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전 세계 115개국에서 통하는 언어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에서 통용된다. 영어 다음으로 많은 나라에서 통하는 언어는 35개국에서 사용되는 프랑스어이다.
영어는 국제 항공 언어이기도 하다. 2001년 국제 민간 항공 기구(International Civil Aviation Organization)는 의사소통이 잘못되어 일어나는 사고를 최소화하기 위해 항공 교신에 사용되는 언어를 영어로 표준화했다.
사용자가 참여하여 제작하는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를 보면 영어로 작성된 정보가 가장 많다. 위키피디아에서 영어 다음으로 많은 독일어로 작성된 정보보다 세 배가량 많다.

영어 사용 국가
한국도 영어가 통하는 나라입니다. 현재 한국의 정규 교과 과정에서 영어는 초등학교 3학년 부터 배워야 하는 의무 교육 과목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막강한 영향력과는 별개로 영어가 결코 배우기 쉬운 언어는 아닙니다. 영어가 모어인 이들에게조차 영어 학습의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시사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실린 한 기사에 따르면 영어가 모어인 어린이가 읽고 쓰기를 깨치는 데 평균적으로 3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3년이 걸려서라도 읽고 쓰기를 깨치면 다행이지만 영영 깨치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기 때문에 영어 사용권 국가에서 성인 비문해율은 국가적인 문제라고 합니다. 미국 교육부 소속 국가 문해 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Literacy)가 2015년 조사한 통계 자료에서 미국의 성인 비문해율은 무려 14퍼센트에 달합니다. 반면 국립국어원에서 실시한 2008 국민의 기초 문해력 조사를 보면 한국의 성인 비문해율은 1.7퍼센트입니다.
영어 습득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발음과 철자가 일대일로 대응하는 한국어와 달리 영어에서는 발음과 철자 간에 일대일 대응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달리 말하면 영어는 발음만 듣고 정확한 철자를 알 수 없고, 반대로 철자만 보고 정확한 발음을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처음 미국에 와서 블랙스버그라는 도시에서 살다가 피츠버그로 이주했는데 현지어 발음에 따라 두 도시 이름을 한국어로 표기하면 ‘버그’ 부분 철자가 같습니다. 그러나 영어로는 발음이 같은데도 철자가 서로 다릅니다. 블랙스버그는 ‘Blacksburg’로 표기하고 피츠버그는 ‘Pittsburgh’로 표기합니다. 1908년에 설립되어 꾸준히 영어 철자법 개혁을 주장해 온 영어 철자 협회(The English Spelling Society)에 따르면 현대 영어에서 실제로 다르게 소리 나는 발음은 44개뿐이지만 그 표기법은 185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영어의 철자법은 왜 이토록 불규칙하게 발달했을까요?

피츠버그와 블랙스버그 지명이 들어간 도로 표지판
이 질문에 답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복잡다단한 세계사 속에 한데 얽혀 있는 영어의 기원이라는 실타래를 한 올 한 올 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한 ≪세계사를 품은 영어 이야기≫에서는 영어라는 언어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세계사와 더불어 흥미진진하게 풀어냅니다. 여기서는 "왜 영어 철자가 복잡하게 발달했는가?"라는 물음에 실마리가 될 만한 고대 영어와 중세 영어의 발달 과정만 간추리고자 합니다.
고대 영어
오늘날의 표준 영어가 출현한 진원지를 찾으려면 고대 영국 땅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기원전 55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끄는 로마군이 영국을 침략하기 전 영국 땅에는 켈트어를 사용하는 켈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라틴어를 사용하는 로마인이 400년 동안이나 영국 땅에 머무르면서 라틴어가 급속도로 확산됩니다. 5세기 초 본국이 함락될 위험에 처하자 로마인은 영국 땅에서 완전히 철수합니다. 라틴어도 급속히 잊히지만 이후 영국에 기독교가 전파될 때 쓰이면서 라틴어는 현대 영어에 흔적을 남깁니다.
