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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금니 하나

이산저산구름 2007. 10. 1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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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금니 하나
     
어금니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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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며  간지런하게 솟아, 마치 어여쁜 옥수수 같다는  소리를 듣던  구담 댁 이빨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흙벽돌 허물어지듯이  하나 둘 빠지기 시작했다.

  

 제목: 어금니 하나

  

구담 댁 할머니는 어금니 두 개만 남고  이빨이 다 빠지고 없는 분이다.

보통 어금니 먼저 빠지는데  이상하게 어금니 두 개만 남아  평소에는 가능한 밥을 질게 하여 우물우물 잡수시다가 누군가 뽁은 콩이라도 주면 남아있는 두 개의 어금니로 가만가만 콩알을 입안에 굴려서 두 개의 어금니로 깨물어 드실 때도 있었다.


한마디로 구담 댁 할머니 어금니 두 개는 자식만큼은  소중한 것이 아니지만 참으로 소중한 것이다.


그런대 반년 전 부터 어금니가 시큰 거리고 턱이 덜덜 떨릴 정도로 매운 진통이 하루 종일 오고나서  결국 아래 어금니가 빠졌다. 잇몸이 유독 튼튼하지 못하여 늘 치통으로 매를 먹었는데...그때 마다 읍내에 치과의사가 없으니 그저 치통이 시작되면 고통에 겨워 눈물만 찔끔찔끔 거리기도하고 치통에 좋다는 상추 대궁에 불을 붙여서 피우기도 했다. 한바탕 치통으로 고생을 하고나면

 

"내사 애 하나 더 낳으라면 낳게지만 당체 치통은 생 모서리가 난다!"

 

사실 정돌로  구담 댁 할머니는 이빨로 고생이 많았었다.

 

 8년 전 할아버지는 이미 건너편 산자락으로 가시고 홀로 사시는 할머니 입안에 이빨은 어금니 달랑 한 개만 남으셨다.

 

구담 댁 할머니는 아침을 어제 저녁에 끓여놓은 죽을 우물우물 드시고는 서둘러 솔리 댁 할머니 집으로 갔다. 왜냐하면 예천 솔리 댁 할머니가 지난 추석에 객지에 나 간 아들딸들이 주고 간 돈으로 오늘 틀리를 맞추는 날이기 때문이다. 구담 댁 할머니가 솔리 댁 할머니 집에 들어서자  벌써 대추나무 골 맹순이 할머니, 큰 살구나무 집 미우리 댁 할머니도 와 계셨다. 다들 성한 이빨이 없어 입이 오그라진 할머니들이시다. 큰 살구나무 집 미우리 할머니는  외국서 돈 벌어  온 아들 덕분에 이미 번쩍 번쩍 금이빨을  여러 개 하신 분이다. 처음 미우리 댁이 서울 아들 집으로 올라가서 이빨을 해 넣고 마을로 돌아 왔을 때 ....할머니들이 다 모여서


“미우리 댁은 이빨을 야매로 했닛껴..아이믄 치과에서 했닛껴?” 하고 물었다.

“내 이빨은  야매 이빨 아니래, 아들이 잘 아는 서울 치과의사한데 했어”


입을 아!.....


하고 벌려서 반짝반짝 하는 금이빨을 보여주시자

다들  미우리 할머니 금니를 보면서 부러워하셨다.


“야매로 안하고 서울가서 하면  언간이 비싸지요?”

“비싸지!”

“옳키 할려면 맹앵 치과의사에게 해야지!..야매로 했다가 잘 못되면 우짜노”

“야매 보다 얼매나 더 비싸닛껴?”

“비싸...이번에 총 네 대 하는데 3백 만 원 줬어”

“저런!”


300백 만 원 들어갔다 하자 할머니들이 다들 놀랬다.


이미 야매로 이빨을  하신 궁구리 댁 할머니에게 구담 댁 할머니가 물었다.


“야매로 하면 얼마드닛껴?”

“요즈음은 모르지...전에 내 할 때 60만원 줬어  ...야매로 해도 괜잖아 내 아랫니는 벌써 10년 넘었어”

“야매로 하는 그 양반 곧  올낀께네..그때 물어 보소”


오늘 야매 이빨을 하기로 한,  솔리 할머니가 말하셨다.


“맞니더..야매로 해도 괜잖다카디더...300만원 먹고 죽을라캐도 없는데..고마 이빨 없이 살다가 죽지 그 큰돈으로 우째 하닛껴? 비싸게 이빨하고 덜컥 죽었뿌마 돈 아까워 우째 하닛껴!”


