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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의 ‘더불어 숲길’을 가다.​

이산저산구름 2018. 1. 15. 15:22

신영복 선생의 ‘더불어 숲길’을 가다.​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한국 현대사 70년, 특히 5.16이후의 역사는 좋게 말하면 산업화 세력, 정확하게 말하면 군부 독재 및 그 후계자들과 민주화 운동 세력과의 대결이었다. 전자는 군대와 경찰을 비롯한 제도화된 폭력의 전부, 검찰과 사법부, 그리고 대한민국의 물질적 자원을 거의 독점하고 있었다. 따라서 후자는 물리적으로는 도저히 그들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수많은 민주인사들이 투옥되고, 고문을 당했으며, 망명하거나 심지어 죽음을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폭압은 민주화 운동가들이 그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두렵지 않다면 그런 무리를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무런 무력도 재력도 없는 그들이 왜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을까?


이렇게 된 이유 중 상당 부분은 그들에게는 문화라는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함석헌, 장준하, 문익환, 송건호 등 수 많은 민주인사들은 대부분 투사이기 이전에 대부분 깊은 지성을 가진 교양인들이었다. 그들이 남긴 시와 산문, 연설 등이 그 참담했던 한국 현대사를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었는지는 굳이 이야기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결국 그들과 그들의 후계자들은 1987년 이후 여러 번의 승리를 거두었고, 군부독재를 역사의 무덤 속에 보낼 수 있게 되었다. 2016년 1월 15일, 이 계보의 마지막 인물일지도 모르는 신영복 선생이 희귀 피부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5세였다. 단명은 아니었지만 아쉬움을 남기는 나이였다.


선생은 1963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숙명여자대학교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 강사로 재직하다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 구속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20년 20일 동안 수감 생활을 하다가 1988년에야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하였다. 지인들은 그의 목숨을 앗아간 지병이 오랜 투옥 때문에 해를 제대로 보지 못한 탓으로 보기도 한다.


수감 중 지인들에게 보낸 서신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세상에 내놓았는데, 이것이 바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그 긴 수감생활 속에도 흔들지 않는 그의 정신은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출소 후,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를 역임하였고 2006년 말에 정년 퇴임 하였다. 그 사이 그리고 퇴임 후에도 《나무야 나무야》(1996년), 《더불어 숲》(1998년),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2004년), 《담론》(2015년) 등 주옥 같은 저서를 출간해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퇴임 당시 소주 상표에 들어가는 붓글씨 ‘신영복 체’를 써주고 받은 1억 원을 모두 성공회대학교에 기부하기도 했다. 이후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신영복 함께 읽기’라는 수업을 통해 많은 학생들과 나눔과 소통을 이어갔다. 이 기간 선생이 민주화 세력에 남긴 정신적 유산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2017년, 구로구는 신영복 교수 타계 1주기를 맞아 그의 정신을 기리고, 주민들에게 사색의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그의 대표적 저서인 《더불어 숲》에서 착안한 ‘더불어 숲길’을 조성했다.
‘더불어 숲길’은 신영복 교수가 재직했던 성공회대 뒷산인 항동 산 23-1번지 일대에 길이 480m, 폭 2m로 조성된 산책로다. 생전에 직접 쓴 서화작품 31점이 안내판 형식으로 설치되어 있고 항동 철도길과 수목원, 구로 올레길과도 연결되어 있다.



2017년 12월 어느 추운 날, 그의 기일을 앞두고, 성공회대학과 ‘더불어 숲길’을 찾았다. 말 그대로 서울의 가장 끝에 살짝 걸쳐 있는 성공회 대학은 여러 모로 우이동의 옛 한신대학교를 연상시킨다. 서울의 변두리에 자리잡고 있는 것도 그렇고, 그 진보적인 학풍까지 말이다. 어쩌면 신 선생이 말한 것처럼, 창조는 변방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일까? 서울과 경기 양대 지자체의 교육감이 모두 이 대학의 총장과 교수 출신이라는 것도 가벼이 보이지 않는다.


캠퍼스 내로 들어와 이제는 다른 교수가 사용하고 있는 연구실, 장례식이 열렸던 교회 등을 둘러보고 ‘더불어 숲길’로 들어섰다. 참고로 2010년 노무현 대통령 1주기 서울 행사는 이 변두리 중의 변두리인 성공회대학에서 열렸다. 짐작하겠지만 할 만한 장소는 정권에 의해 모두 불허되었기 때문이었다. 입구는 선생의 가묘로 시작되는데, 밀양의 진짜 묘소와 똑같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더불어 숲길’은 사유지에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단정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주옥 같은 신 선생의 글과 그림이 어찌 보면 보잘 것 없는 야산을 풍요롭게 가꾸고 있었다. 물론 봄 꽃이 필 때는 저 좋은 곳이리라. 관리 상태도 좋은 편인데, 사업을 주도한 지자체의 의지가 엿보여 지방자치제가 왜 필요한 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안내판 중 하나에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선물한 ‘통(通)’자 서화가 새겨져 있다.


작품을 보면서 그 분이 조금만 더 사셔서 촛불혁명을 지켜보셨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어떤 글과 그림을 남기셨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어쨌든 서울의 변방 중 변방에 위치한 성공회대와 ‘더불어 숲길’. 선생의 2주기 때, 아니 그 때가 아니더라도 봄이 되면 가 볼만 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