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 싶은 글

북녘 도서에 나오는 백제와 신라 이야기

이산저산구름 2006. 12. 20. 08:28
북녘의 “조선력사” 교과서 이야기 ④

  오늘은 북녘의‘조선력사’ 교과서에 나오는 백제와 신라 이야기를 해보자.


  환인에 있었던 구려에 들어가 그 관내에 있는 졸본의 귀족 소서노의 도움으로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 즉 동명왕은 구려 왕의 딸과 결혼하여 ‘비류’와 ‘온조’ 두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어느 해 봄날 부여에서 태어난 다른 아들 (우리는 ‘유리’라고 알고 있는)‘유류’가 동명왕을 찾아 왔다.

MBC 드라마 ‘주몽’의 해모수와 유화부인
  주몽은 부여를 떠나올 때 안해에게 “내가 표식으로 남겨 둔 물건이 있으니 만일 아들을 낳거든 큰 다음에 소나무기둥 아래에서 물건을 찾아 내면 나의 아들이라고 말해 주라.”고 했었다. 유류는 소나무기둥 밑에서 찾아낸 칼 한 조각을 동명왕에게 바치자 동명왕은 그것을 자기가 가지고 있던 다른 조각과 맞추어 보았더니, “칼쪼각들에 피가 흐르면서 하나의 칼로 이어 졌다”고 한다.


  그러나 동명왕은 “네가 정말 내 아들이라면 어떤 신통한 재주가 있느냐.”고 물었고, 이 말이 떨어지자 유류는 “곧 몸을 솟구쳐 하늘높이 올라 갔다가 창문턱을 타고 해빛을 막았다.” 드디어 동명왕은 크게 기뻐하며 유류가 자기의 왕 자리를 잇도록 하였다.


   이렇게 되자 비류는 온조에게 “이제 나라는 유류에게 속하게 되였다. 우리가 하는 일없이 여기에 있다가 쓸모 없는 혹처럼 될수 있으니 남쪽 지방으로 가서 알맞는 땅을 찾아 나라를 세우자.”고 하였다. 이리하여 두 형제가 10명의 부하들을 데리고 남으로 남으로 내려와 ‘한산’(오늘의 서울 부근)이라는 곳에 이르러 성을 건설하고 농사도 짓다가(아마도 ‘십제’를 말하는 것 같다), BC 3세기 중엽에 ‘위례성’에 수도를 정하고 작은 나라를 세워 이름을 ‘백제’라고 하였다.

몽촌토성
  그런데 우리가 이를 ‘온조백제’라고 부르는 이유는, 형 비류가 이곳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서쪽의 ‘미추홀’(오늘의 인천지방)로 떠났는데 그곳은 습기가 많고 물이 짜서 살 수 없어 할 수 없이 위례성으로 찾아갔는데, 그때는 이미 온조가 나라를 세웠기 때문이었다. 비류는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사람들이 살 수 없는 곳으로 갔던 자기 행동을 부끄럽게 여기다가 병들어 죽었다고 한다.


  한편, 신라의 건국에 대해서는 지금의 경주지방에 세워진 ‘사로국’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점에 있어서는 남과 북이 공통이다. 그런데 남녘에서는 이 지역의 북쪽과 서쪽이 산맥으로 가로막혀 있어서 유이민 집단의 이주가 활발하지 못해 토착세력의 힘이 강했고, 따라서 유이민들이 이들 세력에 흡수, 동화되었다고 본다.

경주의 계림
  이에 비해 북녘에서는, 그냥 유이민이 아니라, 고조선과 고구려에서 옮겨 온 사람들이 본래 이곳에서 살아가던 사람들과 힘을 합쳐 나라를 세웠다고 하면서, 이들 유이민은 발전된 나라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들에게서 토착세력들이 많은 것을 배웠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 증거로 사로국의 창시자 ‘박혁거세’의 전설을 소개하면서, 혁거세와 여섯 마을 우두머리(6부족 연맹체)가 하늘에서 내려 왔다고 한 것은 바로 이들이 고조선과 고구려 사람들이 옮겨온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어쨌든 ‘박’씨 성도, 이전에 말한 것처럼, 단군이나 동명왕과 마찬가지로 ‘밝음’을 뜻하기 때문에 설득력 있는 설명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고조선, 고구려, 신라 모두가 밝음의 원천인 ‘하늘’의 자손, 즉 천손임을 증명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