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 싶은 글

우리는 모두 조난자다

이산저산구름 2018. 11. 23. 09:33
우리는 모두 조난자다
 
어린 시절 상상의 세계를 풍요롭게 해주던 대표적인 탐험 혹은 모험 소설은 <걸리버 여행기>나 <로빈슨 크루소> 등이었다. 나는 그 책들을 동화와 만화로 거의 동시에 읽었는데 어린 마음에 그 내용에 너무 빠져든 나머지 한 달 가까이 내가 무인도에 표류하는 꿈에 시달리곤 했다.
 
꿈은 나의 상상력을 십분 발휘해 갈수록 내용도 복잡해지고 난해하게 전개되었다. 처음엔 한없이 뗏목을 저었으나 뗏목은 여전히 바다 한가운데 떠 있거나 배가 고파 열매를 따러 나무 위를 기어오르는 장면이 펼쳐지다가 갈수록 길고 고달픈 스토리가 이어졌다. 기괴한 생김새의 식인종에게 쫓기거나, 힘들고 복잡한 그런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시퍼런 바닷속으로 뛰어들기도 했으니 얼마나 스펙타클한 꿈이었겠는가.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의 외롭고 답답한 마음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어른이 되어도 결코 다르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면서 단절감이나 고립감만큼 무섭고 두려운 것도 없을 것이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회관계망에서 소외된다는 것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심리적 고통과 후유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독일의 시인 슈테판 게오르게(1868-1933)도 이렇게 말했다. "고독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고통이다. 아무리 심한 공포라도 모두가 함께 있다면 참을 수 있지만 고독은 죽음과 같다"고.
 
 
한 남자가 홀로 무인도에서 살아남는 분투기를 그린 <캐스트 어웨이(Cast Away, 2001 개봉)>는 인간의 고립을 그린 영화 중 단연 독보적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인류 사회와 완전히 단절돼 살아가게 되는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 역을 맡은 주인공은 누구보다 연기의 내공을 자랑하는 관록의 배우 톰 행크스가 맡았다.
 
세계적인 특송 회사 페덱스(FedEx)에서 근무하는 척 놀랜드(톰 행크스)는 꼼꼼한 분석가로 전 세계에 있는 창고를 방문하며 바쁘게 일한다. 영화는 러시아 모스크바 지부 창고에서 직원들에게 일장 연설을 하는 놀랜드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분류 작업을 3시간 안에 끝내시오. 그러지 못하면 우리의 주인인 시계가 우리 밥줄을 끊을 거요." 그는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모스크바로 오기 전 본인의 시계를 택배로 보냈다면서 그 택배를 열어 87시간이 지나 있는 시계를 직원들에게 보여준다. 
 
 
"이게 중요한 서류였다면 운명이 수천 번 뒤집혔을 시간입니다. 서두릅시다." 그는 시간에 매우 민감하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에 자신을 몰아넣는 전형적인 현대인이다. 놀랜드는 여자 친구 켈리 프레어스(헬렌 헌트)와 깊이 사랑하는 사이지만 막상 함께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크리스마스이브, 캘리와의 로맨틱한 데이트를 채 끝내기도 전 급한 호출을 받고 말레이시아행 화물 비행기를 타게 된다. 
 
 
둘은 또다시 연말을 기약하며 헤어지게 되고, 특별한 느낌이라도 예감한 듯 켈리는 할아버지 유품인 회중시계에 자신의 사진을 담아 놀랜드에게 선물한다. 그는 시계를 손에 꼭 쥐고 "곧 돌아오겠다"고 말하며 회사 전용기에 오르지만 착륙 직전 비행기는 그만 추락하고 만다. 그의 몸을 때리는 파도에 눈을 떠보니 그는 지금껏 경험하던 세계와는 180도 다른 무인도에 홀로 표류한 것이다. 
 
아름다운 해변과 무성한 나무, 높은 암벽이 있는 섬에서의 생존은 영화 속 그것만큼이나 아름답지 않은 새로운 경험들의 연속이었다. 놀랜드는 조금씩 정신을 차리면서 생존을 위한 삶에 최선을 다한다. 여기저기 비행기의 잔해에서 흩어져 나온 페덱스 택배물들을 한곳에 모으고 나무에 날짜를 기록해나간다. 보이는 것이라곤 망망대해밖에 없는 섬에서 게를 잡거나 먹을 수 있는 것을 구하는 등 그는 무인도의 생활을 버티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다. 
 
 
특히, <캐스트 어웨이>가 근 20년 전 영화라는 것을 생각할 때 무인도에서의 삶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그린 것이 더 큰 공감을 가져왔다...    [더보기]
     

<시니어리포터 이영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