로마인이 물러간 빈자리를 틈타 이어서 또 다른 민족이 영국 땅을 침략합니다. 바로 오늘날 우리가 쓰는 영어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앵글로색슨어를 사용했던 앵글로색슨인입니다. 관사 a와 the를 비롯해 I와 you 같은 대명사, from, with, whom 같은 전치사 등 현대 영어에서 가장 자주 쓰는 단어 100개 가운데 대부분이 이 고대 영어인 앵글로색슨어에서 비롯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영어에서 사용하는 삼인칭 복수 대명사 they와 their 및 삼인칭 단수 뒤에 오는 동사 끝에 -s를 붙이는 용법은 또 다른 침략자의 언어에서 유래했습니다. 바로 8세기 후반에 영국을 무자비하게 침략한 고대 노르드어를 사용했던 바이킹족입니다.
중세 영어
그러나 바이킹족은 원래 자신들이 쓰던 언어인 고대 노르드어를 버리고 프랑스어에 빠르게 동화됩니다. 이후 노르만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노르만인이 침공하고 사실상 영국 땅에는 정복자인 노르만인이 쓰던 노르만프랑스어, 피정복자인 앵글로색슨인이 쓰던 앵글로색슨어, 행정 문서와 교회 문서를 작성할 때 쓰던 라틴어까지 세 개의 언어가 공존하며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됩니다. 오늘날 현대 영어를 살펴보면 노르만프랑스어에서 들어온 영어 동사만 해도 1만 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중세 영어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영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며 ≪캔터베리 이야기≫를 쓴 영국 시인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입니다. 14세기 영국에서는 지역 간 의사소통이 힘들 정도로 다양한 방언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초서는 그중 이스트미들랜즈 방언을 사용했는데 중세가 끝날 무렵엔 이 지역 방언이 가장 많이 쓰이면서 훗날 현대 영어의 바탕이 되었다고 합니다. 중세 시대 영국의 시대상을 생생하게 전달한 역작으로 꼽히는 ≪캔터베리 이야기≫ 역시 이스트미들랜즈 방언으로 쓰였습니다. 현대 영어와 많이 동떨어지긴 했지만 생소한 용어와 용법을 어느 정도 익히면 현대 영어를 사용하는 오늘날의 독자도 무리 없이 초서의 글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초서 시대에는 맞춤법이 통일되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100년 뒤 윌리엄 캑스턴이라는 인쇄업자가 처음으로 영어 인쇄물을 출간합니다. 이를 기점으로 영어 출간물이 늘어나면서 점차 출판업자 사이에 맞춤법이 통일되고 이 통일된 맞춤법을 따르는 영어가 표준어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중세 후기 인쇄업의 발달은 현대 표준 영어의 발전을 앞당기는 데 크게 공헌했습니다.

초서의 초상화가 담긴 ≪켄터베리 이야기≫ 필사본

대니얼 매클리스(Daniel Maclise)가
1851년에 그린
에드워드 4세와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첫 번째 인쇄물 견본을 보여주는 캑스턴
이후 16세기 말 영국이 대영 제국을 건설하고 미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영국 정착민의 언어가 오늘날 미국 영어의 뿌리가 됩니다. 이렇듯 고대와 중세에 영어가 발달한 과정을 보면 오랜 세월에 걸쳐 다양한 민족에게서 끊임없이 침입을 받는 가운데 수많은 언어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말과 글이 함께 서서히 변화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세종 대왕이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동안 체계를 세워 만들어 낸 한글과는 태생부터 다릅니다. 영어 철자법이 복잡하게 발달한 것도 이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결과였던 것입니다.
영어 철자법 개혁 운동
하지만 19세기 후반부터 영국과 미국에서는 이러한 영어 철자 표기에 내재된 불규칙성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특히 20세기 들어서는 영어를 배우기 쉬운 언어로 만들어 영어가 세계적인 언어로 발돋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자는 커다란 이상을 가진 이들이 철자법 개혁 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강철왕 앤드류 카네기, 찰스 다윈, 마크 트웨인, 미국 제26대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 옥스퍼드 사전 편찬자 제임스 머리 경, 듀이 십진법을 창시한 멜빌 듀이 등은 1906년에 철자 단순화 위원회(the Simplified Spelling Committee)를 발족하고 철자법 개정안을 제안합니다. 미국 정보 기술 전문 온라인 매체인 테크 인사이더(Tech Insider)가 요약해 표로 정리한 이 개정안 일부를 아래에 번역했습니다.
