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오바마'를 기다리며
K형!
참 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혹시 ‘웨스트 윙’(The West Wing)을 아십니까?
웨스트 윙은 요즘 젊은이들이 빠져있는 미드(미국 드라마) 중의 하나로 미국 백악관을 다룬 정치드라마입니다. NBC가 99년에 첫 시즌을 시작하여 2006년에 끝난 시리즈물인데, 2000년~2003년까지 4년 연속 '에미상 최우수 TV 드라마 시리즈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웨스트 윙의 작가 ‘아론 소킨’은 유명한 자유주의자라고 합니다. 미국 헐리웃 민주당원들의 정치적 꿈-드라마 속에서 민주당 대통령의 적(敵)은 공화당이므로 공화당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주를 이룹니다―을 드라마로 만들었다고도 합니다. 이 드라마는 미국 민주당의 진짜배기(Real Thing) 자유주의자(진보주의자) 대통령이 새롭게 탄생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드라마는 히스패닉계의 ‘산토스’라는 대통령 후보가 예비 후보로 선출되고, 공화당 후보와 선거를 통해 당선됩니다. 경희사이버대 안병진 교수는 오바마와 힐러리의 경선과정을 보면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은 비현실적인 미국대선”이라고 했다. 상상력이 생명인 자유주의자 작가 ‘아론 소킨’도 차마 만들지 못한 정치 드라마가 현실에서 ‘흑인’ 대통령의 탄생이라는 드라마로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오바마! Barack Hussein Obama! 그가 드라마의 주인공입니다.
K형! 아직도 진보주의의 꿈을 가지고 계십니까?
오바마가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은 미국 진보주의자들의 불행으로 기억하는 ‘로보트 케네디’ 상원의원이 암살된 지 40년만입니다. 그리고 오바마가 민주당 대통령후보 수락 연설이 있던 8월 28일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워싱턴 메모리얼 광장에서 연설한 날입니다. 과연 이런 역사적인 날과 연관되는 의미 부여만큼이나 새로운 희망과 미래를 열어나갈 수 있을까요? 불과 46살의 초선 상원의원일 뿐인 오바마가 ‘미국의 꿈과 변화’를 실현할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오바마를 설명하는 말에는 ‘흑인 케네디’ ‘흑인 링컨’ ‘흑인 프랭클린 루스벨트’로 불리고 있습니다. 오바마가 제시하는 ‘변화와 희망’, ‘하나의 미국’ ‘미국의 꿈과 약속’이라는 메시지는 많은 젊은이와 흑인, 소수자들을 열광시키고, 백인 주류사회와 공화당 중진그룹에서도 지지자들 나오고 있습니다. 오바마의 지지자들이 외치는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는 구호는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바마는 미국 진보주의자들의 40년의 꿈이라고 합니다.
K형 오바마가 전국적 인물이 된 것은 불과 4년 이라고 합니다.
이제는 웬만한 한국 사람들도 아는 이름이지만, 2004년 7월 27일까지 그의 이름을 아는 미국인도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 7월 27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한 감동적인 연설로 오바마는 민주당의 떠오르는 정치 샛별이 되었습니다.
그 날 저녁, 오바마는 그의 출생과 성장과정에서 터득한 철학적 소신과 정치활동 과정에서 정립된 정치적 가치관을 마음껏 펼쳐 보였습니다. 당시 미국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극심한 양극화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민주당 후보자들은 9.11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을 일으킨 부시와 네오콘을 비판하고 있었지만, 열성적인 민주당원들은 소수당으로 전락한 민주당을 구원할 강력한 지도자를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자리는 ‘존 캐리’라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뽑는 전당대회이고도 하지만, 과연 ‘존 캐리’로 공화당 ‘조지 부시’대통령을 꺾고 승리할 수 있을까? 민주당원들의 가슴 한편에는 계속되는 패배의 불안감이 공존하는 전당대회이기도 했습니다. 오바마는 이런 민주당원들의 가슴에 강력한 메시지를 남기는 감동적이고, 역사적인 기조연설을 한 것이다. 오바마는 국민통합의 메시지로 민주당원들과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미국 사람에게 유감없이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자유주의자의 미국도, 보수주의자의 미국도 없습니다.
오직 '미합중국 '만이 있을 뿐입니다.
흑인의 미국도, 백인의 미국도, 라틴계 미국도, 아시아계 미국도 없습니다.
