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콩밭을 좋아합니다. 콩자루가 달리기 시작하면 새들은 콩밭에 더 자주 내려앉습니다.
특히 꿩은 아예 콩밭에 둥지를 틀기도 합니다. 그럴때면 어김없이 그 자리에 허수아비가 세워집니다.
허수아비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콩밭 주인을 많이 닮아있습니다. 키가 크신 정택이 아제네 콩밭의 허수
아비는 키가 2m도 넘고 국화네 허수아비는 노란 작업모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허수아비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모자는 밀짚모자입니다.
언젠가 남도를 지나다가 허수아비 축제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새들이 날아오지 않는 곳에
세워진 허수아비는 새가 아니라 사람을 속이기 위한 것처럼 느껴졌고 오히려 허수아비 축제가 이 땅의
죽음을 알리는 전조처럼 느껴져 씁쓸했습니다.
제가 지난 2년 동안 천성산을 떠나 이 오지에 틀어박혀 살면서 산막일지를 띄웠던 것은 땅이 죽어가고
있다는 절박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고 도시의 황폐함에 면역되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연을 바라보는 작은 들창 같은 역할을 하게 되기를 빌었지만......
때로는 두 팔을 펄럭거리고 서있는 저 콩밭에 세워진 허수아비 같은 제 처지를 생각합니다.
누가 저를 이 산골짝 한 귀퉁이 밭 가운데 세워두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견딜 수 없네
정현종
갈수록, 일월(日月 )이여 ,
내 마음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가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들
그림자들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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