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의 순례길, 산티아고 가는 길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가는 길. 1986년, 파울로 코엘료는 이 길을 걷고 나서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오랜 시간 자신의 꿈이었던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연금술사]를 비롯한 그의 작품 대부분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겪은 경험에서 나왔다고 자신의 산티아고 순례기를 담은 '순례자'에서 그는 고백한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성 야고보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고 전해지는 산티아고 성당까지 가는 순례길은 몇 가지 경로가 있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길은 스페인 접경에 있는 프랑스의 생장피드포르에서 시작하여 스페인 북부를 8백여 킬로미터 서쪽으로 가로지르는 노정이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 또는 그냥 ‘카미노’(the Camino, 길)라고 불리는 이 길은 9세기 이래로 수많은 순례자들이 삶의 의미를 물으며 걸어간 길이다. 전승에 의하면, 산티아고는 벌판의 양치기들이 빛나는 별을 보았다는 곳이며(그래서 산티아고는 ‘콤포스텔라’ 곧 ‘별들의 벌판’이라고도 불린다), 또 예수 사후에 성 야고보와 성모 마리아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지나간 곳이라고도 한다(‘산티아고’는 ‘성 야고보’라는 뜻이다).
중세기에 종교적 동기에서 수많은 순례자들이 찾던 이 길에 최근 ‘인생의 순례자’들을 모여들기 시작했다. 1986년 코엘료가 이 길을 걸을 때만 해도 1년에 400명 남짓하던 순례자의 수가 지금은 여름 한창때면 하루에 1천 명이 넘는다고 한다. 기독교인 순례자들 외에도 수많은 순례자들이 이 길을 찾고 있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종교에 관계없이 서로를 순례자로 부르며, 자신이 순례자로 불리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모든 인생이 결국 인생길의 순례자이기 때문일까? 순례길이란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한 달 이상을 걸어야 하는 이 길에는 변변한 편의시설은커녕 잠잘 곳을 잡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만큼 여행자에게는 열악한 길이다. 그런 길이 이토록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느긋하게 걸어라]는 예순을 앞둔 노 수녀 조이스 럽이 그의 20년 지기이자 은퇴한 노 목사인 톰 페퍼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가며 건져 올린 인생의 교훈과 깨달음을 25개의 주제로 정리한 책이다. 800킬로미터의 먼 길을 36일간 걸어가며 겪은 신산고초의 경험과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일상적인 삶과 인생의 의미를 돌아보고 재발견하여 들려주는 저자는, 수녀이자 작가로 평생을 살아온 이력답게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닿는 이야기를 전한다. 노숙한 수녀다운 여유와 노련한 작가다운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도 평범한 사건 속에 담긴 의미를 발견해 내는 저자의 눈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자기 삶을 돌아보도록 이끈다.
매일의 삶이 곧 순례요 모험이다!
인생은 흔히 여정에 비유된다. 인생도 여정도 모두 우리 앞에 놓인 길이며 그 길은 우리에게 걸어갈 것을 요청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따금 여행을 꿈꾸고 순례길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발견하고자 하는지 모른다. “모든 의미 있는 여정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를 변화시킨다”(20쪽). 저자는 여정이 삶에 불러오는 변화는 여정 중에는 거의 느껴지지 않지만 나중에 돌아볼 때에야 비로소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변화의 내용은 성장, 곧 성숙이다. 이 책은 저자가 순례길에서 경험한 “뜻밖의 성장”에 관한 기록이며, 성숙의 경험 속으로 독자를 초대하는 책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성숙이며, 그 성숙의 길 가기를 멈추지 말라고 저자는 권한다.
카미노에서 저자는 우리의 일상이 곧 순례요 모험이며 인생이 곧 길(the Camino)임을 재발견한다. 사실 저자가 풀어 놓는 순례길의 다양한 에피소드와 만남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그 경험이 우리가 일상 중에 겪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 길에는 진지한 순례자, 신사와 천사만 있는 것이 아니며 영감어린 경험만 따라오는 것이 아니다. 그런 복된 일이 없지 않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그러나 삶의 중심을 들여다보려는 순례자의 눈으로 보면 뜻밖의 사건, 예기치 못한 만남도 성장으로 내모는 동력이 된다. 특별한 여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성숙하는가는 우리가 거기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저자 자신의 생생한 경험을 토대로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은 빠르게 나아가는 세상의 보폭을 따라가느라 지쳐 있거나, 과중한 업무의 중압감에 만성적으로 시달리고 있거나, 그래서 자신이 지금 어느 길로 가고 있는지, 인생길을 제대로 걷고 있는지 돌아볼 겨를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점검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 인생에서 성숙과 성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바쁜 세상에서 우리의 인격과 마음이 어떻게 성숙해 갈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느긋하게 걸어 보라, 내려놓으라, 현재를 살라, 멈추어 되돌아보라”는 저자의 권면은 말뿐인 충고가 아니라 마치 나를 잘 아는 멘토의 진심어린 말처럼 다가온다.
누구든 인생을 잘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좀처럼 그 바람대로 되지는 않는다.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할 겨를도 없이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기 삶에 대한 만성적인 불만과 불안이 있지만, 그것을 해소하거나 해결하지 못한 채 그냥 살기에 바쁘다. 그러다가 큰 사건을 겪을 때마다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인생에 대한 질문을 다시 꺼내서 펴 보곤 한다. 내 인생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내 인생 여정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고민을 가져 본 독자에게 이 책은 일상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을 열어줄 것이다. 인생이라는 여정에 다시 한 발을 내디딜 용기를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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