오직 '미합중국 '만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국민입니다”
K형! 저는 ‘오바마’ 현상 깊숙이 살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오바마는 11월 11일이면, 미국의 대통령 당선자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그런 오마바가 2000년 민주당 전당대회 입장권도 없었던 사람이라면 믿겠습니까? 좀 길게 잡아도, 1996년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때로부터 불과 12년 만에 미국의 최고사령관이 되는 것입니다. 너무나 혁명적인 사건입니다. 오바마는 미국사회에서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 소수자’가 대통령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편에서는 어려운 조건을 뚫고 목표를 성취해 나가는 인물에 놀라지 않을 수 없고, 또 한편에서는 이러한 결과가 가능한 시스템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탁월한 지도자를 기다리는 대중의 심리에서 보면 당연하게도 사람에게 주목할 것이지만,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사람이 탄생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함께 살펴보아야 정확하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이런 경이로운 ‘오바마 현상’ 깊숙한 곳에 있는 비밀의 문을 두드리고 싶었습니다.
K형! 먼저 오바마의 생애를 살펴보아야 하겠지요.
내가 오바마라는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직접 쓴 2권의 책 "Dreams from My Father,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과 미국정치에 관한 그의 분석과 희망을 담은 "The Audacity of Hope, 담대한 희망"입니다. 그리고 외부자의 시각으로 쓴 책으로 《오바마 약속에서 권력으로》, 데이비드 멘델, 도서출판 한국과 미국, 2008. 《꿈과 희망-버락 오바마의 삶》, 스티브 도허티, 송정문화사, 2007. 《오바마론(論)》, 마틴 더퓌, 늘봄, 2008.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변화》(오바마 연설문 모음집), 모린 해리슨 외, 홍익출판사, 2008. 등을 참고했습니다.
물론 인터넷에 있는 많은 자료들과 뉴스 기사도 참고사항이었지만, 본인이 직접 쓴 책을 통해서 그의 생각을 알아가는 과정이 알짜배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여기서는 한사람의 생애 전체를 요약하는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버락 오바마를 소개하는 한글 홈페이지(www.barackobama.kr)의 후보 소개를 중심으로 재구성을 해 보았습니다.
오바마는 현재 미국 상원에서 활동 중인 유일한 흑인의원으로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파병 초기부터 줄곧 반대해온 진보적인 정치지도자이며, 또한 당파를 초월한 국가적인 공동의 이익을 위해 수시로 공화당 의원들과도 협력함으로써 많은 정책들을 개발하고 추진해온 통합의 정치지도자이기도 합니다.
일명 "흑인 케네디"라고도 불리는 오바마는 친근한 카리스마와 감동적인 연설 등으로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의 차이, 그리고 경제적 부의 차이 등으로 분열된 현재의 미국 사회를 통합과 미래의 길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바마는 아프리카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미국 출신의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1961년 하와이에서 출생하였고, 그가 두 살 때 부모가 이혼하고, 어머니가 인도네시아인과 재혼함에 따라 하와이를 거쳐 인도네시아에서도 유년기 4년을 보냈습니다. 십대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오바마는 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함께 생활하였습니다.
오바마는 로스앤젤레스의 옥시덴탈 대학 문과에 입학하여 2학년을 마치고, 뉴욕의 컬럼비아대학으로 전학하여 정치학을 전공하였으며, 민간 기업에서 잠시 근무 후, 철강 산업의 쇠퇴로 슬럼화된 시카고에서 교회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공동체운동가로 3년간 활동하였고, 가난한 사람들의 낙후된 주거환경, 범죄와 실업의 증가 등 지역의 문제 해결에 노력하여 주목할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오바마는 사회 문제들의 궁극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지역적이고 일시적인 방안을 넘어서는 국가적이고 법적인 방안의 마련이 요구된다는 판단에 따라 하버드대학교 법학대학원에 진학하여 법률을 공부하였습니다.
하버드대학에서 법률학술지인 "Harvard Law Review"의 백년이 넘는 역사상 최초의 흑인 편집장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던 오바마는, 졸업 후 자신이 활동하던 시카고로 되돌아와 시카고대학에서 헌법학을 강의하면서 동시에 시민들의 권리를 대변하는 인권변호사로서 활동을 계속하였습니다.
오바마는 1997년에서 2004년까지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으로서 성실한 의정을 수행하였으며, 2000년 연방 하원의원 예비경선에 출마하여 낙선하였으나, 2004년에 흑인으로서는 그리고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후보로서는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미국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도전하여 압도적인 득표로써 당선되었습니다.