현재 철자법 |
개정안 |
예시 |
/ɛ/로 발음하는 AE와 OE |
E로 통일 |
aesthetic 대신 esthetic |
/t/로 발음하는 BT |
T로 통일 |
debt 대신 det |
-CEED |
-CEDE로 통일 |
exceed 대신 excede |
/k/로 발음하는 CH |
묵음 H 생략 단 E, I, Y 앞 H는 보유 |
character 대신 caracter |
어말 이중 자음 |
자음 하나 생략 단, 단모음 뒤 -LL과 단음절 단어의 -SS는 보유 |
Add 대신 ad Glass 대신 glas (all과 needless는 그대로) |
묵음 -E 앞 이중 자음 |
마지막 두 글자 생략 |
cigarette 대신 cigaret |
묵음 또는 헷갈리는 -E |
생략 |
are 대신 ar |
/ɛ/로 발음하는 EA |
E로 통일 |
head 대신 hed |
/ɑ/로 발음하는 EA |
A로 통일 |
heart 대신 hart |
(중략) |
/sk/로 발음하는 -SQUE; |
-SK로 통일 |
burlesque 대신 burlesk |
모음 앞 묵음 U |
묵음 U 생략 |
guard 대신 gard |
자음 사이 Y |
I로 통일 |
analysis 대신 analisis |
1906년 철자 단순화 위원회의 영어 철자 개정안
이 철자법 개혁 운동은 미 의회의 반대로 무산됩니다. 대대적인 영어 철자법 개혁을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당장 너무 많은 비용이 들고 실효성도 낮을뿐더러 철자법을 개혁할 경우 철자에 담긴 어원을 잃어버리게 되므로 언어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무엇보다 대중이 영어 철자법 개혁에 별 관심이 없었던 탓에 20세기 초반 이후로 철자법 개혁 운동은 산발적으로만 일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소셜 미디어가 발달하고 소셜 미디어의 주 사용자인 젋은 층이 간결한 언어를 선호하고 또 실제로 즐겨 사용하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철자법 개혁 운동이 부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습니다. 앞날은 알 수 없지만 역사가 우리에게 알려 주는 사실은 세대가 변하고 시대가 변하면서 원래 언어가 모습을 바꾸기도 하고 새로운 언어가 생겨나기도 하며, 또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언어는 사라지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부는 영어 철자법 개혁 바람이 봄 한철 불고 마는 춘풍에 그칠지 아니면 지형을 뒤바꿀 만큼 강력한 태풍이 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 참고 자료
‘철자 개혁: 독일에서는 잘 이루어지지 못했다(Spelling reform: It didn’t go well in Germany)’, 일간지 ‘이코노미스트(Economist)’, 2010년 9월 15일 자.(http://www.economist.com/blogs/johnson/2010/09/spelling_reform)
< 비문해율 통계(Illiteracy Statistics)>, 미국 교육부 국가 문해 연구소(U.S. Department of Education, National Institute of Literacy), 스터티스틱 브레인 연구소(Statistic Brain Research Institute) 누리집에서 재인용. (http://www.statisticbrain.com/number-of-american-adults-who-cant-read/)
≪국민의 기초 문해력 조사≫, 김창원 외 5명, 국립국어원, 2008년.
※ 사진 출처
사진 1: 영어 사용 국가(출처: 구글 맵)
사진 2: 피츠버그와 블랙스버그 지명이 들어간 도로 표지판(출처: Mapio.net(왼쪽)/chetseapy.wordpress.com(오른쪽))
사진 3: 초서의 초상화가 담긴 ≪켄터베리 이야기≫ 필사본(출처: ≪세계사를 품은 영어 이야기≫)
대니얼 매클리스(Daniel Maclise)가 1851년에 그린 에드워드 4세와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첫 번째 인쇄물 견본을 보여 주는 캑스턴(출처: 위키피디아)
글_김지연
듀케인대학교에서 수사학(Rhetoric)을 전공하고 현재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하며 피츠버그카네기도서관에서 매주 토요일 미국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