⑴ |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
⑵ |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싸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
⑶ |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로밤 뽀오� 흰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
⑷ |
이것은 아득한 �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든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룻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 |
⑸ |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적 큰마니가 또 그 집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적 큰 아바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
⑹ |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
⑺ |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
⑻ |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 쩔 끓는 아르�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
⑼ |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
⑽ |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
‘국수’, 「문장3권 4호」, 1941. 4. |
백석(1912~1995)의 시「국수」는 눈 오는 겨울을 기다리는 북방 사람들의 식도락이 느껴지는 시이다. 눈 오는 겨울은 야생 동물의 사냥이 자유롭다. 겨울에 눈이 내려 땅을 덮으면 산 짐승들이 먹을 것이 없어져서 마을로 내려오다가 눈구덩이에 빠지거나 올무에 걸리기도 한다. 혹은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이 빌미가 되어 사냥꾼들이 사냥감을 쫓아가기가 쉽다. 요즘처럼 먹을 고기가 흔하지 않던 1920~1950년대에는 겨울철이 토끼나 꿩 같은 날짐승, 들짐승의 고기 맛을 쉽게 볼 수 있는 철이다. 그래서 시인은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라고 하며 야생의 고기와 함께 만든 어떤 음식 맛을 볼 수 있는 겨울철을 기다린다. 시의 한 문장마다 표시된 번호를 보면 모두 10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수사적 복선이 깔려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⑴에서 ⑸까지와 ⑹에서 ⑽까지가 각각 같은 수사법을 구사하고 있다.
⑴ ~ ⑸ 이것은 오는 것이다. ⑹ ~ ⑽ 이것은 무엇인가
⑴과 ⑹의 문장에서는 ‘그 무슨 반가운 것’,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라고 하며 ‘반가운’이란 말이 반복된다. 나머지 4문장에서는 각각 거의 같은 표지로 앞의 문장에서는 ‘이것은 오는 것이다’가 반복되고 뒤의 다섯 문장에서는 ‘이것은 무엇인가’가 반복된다. ‘이것’이라는 대명사적 표현이 반복되면서 정확히 ‘이것’이 무엇인지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어느 정도의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퀴즈처럼 시 본문 안에서는 암시만 되어 있고 시 본문 밖에서, 즉 제목에서 비로소 이것의 모습을 밝히고 있다. 첫 번째 문장을 보면 눈이 많이 와서 산짐승, 들짐승들이 쉽게 사냥감으로 등장하면 마을에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온다고 했다. 두 번째 문장을 보면 이것은 다음과 같은 속성이 있다.
① 이것은 겨울에 꿩고기 토끼 고기와 함께 먹는다. ② 밤에 먹는다. ③ 외딴 산 옆 언저리 비탈밭에 재배한 메밀 등을 수확한 계절에 온다.
세 번째 문장을 보면 이것은 소기름 불이 뿌연 부엌에서 산멍에(산몽애, 산무애 뱀, 전설상의 커다란 뱀, 이무기) 같은 분틀(국수틀)을 타고 온다. 네 번째 문장을 보면 이것은 봄비, 여름 볕, 갈바람을 지나서 마을 사람들의 의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함박눈이 쌓이는 밤에 아버지와 아들에게 왕사발, 새끼사발에 그득히 담겨 오는 것이다. 이런 표현을 보면 이것은 마치 기독교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소리 없이 들고 눈 오는 밤에 오듯이 스르르 군침을 돌게 하며 오는 것이다. 다섯 번째 문장을 보면 이것은 곰의 잔등에서 자란 먼 옛적 큰마니(할머니의 평북방언) 같이 오거나, 거인이라 목소리가 우렁차서 한번 재채기를 하면 산너머 마을까지 들렸다는 큰 아버지(할아버지의 평북 방언)처럼 온다는 것이다. 곰과 가까운 먼 옛 할머니는 원시 토템 조상 할머니일 것이다. 그리고 산너머 마을까지 재채기가 울리게 하는 거인 장사 할아버지는 원시 거인 조상 할아버지일 것이다. 사람들이 먼 옛적 원시 조상 할머니나 조상 할아버지가 오신다면 바짝 긴장하고 기다리듯이 한겨울의 국수 새참을 마을 사람들이 그렇듯 간절히 기다린다는 것이다. 여섯 번째 문장부터는 이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묘사적 표현에 들어간다. 일곱 번째 문장에서 이것은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하다는 맛으로 묘사한다. 여덟 번째 문장에서 사람들은 이것을 얼음이 얼은 시원한 동치미 국에 말아 먹어도 좋고 얼얼한 고춧가루를 넣어 먹어도 좋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넣어도 좋다고 한다. 이것에 탄수(식초)나 수육을 삶아 넣어도 좋으며 삿방의 쩔쩔 끓는 아랫목에서 먹기에 좋다고 설명한다. 뜨끈한 방에서 찬 냉면을 먹는 모습이 상상된다. 아홉 번째 문장에서는 이 조용한 마을과 마을사람들이 오랜 세월동안 반복해서 지속적으로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라고 반문한다. 네 번째 문장과 의미가 중첩되는데 오랜 세월 이 마을사람들이 좋아해 왔던 음식임을 말하고 있다. 열 번째 문장에서는 이 고담하고(속되지 않고 아취가 있고) 소박한 이것은 무엇인가라고 묻고 있다. 아득한 옛날, 고대로부터 시인의 고향, 평안도 사람들이 겨울밤 새참 음식으로 사랑했던 토끼 고기 넣은 메밀국수나 꿩고기 넣은 냉면을 침 삼키며 생각하게 된다. 서양 사람들이 온갖 다양한 재료로 만든 스파게티를 전 세계인의 음식으로 퍼뜨렸듯이 한국의 국수도 다양한 고기와 다양한 양념과 다양한 밀 재료가 어우러진 우리나라의 국수가 영양가 만점의 맛있는 음식으로 사랑받고 있음을 이 시에서 시인은 절절하게 노래하고 있다. 우리도 다양하고 맛있는 국수 음식 문화가 있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어서 집에 가서 양지머리 고은 국물이나 멸치 국물에 갖은 고명을 넣은 잔치국수를 만들어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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