오바마는 외교위원회 소속 상원의원으로서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방지와 아프리카에서의 기아 해결에 노력하였으며,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기 이전에 후세인 대통령의 위협이 심각한 것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그것을 잘못된 전쟁으로 규정하였고, 전쟁의 장기화와 엄청난 인적 물적 비용,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해 경고한 바 있습니다.
오바마는 가난한 계층을 위해 자신의 사회운동가로서의 과거 경험을 토대로 직업훈련과 취업알선, 자녀들의 방과 후 교육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수백만 명의 가난한 미국인들이 자녀들이 아파도 병원에 데려가지 못하는 현 미국사회의 문제점과 관련하여 의료보장 범위의 확대와 질적 강화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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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바마의 생애를 요약해 놓고 보니,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살아온 과정을 살펴보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의 생애를 통해 살아있는 교훈을 얻는 것입니다.
첫째, 오바마는 출생과 성장과정에서 주어진 혼란을 스스로 잘 극복했다는 점입니다.
백인 어머니와 케냐인 흑인 아버지, 생부의 부재, 인도네시아의 계부와 자카르타에서 생활, 하와이 외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청소년기 생활과 문화를 복합적으로 가지게 됨으로써 상당한 기간 인종과 출생, 세계관의 정체성 혼란을 겪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다문화, 다민족적, 정체성과 사회 다원주의라는 관점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둘째, 지역 공동체운동, 민중운동에 투신하고 그 연장선에서 계속 활동을 했다는 점입니다.
나를 포함한 한국의 386들이 80~90년대 민주화투쟁의 한 방편으로 현장운동-노동운동과 농민운동, 지역운동과 주민운동에 대거 투신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현장 운동가로 직접 투신하는 것도 거의 없지만, 다시 되돌아가서 활동의 계속성을 유지하는 사람도 보기 드뭅니다. 미국의 상황과 한국의 상황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조건이었겠지만, 현장운동의 기반으로 시작하여, 그 한계를 스스로 뛰어넘고자 노력하였다는 것입니다.
셋째, 도전하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시스템, 평생 학습이 가능한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청소년기 마약에 손을 댄 이른바 ‘비행학생, 불량학생’이 옥시덴탈 대학으로 진학하고, 콜롬비아 대학으로 전학이라든가, 공동체 운동 이후, 늦은 나이에 다시 하버드 로스쿨로 입학이 가능한 것은 한국사회와 많은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사회는 패자부활이 거의 불가능한 사회입니다. 대학입학만 하더라도 제 나이가 아니면 어렵습니다. 또한 나이 제한이 곳곳에 있고, 사회에 진출하여 경험을 쌓다가 새롭게 전문영역을 확인하여 다시 대학원에 진학하기가 쉽겠습니까? 재도전이 가능한 평생학습 시스템이 부재합니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법학대학원을 다시 도전하기란 더더욱 불가능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패자부활, 재도전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넷째, 합리성에 기초한 미국식 정치자금 시스템이 있습니다.
미국식 정치시스템은 장단점이 있을 겁니다. 미국식 정치의 주요 특징을 돈선거(금권정치)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막대한 정치광고 비용이 지출되는데, 개인지출과 후원금, 그리고 국고보조금 등으로 지원합니다. 이러한 정치비용을 마련하는 창구는 한국의 선거공영제와 비슷해지긴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정치는 국민들의 정치 혐오감과 극도의 불신에 기초하여 사실상 선거비용을 현실화하지 않기 때문에, 편법 모금과 편법 지출이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선거와 정치자금에서 자유로운 정치인이 거의 없기에 비리정치인이 끊임없이 탄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는 정치자금과 관련한 제도의 현실화가 필요합니다. 오바마의 홍보물에는 대개 빠져있지만, 사실 오바마가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으로 있다가 워싱턴 정치무대로 진출하려고 2000년 연방 하원의원 예비선거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하였습니다. 하지만, 2004년에 다시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식 정치자금 모금과 후원제도가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오바마식 선거 시스템 입니다.
