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국무총리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정운현 전 팩트TV 보도국장(59)이 이낙연 국무총리가 비서실장직을 제안할 당시에 관한 일화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4일 공개했다. 정 신임 총리비서실장은 이 총리가 자신에게 “정 형, 제 길동무가 돼주세요”라고 말하며 비서실장직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총리는 자신에게 부족한 2가지를 정 총리비서실장이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그것이 “하나는 역사에 대한 지식, 또 하나는 정 형의 기개요”라고 말했다고도 전했다. 다음은 페이스북 전문.
“정 형, 제 길동무가 좀 돼주세요”
“어디 여행이라도 가십니까?”
“그게 아니라... 제 비서실장을 좀 맡아주세요”
“예? 저를요?…”
그날도 나는 새벽 5시경까지 글을 쓰고 정오가 넘어서야 일어났다. 넉 달째 쓰고 있던 ‘민족대표 33인’의 일대기 막바지 집필을 하던 중이었다. 안대를 벗고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위의 핸드폰을 열었다. 폰 상단에 걸려온 전화 표시가 돼 있길래 송수신 목록을 열어보았다. 정확히 오전 10시 19분에 이낙연 총리한테서 전화가 두 차례 와 있었다. 일단 세수부터 하고 와서 전화를 넣었다. 곧바로 연결이 되었다.
“두 차례나 전화를 주셨는데 제가 늦잠을 자느라 받질 못했습니다.”
“오늘 점심을 같이 할까 했는데 그건 이미 틀렸고... 내일 제 사무실로 좀 나오시겠소?”
“무슨 일로...”
“그건 내일 만나서 얘기합시다.”
이튿날 오후 5시에 광화문 정부 서울청사 총리실로 갔다. 7년 전, 인사동 음식점에서 이 총리 등 언론계 출신 4명이 회합했던 적이 있다. 그때 이후로 이 총리의 얼굴을 보기는 그날이 처음이었다. 나는 이 총리와 별다른 친분관계가 없다. 학연, 지연도 없고 혈연관계는 더더욱 아니다. 또 언론계 선후배 사이라고는 하나 다니던 회사도 다르다. 게다가 연차도 차이가 나서 이리저리 쉽게 친할 사이는 아니었다.(이 총리는 1952년생으로 나보다 일곱 살 많다. 내 큰형과 동갑이다)
모처럼 선배 사무실에 가면서 빈손으로 가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박카스를 한 박스 사서 가져가기도 좀 그렇고... 생업이 글쟁이다 보니 근년에 펴낸 책 두 권을 봉투에 담아 들고 갔다. <조선의 딸, 총을 들다>(2016)과 <안중근家 사람들>(2017). (*총리께서 두 권 모두를 페북과 트윗에 ‘주말독서’로 소개해주셨다) 내 근황을 말씀드리고 갖고 간 책 얘기로 10여 분을 보냈다. 그러다가 총리께서 첫 머리의 대화내용과 같은 얘기를 꺼냈다.
‘길동무가 돼 달라’
아둔한 나는 이 말의 뜻을 단번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새삼 놀랍기만 하다. 그런 얘기를 그렇게 멋스럽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싶다. 총리 비서실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은 전혀 뜻밖이었다. 사전에 그 누구로부터 어떤 언질도 없었다. 그 무렵 나는 가짜 독립유공자 문제 등 보훈처 관련 글을 종종 쓰고 있었다. 그래서 혹시 그와 관련된 자문을 좀 받으려고 그러시나 정도로 여겼다. MB 정권 초기인 2008년 10월, 나는 언론재단에서 강제로 쫓겨났다. 이후 꼭 10년간 야운비학(野雲飛鶴)을 벗 삼아 초야에 묻혀 지냈다. 일개 서생인 나는 정치에 대한 감각도 없고, 책략가는 더더욱 아니다. 이런 중대사를 빈말로 하실 분도 아니지만 대체 뭘 보고 나를 택하신 걸까.
총리이기 이전에 언론계 선배이니 편하게 맘먹고 다시 물었다.
“선배님, 이거 진짜로 두루두루 생각해보시고 내린 결론입니까?”
“그렇소, 정치인, 관료, 심지어는 언론계 출신 인사도 두루 고려해봤소.”
“……”
이미 결정을 내려놓고 말씀을 하시니 한사코 사양을 할 수만도 없었다. 그렇다고 잘 알지도 못하는 일을 덥석 수락을 하기도 또 그랬다. 입장이 난처해하는 나를 바라보면서 총리께서 말을 이었다.
“정 형은 내가 부족한 두 가지를 가진 분이오. 그러니 나를 꼭 좀 도와주세요.”