달랑 한 개만 남은 구담 댁 할머니가 300만원이라는 돈에 가슴이 철렁하듯이 말했다.


“우리 아들은 신식 이빨을  세대했는데...600만원 더 들었다카디더!”


온 미우리 댁 할머니가 또 자랑스럽게 아들 이빨 이야기를 했다.


“저런 이빨 세대에 6백 만 원요?..잘 못 들은 것 아잇껴?  지난번 우리 팔려고 하니 삼백 만원 준다카던데...집보다 더 비싸네...설마 이빨 해 넣는 것이 집보다 더 비쌀랏꼬!  ”

“아이래..맞아, 요즈음은 이빨은 턱 뼈에 구멍을 뚫고 외국서 수입한 이빨을 심는데..플란트라카던가 이푸란트라카던가 그런게 있어!”



구담 댁 할머니는 자신은 오늘 야매 치관의사에게 어금니 한 개만 더 하면 얼마 드는지 알아보려고 왔는데...미우리 할머니가 6백만 원 운운 하시자 그  말에 영 낙심이시다.

 

가을 하늘은 점점 높아져서 아주 얇은 새털구름을 아득하게 깔아놓고

앞마당에 대추는 붉은 알을 가을 햇살에 주렁주렁 반짝이고

그 대추나무에 한 무리 참새들이 호들갑을 떨면서 앉았다가 금방 호들갑을 떨면서 다시 건너 편 대나무 숲 쪽으로  날아갔다.


마당에 다 늙은 똥개는 꼬리 들 힘도 없는지 긴 꽁지를 축 느리고 마구 칸 앞에 엎드리고 있더니 다시 일어나 어슬렁 어슬엉 통시 칸 앞으로 가서 주둥이를 땅에 쭈-욱 깔고는 멍석에 둘러앉아 가을 양대 콩을 까는  할머니들을 견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할머니들이 마당에서 둘러 앉아  이런저런 이빨 이야기를 하는데

마침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가방을 든 이빨 야매 기술자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이 산골에서 아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면서 늙은 어르신들에게 야매로 이빨을 해주는 사람인데....이 지방에서 알 사람은 다 아는 사람이다.

이미 그는 불법의료 행위로 한번 교도소에 다녀 온 적도 있었다.

야매 치과 의사가


“할매요 방으로 들어가시더...괜히 이빨 하는 것 다른 사람들이 보면 안좋니더”


그리하여 다른 할머니들은 마당에서 계속 양대 콩을 까고 솔리 댁 할머니만 방안으로 들어가서 틀리 본을 뜨기 시작했다.


한 참을 지나 솔리 댁 할머니 틀리 본을 다 뜨고  야매 치과의사는 서둘러 솔리 댁 할머니 집을 나서는데 문 밖에까지 따라 나오던  구담 댁 할머니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저어 선상님 뭐 쫌 물어보시더”


하면서 야매 치과의사를 소매를 붙잡았다.

다들 틀리를 하는데..자신은 그럴 돈도 없고 달랑 한 개의 어금니만 할 계획인지라 동네 할머니들 없는 집 앞 골목에 나서서 야매 치과의사를 붙잡고 물었다.


“할매 왜카시닛껴?..이빨하실랏꼬요?”

“틀리 안하고 어금니 이빨 하나만 하면 얼마 드닛껴?”

“하나 만요? ..얼매 안드니더만 양쪽으로 이빨이 성해야 같이 묶어서 하기 때문에 한 대 값은 사실 없니더”

“한대만은 안해 주닛껴?”

“한대만은 인플란트는 가능하지만 나는 그것은 안하니더”

“아이고 외국 이빨은 엄청 비싸다카디더만”

“외국 이빨이 아니고요 턱 뼈에 심는 그런게 있니더”

“할매 이빨을 한번 보시더”

“이빨은 없어요...어금니 한 개만 남았니더”

“할매요 어금니 한 개 남았는데 한 개 더해서 무엇에 쓰닛껴?”
“아이고 나는 겟주메이 돈도 없고 한 대만 해서 어금니 두 개로 그냥 죽는 날 까정 살라캐는데 안되닛껴?”

“안되니더...틀리 하시기전에는”

“틀리하면 비싼잖닛껴?”
“고마 헐케 해드림시더 할매요”

“헐케해서 얼마드닛껴?”

“90만원만 주이소”

“아이구..글키 비샀이겨?”

“할매는 아들 손자도 없닛껴?...틀리 하나 못하시게! 그카고 90만원이면 엄청 싸게 하는 것씨더”


야매 치과의사가 가방을 들고 난감한 듯이 구담 댁 할머니에게 도시에 나가서 살고 있을 자식을 들먹였다.

