어진 한 그루 사과나무입니다.
My Heart is like a rainbow shell                 내 마음은 무지갯빛 조가비,
That Paddles in a halcyon sea:                 고요한 바다에서 춤추는 조가비입니다.
My Heart is gladder than all these             내 마음은 이 모든 것들보다 행복합니다.
Because the birthday of my life                  이제야 내 삶이 시작되었으니까요.
Is come, my love is come to me....             내게 사랑이 찾아왔으니까요.

 

 누군가가 내게 불쑥 내미는 화려한 꽃다발과 같은 시입니다.

 

 진정한 생일은 육신이 이 지상에서 생명을 얻은 날이 아니라 사랑을 통해 다시 태어난 날이라고 노래하는 시 ‘생일.'

 

 글을 쓸 수 있기 전에 이미 시를 썼다는 크리스티나 로제티가 스물일곱 살 때 쓴 시입니다. 사랑에 빠진 시인의 마음은 환희와 자유의 상징인 , 결실과 충만의 상징인 사과나무, 평화와 아름다움의 상징인 고요한 바다와 같이 너무나 행복하고 가슴 벅차서, 스물일곱 나이가 까마득히 먼 꿈이 되어 버린 내 마음까지 덩달아 사랑의 기대로 설렙니다.

 

 내 육신의 생일은 9월이지만, 사랑이 없으면 생명이 없는 것이라는 ‘생일’을 읽으며, 나도 다시 한 번 태어나고픈 소망을 가져봅니다.

 

 저 눈부신 태양을 사랑하고, 미풍 부는 하늘을 사랑하고, 나무, 꽃, 사람들을 한껏 사랑하고, 로제티처럼 ‘My love is come to me!’라고 온 세상에 고할 수 있는 아름다운 4월의 ‘생일’을 꿈꾸어 봅니다.

 

그런데, 많고 많은 명시 중 제 마음을 쏙 사로잡은, 평생 두고두고두고 읽고 싶은 시를 찾았습니다. 제목에서부터 왠지모를 여운과 아쉬움을 가득담고, 가슴아픈 뒷얘기를 상상하게끔 하는 아련한 시!! 왠지 영국의 우수를 가득 담았을 것같은 시인의 이름 또한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생일을 찾아읽고 한껏 젖어있던 제 마음을 잡아끈 시는 바로 <다름 아니라>였습니다.

 

This is just to say               다름 아니라
- William Carlos Williams      -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I have eaten                      냉장고에
the plums                          있던 자두를
that were in                       내가
the icebox                         먹어버렸다오

 

And which                         아마 당신이
you were probably              아침식사 때      
saving                               내놓으려고
for breakfast                       남겨둔 것일 텐데

 

Forgive me                         용서해요, 한데
they were delicious             아주 맛있었소      
so sweet                           얼마나 달고
and so cold.                      시원한지.

 

(알고보니 저자는 관찰을 기본으로 한 ‘객관주의’의 작품을 쓴 미국 시인이었습니다. 1963년 퓰리처상을 받기도한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는 일상의 언어로 장대한 서사시를 엮어내는 미국대표시인입니다. ^^;; 문학적 무지를 용서해주소서.. ^^)

 

<생일> 더보기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92036078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장영희교수 스스로 쓴 장영희 이야기 입니다. 그녀의 삶 전반에 있는 암 투병, 장애 등 어쩌면 암울해지기 쉬운 사건들을, 긍정적인 유머와 위트로 펼쳐내는 독특한 에세이가 감동 전에 재미가 듬뿍 실려있습니다. 고난을 이겨내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냅니다.

 

 2001년 처음 암 선고를 받고,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결국 암은 2004년 다시 척추로 전이되었습니다. 또다시 1년 동안 힘든 항암치료를 받았으나 암은 간으로 전이되고 맙니다.  9년이란 시간은 견뎌내기 힘든 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힘들어만 보이는 삶 속에서 장영희교수는 기적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프고 힘들어서 하루하루 어떻게 살까 노심초사하면서 버텨낸 나날들이 바로 기적이며, 그런 내공의 힘으로 더욱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바람을 밝힙니다. '나, 비가 되고 싶다'를 제목으로 추천한 독자처럼 독자들과 삶의 기적을 나누고 싶다고.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적이며, 지금 생활에서 그것이 진정 기적이라는 것을 잘 안다고.