“부족하다고 하신 그 두 가지가 대체 뭡니까?”
나는 옆에 앉은 분이 총리라는 사실도 잊은 채 마치 따지듯이 물었다. 총리께서는 즉답 대신 내가 드린 책을 이리저리 살펴보셨다. 그리고는 잠시 뒤 답을 하셨다.
“하나는 역사에 대한 지식, 또 하나는 정 형의 기개요.”
“당치 않습니다. 후배한테 무슨 그런 말씀을요...”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오, 이건 내 진심이오!”
총리의 연륜으로 보나 형적(形跡)으로 보나 당치 않은 말이다. 이후 나는 몇 차례 반박을 했고, 총리께서는 또 내 말을 거듭해서 반박했다. 7년 만에 모처럼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논쟁 아닌 논쟁을 했다. 그러나 일국의 총리가 자신이 부족한 것을 좀 채워달라고 부탁하는 데 한사코 거부만 할 수도 없었다. 결국 나는 총리의 제안을 수락하게 되었다. 그러자 총리께서 몇 가지 당부와 배려의 말씀을 하셨다. 세상의 얘기를 가감 없이 들려 달라, 내가 미처 챙기지 못하는 것들을 챙겨 달라, 남이 잘 안하는 얘기를 들려 달라, 특히 내가 듣기 싫어할만한 소리를 많이 해 달라, 총리가 참석하는 행사에 번번이 수행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가끔씩은 나랑 같이 막걸리를 마셔달라...
그래서 나도 몇 마디 부탁말씀을 드렸다. 오늘 하신 말씀을 끝까지 지키셔야 합니다, 단 소리보다는 쓴 소리를 많이 할 겁니다, 마치 선조에게 극언조차 서슴지 않던 율곡 이이처럼 하겠습니다, 공직의 틀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평소 하던 대로 페이스북 등 SNS 활동은 계속할 겁니다(단, 정치적인 사안은 가급적 피하고) 등등. 총리께서는 내 부탁을 전부 승낙하셨다. 당근 SNS 활동도. (총리께서도 페북, 트윗을 열심히 하신다) 무엇보다 기쁘고 다행인 것은 평소 내가 좋아했던 선배이자 명망 있는 분을 모시게 됐다는 점이다. 마음으로 승복하지 못하는 사람을 모시는 것은 비극이다.
처음 만난 그 자리에서도 나는 총리께서 달가워하지 않을 법한 얘기도 쏟아냈다. 제법 시간이 지났다 싶어 시계를 봤더니 오후 6시 5분 전이었다. 근 한 시간 동안 총리와 단 둘이서 온갖 얘기를 주고받았다. 총리께서는 그날 저녁 약속이 있으셔서 식사는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헤어지면서 집무실에서 셀카로 기념사진을 한 장 찍었다.(아래 사진)
지하철을 타고 오는 내내 나는 뭔가에 홀린 것 같았다. 마치 무슨 허황한 꿈을 꾼 것도 같았다. 그 와중에 총리께서 하신 한 마디가 내내 귓전에서 맴돌았다. ‘길동무가 돼 달라…’ 참여정부 출범 초기에 정찬용 인사수석을 만난 적이 있다. 효자동 근처에서 같이 식사를 하면서 내가 지나가는 말로 한 마디 물었다.
“요즘 주로 뭘 하십니까?”
“주로 대통령님 말동무가 돼드리고 있습니다. 외로우신가 봐요.”
가벼운 내 질문에 대해 정 수석은 의외로 묵직한 답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 수석의 그때 그 말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높은 자리에 올라 갈수록 외로운 법이다. 주변에 사람이야 차고 넘치지만 높은 사람의 ‘말동무’는 그리 흔치 않다. 길동무, 말동무, 내가 보기엔 둘 다 같은 말 같다.
대화역에 내릴 무렵 문득 걱정거리가 하나 떠올랐다. 언젠가 기사를 보니 총리께서 “막걸리를 저수지 몇 개 정도는 마셔야한다”고 하신 거 같던데... 그런데 어쩌지? 나는 막걸리는 두어 잔이 정량인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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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11.5)부터 정식으로 출근합니다. 힘써 노력하여 총리님의 좋은 ‘길동무’가 돼 드리겠습니다. 또 저를 알아주신 분이니 성심을 다해 보필하겠습니다. 기회가 닿는 대로 차차 많은 분들을 뵙고 말씀을 듣겠습니다. 그 가운데 국정에 필요한 사안은 총리께 가감 없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도와주십시오. 고맙습니다..^^
정운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