오바마는 선거자금 중 80%를 인터넷 온라인으로 모금했는데, 이 개미군단 중 약 2/3가 처음 정치자금을 냈다고 합니다. 역대 미국의 막강한 ‘큰손’ 정치로비스트를 무력화시켜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말 새로운 현상입니다. 한국은 2002년 대선에서 전 세계적으로 인터넷이 대통령을 최초로 탄생했다고 대서특필했는데, 패배의 충격으로 인해 한나라당은 인터넷 선거를 오직 규제하기만 했습니다.―이 인간들은 다른 곳은 규제철폐를 하면서 인터넷은 지금도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하려고 합니다. 지금 미국 대선은 선진적인 사이버 선거의 결정판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오바마는 젊은이들이 하는 온라인 게임에 광고를 하는가 하면, 홈페이지와 GPS 시스템을 이용하여 전국 어디서나 편리하게 선거 사무소를 찾아갈 수 있게 한다든지, 다양한 UCC의 제작과 홍보가 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그사이 인터넷 정치의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되어버렸습니다.
또한 오바마는 이번 선거에서 ‘유세(campaign)’가 아닌, ‘운동(movement)’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미국의 선거 전략은 매스미디어를 통한 홍보전이 주를 이루었는데, 오바마는 ‘풀뿌리 지역운동’에 기초한 전통적 의미의 조직선거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워싱턴의 ‘밀실정치’에서 풀뿌리 ‘현장의 정치’로 대변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각 후보는 자신이 승리하고 있는 주(州)보다 격전지 주(州)에 자금을 집중 투여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오바마는 본인의 주장처럼 푸른색 주(민주당 지지주)와 붉은색 주(공화당 지지주)를 가리지 않고 선거운동의 역량을 투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국민통합’을 외치고, 후보수락연설에서 푸른색 주와 붉은 색 주가 아니라 하나의 미국이라고 외친 가치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여섯째, 오바마는 가치 중심의 정치를 당당하게 주장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바마는 후보 수락연설을 통해 “우리는 경제의 힘을, 억만장자들이 몇 명이고 포춘지 500대 기업들의 이익이 얼마인지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이디어를 가진 누군가가 새로운 사업에 도전할 수 있는지, 손님에게 받은 팁으로 살아가는 웨이트리스가 일자리 잃을 걱정하지 않고도 아픈 아이를 돌보기 위해 하루 휴가를 낼 수 있는지를 가지고 평가합니다. 우리는 노동의 가치와 존엄성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경제를 만들려 합니다”고 말했습니다. 과연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어떠합니까?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오바마는 선거과정에서 인종적 편견이 존재하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당당하게 인종적 문제를 넘어설 것을 설파했습니다. 인종적 문제만큼이나 일상의 문제에서 제기되는 경제와 사회보장, 건강과 교육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유주의자, 진보주의자로서 내세우는 가치-기회, 노동, 사회보장 등-를 전면에 걸로 승부한다는 사실입니다. 작년 대통령 선거에서 가치 중심의 구호를 전면에 내 건 후보는 ‘문국현’뿐이었습니다. 그는 “사람 중심, 진짜 경제” 라는 구호 하나로 137만 표를 받았습니다. 몇몇 구(區)단위 20~30대 수도권 유권자 층에서는 민주당 정동영 후보를 넘어서기도 했습니다.(그 후 문국현의 완벽한 실패는 다음에 논하기로 하겠습니다) 적어도 진보주의자로서 당당하게 가치를 주장하는 미국의 오바마가 너무나 부럽습니다. 오바마는 지금 ‘꿈과 변화(Dream and Change)’를 용감하게 외치고 있는 겁니다.
K형!
오바마의 이야기가 참 길었습니다.
편지 제목처럼 이제는 ‘한국의 오바마’를 이야기해야 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오바마같은 정치인을 찾을 수 있을까요? 섣부른 결론이지만, 아마 있을 겁니다. 한국의 사회 시스템으로는 비주류 중에 ‘비주류 소수파’가 정치에서 대성(大成)하는 것은 쉽지는 않겠지만, 존재하지 않을 이유도 없습니다. 굳이 꼭 정치인 안에서만 찾을 필요는 없겠지요. 오바마도 정치입문 12년 만에 대권에 도전했습니다. 적어도 한국사회는 80년대 민주화 성취 이후에 각계각층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사람들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분들 중에서 보통사람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공감하며, 함께 성장해온 눈물 있는, 감동 있는 개인의 역사(History)가 있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영혼’이 있는 사람, ‘철학’이 있는 정치인,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지도자는 어쩌면 ‘한국의 오바마’가 아니라 그 자신일 겁니다. 오늘도 저는 진짜배기 진보주의자! 그를 기다립니다.
K형! 두서없는 긴 글, 이만 줄입니다. 강건하시길 빕니다.
2008년 10월 22일(수)
김두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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