 

그래서 이 책이 오롯이 기적이 되었으면 한다는, 간절한 삶에의 바람이 투영된 에세이입니다.

 

 항임치료 받을 때 빠진 머리자리에, 아기 솜털같이 머리칼이 자라서 지금은 머리털로 덮이게 됐고, 항암제 부작용으로 인한 염증이 아문 것 만으로 감탄을 금치못했던 저자입니다. 위대한 복원력으로 다시 머리가 자라고 상처를 아물게 하고.. 아무리 봐도 동안대회 1등인 아줌마와 성형한 탤런트의 이목구비보다 대견하고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생긴거야 어떻든 제 자리에서 제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우리 몸이란 생긴 그대로 너무나 아름답고 신비로워서, 주름이야 생기든 말든 웃고 싶을 때 실컷 우하하하 웃으며 나 자신의 기막힌 아름다움을 구가하면 되는 법이라고.

 

 어찌나 호탕한지, 어찌나 유쾌한지 저도 모르케 우하하하 우캬캬캬 웃고 말았습니다. 진정으로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누구보다 못난 나, 누구만큼 성공하지 못한 나, 누구보다 바쁜 나"가 아니라, 책읽기를 좋아하고, 젊은남녀가 시시덕대는 드라마에 환장하고, 하루종일 오래된 이불 속에서 뒹굴거릴 수 있고, 달디단 목욕탕커피를 즐기는 "나"를 인정하고, 아껴보고 싶어집니다.

 

 장영희교수의 글에는 "너무"라는 부사가 참 많이 쓰입니다. 일상의 작은 일도 큰 의미로 받아들이고, 사소한 기쁨을 자신만의 소중한 경험으로 간직하는 그녀의 말로 "너무나" 잘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쾌한 삶에의 통찰 그리고 희망을 남기고 가신 장영희 교수님, 이제 저벅저벅 큰소리로 좋은운명 먼저 불러들이시길 바라겠습니다.

 

 나는 그때 마음을 정했다.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살금살금 걷는다면 좋은 운명도 깨닫지 못할 것 아닌가. 나쁜 운명, 좋은 운명 모조리 다 깨워가며 저벅저벅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살 것이다, 라고.

- 샘터사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중 -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더보기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barcode=9788946417489

 

쉰즈음에


 연구실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데 갑자기 어깨가 결리고 손가락 관절이 쑤신다. 아픔을 호소하니 옆에 있던 조교가 “선생님, 오십견이신가 봐요. 오십 넘으면 어깨 아파진다는데…. 선생님 이제 오십 넘으셔서…” 하고 살짝 미소 띠면서 말한다.

...중략... 딱 한 가지, 나이 들어 가며 조금은 새롭게 느끼는 변화가 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즉 세상의 중심이 나 자신에서 조금씩 밖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도 눈이 가고, 갑자기 잊고 지내던 사람들의 안부가 궁금해지고,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이 더 안쓰럽게 느껴진다. 

 단순히 나이 들어 감에 따라 취향이 좀 주책 맞아져서 그런지, 아니면 이젠 내게 내가 너무 식상한 소재라 남에게 더 관심이 가는 건지, 또 아니면 나야 어차피 떠날 몸이니 내가 간 뒤에도 꿈쩍 않고 남을 이 세상에 대한 집착이 더 커져서 그런지, 그것도 아니면 내가 살아 보니 사는 게 녹록지 않아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측은지심인지,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어쨌든 나뿐만이 아니라 남이 보인다. 한마디로, 그악스럽게 붙잡고 있던 것들을 조금씩 놓아 간다고 할까, 조금씩 마음이 순하고 착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결국 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은 인간의 지식도, 열정도, 용기도 아니고 ‘착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 자체에 대한 연민, 내 자리 남에게 조금 내주는 착함이 없다면, 그러면 세상은 싸움터가 되어 금방이라도 무너질지도 모른다. 난 쉰이 넘어서야 겨우 그걸 깨닫지만, 스무 살 우리 학생들은 나보다 좀 더 일찍 깨달았으면 좋겠다.

                                                                     

                                                                     2006년 8월 11일 동아일보 오피니언 기고자 장영희

'다시 읽고 싶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무현의 삶이 이룬 것과 그의 죽음이 남긴 것   (0) 2009.05.28
역사적 순간   (0) 2009.05.22
미안하구나,아들아  (0) 2009.05.08
『박쥐』  (0) 2009.05.06
어머니의 손   (0) 2009.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