야매 치과의사에게 달랑 한 대의 어금니만 맞추고 싶은 자신의 의도가 수포로 돌아가자 구담 댁 할머니는 크게 낙심하여 집으로 돌아오는데

건너 마을 이장이 오토바이에 아내를 태우고 횅하니 조금 떨어 진 국도를 지나가고 건너 편 콩 밭에서는 가을걷이 이후에 남은 콩 잎을 태우는지 흰 연기가 하늘로 슬금슬금 올랐다 .


다음 날 오후에 구담 댁 할머니는 이장 경운기를 타고  읍사무소로 갔습니다.

이미 몇 차례 읍사무소에서 매달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교통비 6만원 돈을 찾아 가라는 기별을 동장을 통해서 받았지만 구담 댁 할머니는 그 돈 받으면 써 버릴까봐 적금 하는 셈으로 아예 수령을 비루고 있었습니다. 작년에 일 년 동안 수령하지 아니하고 년 말에 한꺼번에 탄 돈 72만원은 둘째 아들 이혼하고 남긴 손자 고등학교 올라갈 때 교복 사주고, 그리고 방학 때 서울서 오는 손자들 용돈 으로 매우 유용하게 사용했습니다.


읍사무소에 보관 된 돈이 번한 것이지만 치과 의사가 남들보다 더 싸게 90만원에 틀리를 해 준다고 하니 일단  읍사무소에 얼마나 교통비가 쌓였는지 알고 싶어서입니다.


담당 아가씨에게 자기 앞으로 모여 있는  교통비 합산이 얼마냐고 물으니


“할머니 총 54만원 모였네요..오늘 찾아가세요”

“아이씨더 냅두이소”


손을 흔들며 아직 그 돈을 타고 싶지 아니하다 하였습니다. 어차피 90만원이 안되며 틀리를 못할 판이니 그냥 그 돈을 그대로 읍사무소에 맡겨 두었다가 겨울 방학 전에 타고 싶어서입니다. 겨울 방학 때면 또 객지의 손자들이 올지도 모릅니다. 특히 술버릇이 나빠서 사위와 덜컥 이혼해버린 셋째 딸이 낳은 외손자가 마음에 늘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딸 이혼 후에 중학교 올라 갈 때까지 할머니가 키우다가 지금은 부산에 자기 아버지에게 가서 살지만 사위는 병이 들어 병원에 입원했다하고 외손자는 이제 고등학교를 올라가야 하는데 교복 맞출 돈도 없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가 교통비를 수령 아니 하려고 하자 담당 아가씨는


‘할머니 오늘 수령 하세요, 이거 매달 수령 해 가셔야 하는데 안 해가시면 저희들도 관리가 골치 아파요“

“돈이란 찾아가면 써뿔까봐 그카니더...모다서 틀리를 하던가 우리 외손자 교복을 맞추어 주던가.. 할라카니더”

“아이고 할매요...집에 갖고 가서 안 쓰면 되잖아요?”
“사람 일이 그래되닛껴...겟주메이 돈 들어오면 써뿌지...호호”


이미 혼자 사신지가 여려 해이고 수입이 당체 없으니 읍에서 조금 어려운 할머니들이게 지급하는 매달 교통비 6만원이니 유일한 수입입니다.
그래도 한 달에 6만원... 얼마는 든든한 수입인지 그 기분 아무도 모릅니다.

 

구담 댁 할머니는 결국 읍사무소에서 교통비를 수령하지 아니하고 돌아서서 사람들도 별로 없는 오일 장터를 괜히 이리저리 둘러보고는 버스 정류소를 가려다가 날씨도 좋으니 그냥 버스비도 아낄 겸  쉬엄쉬엄 솔리까지 걸어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읍사무소에서 솔리 마을 까지는 족히 20리가 넘습니다.


구담 댁 할머니가 솔리 마을로 돌아가는 길은 비록 시골 국도 길이지만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머-얼리 저수령 고개 마루가 늘 변함없이 무덤덤하게 보이고 높은 가을 하늘엔 홑이불에 목화 솜 깔아놓은 듯 새털구름이 둥둥 떠 있습니다. 산 아래 나래비로 자리를 잡은 가을 논은 황금 띠를 두르고 꾸불꾸불 논 둑 따라서  메주콩이 누렇게 익어 흔히 도시 사람들이 가을 풍경을 떠 올리는 고호의

“해바라기 들판”


풍경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문득 그 옛날이 떠오릅니다. 친정 구담에서 시집간 솔리까지는 무려 60리입니다.

