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움직이는 시

견딜 수 없네 - 정현종

이산저산구름 2008. 8. 19. 10:39

새들은 콩밭을 좋아합니다. 콩자루가 달리기 시작하면 새들은 콩밭에 더 자주 내려앉습니다.

특히 꿩은 아예 콩밭에 둥지를 틀기도 합니다. 그럴때면 어김없이 그 자리에 허수아비가 세워집니다.

 


                                                                                    www.chorok.org

           

 허수아비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콩밭 주인을 많이 닮아있습니다. 키가 크신 정택이 아제네 콩밭의 허수

아비는 키가 2m도 넘고 국화네 허수아비는 노란 작업모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허수아비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모자는 밀짚모자입니다.

언젠가 남도를 지나다가 허수아비 축제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새들이 날아오지 않는 곳에

세워진 허수아비는 새가 아니라 사람을 속이기 위한 것처럼 느껴졌고 오히려 허수아비 축제가 이 땅의

죽음을 알리는 전조처럼 느껴져 씁쓸했습니다.

제가 지난 2년 동안 천성산을 떠나 이 오지에 틀어박혀 살면서 산막일지를 띄웠던 것은 땅이 죽어가고

있다는 절박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고  도시의 황폐함에 면역되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연을 바라보는 작은 들창 같은 역할을 하게 되기를 빌었지만......

때로는 두 팔을 펄럭거리고 서있는 저 콩밭에 세워진 허수아비 같은 제 처지를 생각합니다.  

누가 저를 이 산골짝 한 귀퉁이 밭 가운데 세워두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견딜 수 없네                             

                        정현종

 

갈수록, 일월(日月 )이여 ,

내 마음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가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들

그림자들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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