해방 이듬해 친정어머니가 해 준 시루떡을 한 지게 지고 앞서서 가는 새 신랑을 따라서 솔리 마을까지 걸어서 시집와서 ....60년간 땅만 파먹고 사신 분입니다. 바로 엊그제 새 신랑 따라 걸어왔던 그 길을 이제 이빨도 다 빠지고 없는 호호백발 할머니가 되어서 걸어갑니다.


꾸부정한 산마루를 휘 감아 돌아가는 국도 길섶에는 코스모스 하늘하늘 꽃이 지천입니다.

간간히 경운기가 지나가고 도시의 늘씬한 차가 스치기도 합니다. 그럴 때 마다 할머니 치마 자락도 바람에 하늘하늘 날리고, 코스모스 꽃도 일렁입니다.


할머니는 하늘하늘 코스모스 가을 길을 홀로 걸어가면서 읍사무소에 모아 둔 교통비로

틀리를 할까...아니면 금쪽같은 내 손자들 방학 때 오면 용돈으로 쓸까.... 아니면 외손자 교복 맞추어 줄까....이런 저런 생각을 하시다가 자신도 모르게 코스모스 아름답게 핀 가을 길을 걸어가면서 이런 신세타령이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팔청춘 젊은때는

이빨도 좋았지만

먹을것이 없었서

이빨쓸일 없었다네

호호백발 늙고나니

먹을것은 지천인데

이빨없어 못먹구나

금니틀리 하고파도

돈이비싸 못하겠네

이산골에 시집와서

조밭콩밭 일구면서

이태여태 살았는데

이빨할돈 없네그려

이내몸이 주책이지

육신-이 다늙어서

오늘내일 하면서도

비싼틀리 왠말인가

이가없어 불편하면

잇몸으로 살면되지

씹는것이 어려우면

죽써묵고 살면되지

그큰돈을 들여갖고

털컥죽어 자빠지면 

틀리값이 아까우니

얼매살지 모르지만

야매이빨 아니하고

북망산천 갈라하네


구담 댁 할머니는 생전에 시어머니가 자주 툇마루에서 흥얼거리던 것처럼 자신도 즉흥 타령을 혼자 중얼중얼 하시다가 숨이 차오르시자 잠시 멈추어 지팡이를 의지하여 굽은 허리를 세우고 긴 한숨을 들어 마셨다.


가을 김장 배추를 가득히 싣고 대형 트럭 두 대가 바람을 일으키며 쏜살처럼 저수령 고개 쪽으로 내 달렸다.


그 바람에 코스모스 꽃이 휘몰이로 또 흔들렸고

할머니 치맛자락도 꽃잎처럼 흔들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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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랑지 단상.

 

 그름아 그름아 하는 넘이 오랜만에 어느 시골 할머니 틀이 이야기를 적어 보았다.

할아버지들 보다 십수년 더 장수하시는 할머니들의 최대 고민은 이빨이시다.

귀야 멀어지면 안들으면 그만인데...하루 세번이상 식사를 하는 인간 삶에 이빨은 참으로 소중한데

문제는 틀리 비용이 엄청나다.

 

  차라리 못 먹고 살던 60년대는 그래도 농경사회 구조로 쌀 가마니라도 팔아 틀리를 해 넣을 수 있었지만 이제 도농수입 격차가 하늘과 땅으로 벌어지고 이빨 제되로 하려면  이제 논 농사 10마지기  나락을  팔아도 불가능한 세월이다보니 늙으신 노인들도 그렇치만 이제 50대들도 빠진 이를 해넣치 못하고 그냥 사는 사람들이 늘어 났다. 이빨은 의료보험 혜택도 안되고 더욱이 인구 밀도가 낮아지면서 이젠 왠만한 시골 읍에는 치과의사가 아예  없다. 그러니 치료는 고사하고 이빨이 시큰거리고 아파도 밤새 끙끙 ...참는 길 밖에 없는 세월이다.

 

 도대체...수입 인�란트 앨러맨트가  개당 가격이 단돈 1만5천선인데..우째 그리 이빨 값이 비싼가?

돈 많은 도시 사람들이 멀쩡한 이빨..이리저리 손보는 이빨 성형시대다보니 자연 치과의료비도 하늘처럼 높아진 것 같기도 하다.

 

비록 법되로 하면 당연히 감옥에 보내야하지만 당국은 제발 그런 돈없는 할머니들에게 값싸게 이빨 해주는 산골  야매 치과의사들 .....못 본 척 했으면 하는 세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