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후 ‘민족의 노래’로 변이한 3가지 요인
민요란 근대 이전에 민중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생겨나 불려오던 소박한 노래이다. 입에서 입을 통해 발전해온 전통의 소산인 민요는, 현재를 과거와 결부시키는 ‘연속성’, 개인 혹은 공동체 집단의 창조적 충동에서 생겨나는 ‘변이성’,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남아 구체적인 모습을 갖출 수 있도록 끊임없이 전승해온 공동체의 ‘선택성’ 등이 중요한 속성이다. 민요는 주요 속성들의 제약으로 인해 음악성, 문학성 등 이른바 ‘민중적 소박함’이란 미학적 특징을 주요한 요소로 지니게 됐으며, 이는 전 세계 모든 민요에 나타나는 보편성이라 하겠다.
이러한 다양한 속성 중에서도 전통민요 ‘아리랑’을 논할 때는 ‘근대적 변이성’을 중시해야 한다. 근대화 과정에서 자발적 민족의식이 민요에 개입되면서, 지역성에 얽매였던 근대 이전의 소박한 민중 노래가 일종의 ‘민족의 민요’, ‘민족의 노래’로 격상하게 된다. 근대 이전 ‘민중의 노래’였던 아리랑이 근대 이후 ‘민족의 노래’로 변이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요인은 세 가지이다.
두 가지 내부요인은, 구한말 대원군이 주도한 경복궁 재건 공사와 나운규 등 일련의 민족의식 지향 예술가들이 근대 이전 전통 민요를 민족의식화한 것이다. 마지막 하나는 외부요인으로 헐버트 등 외국인들에 의해 우리 민요가 서양식 오선보에 악보로 정리된 것이다.
이 세 가지 요인 중 첫 번째 요인인 경복궁 재건을 위해 강원도의 재목을 운반하는 과정에서 근대 이전의 소박한 민요였던 ‘정선 아라리’가 우리나라 문화의 중심지인 서울로 유입·전파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로써 지역 토착민요인 고정민요가 전국적으로 보편화된 비고정민요 아리랑으로 변이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두 번째 요인인 민족의식화는 민요가 자발적인 근대화 과정을 거치도록 했으며 마지막으로 민요를 오선보에 악보화하면서 아리랑이 서양화 혹은 세계화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이렇게 보는 것이 온당한 생각이라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아리랑은 근대 이전의 소박한 지역민요로서의 ‘정선 아라리’가 아니라, 그것이 근대화의 과정을 거친 ‘민족의 노래’로서의 아리랑이라고 볼 수 있다.
아리랑의 원형과 가창형식의 변이
민족의 노래로 가치가 상승된 아리랑의 가창형식은 원래 후렴 없이 서로 주고받는 우리나라 동부 메나리조 ‘교환창’이었다. 이것이 정선 아라리 형식이다. 그런데 서울로 들어와 전국화되는 과정에서 다시 가사를 다르게 메기는 ‘앞소리’와 그 뒤에다가 반복해서 부르는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를 붙이면서 선후창 형식으로 변이됐다.
지리적으로 보자면, 근대 이전 우리 민요의 가장 근원적인 원형은 바로 동부민요인 메나리조 민요이고, 그 중심에 정선 아라리가 있다. 메나리조 동부민요는 백두대간의 흐름을 따라 백두산에서 함경도를 지나 강원도, 경상도, 충청도 일부를 거쳐 전라도 구례 등지에까지 이어지는 우리나라 민요의 중심소리이다. 아리랑은 지리적으로는 물론 내용상으로도 우리민족의 ‘중심소리’라고 할 수 있다. 정선 아라리는 후렴 없이 서로 메기는 가사만을 끊임없이 계속 이어 나아가는 교환창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가사가 매우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마음을 가장 다양하게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현재 아리랑이라는 제목으로 전승되는 민요는 약 60여 종 3,600여 가지로, 제각기 다른 가사들이 전해지고 있다 한다.
아리랑은 교환창의 전통에 머무르지 않고, 누구나 자유롭고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후렴을 추가하는 선후창 형식으로 변이됨으로써 민족 노래로 승격될 수 있는 보편성과 대표성을 갖게 된 것이다.
전통적인 측면의 길고 짧은 아리랑의 형태
강원도 정선 아라리, 경상도 모심는 소리인 정자소리, 전라도 동북부의 모심는 소리와 밭 매는 소리 등의 가사 속에서 아리랑 가사의 다양성을 발견할 수 있다. 지역뿐만 아니라 아리랑의 가사는 역사성을 반영하며 다양한 변이를 보였다.
예컨대, 전통 토착민요 시절에는 “방실방실 웃는 임을 못다 보고 해 다 지네. 못다 보고 해 다 지면 돋는 달로 다시 보지. 돋는 달로도 못다 보면 뜨는 해로 다시 보지” 등 아름답고 소박한 가사인 반면, 일제 강점기에 들어오면 “힘깨나 쓸 놈 공동묘지 가고 애깨나 낳을 년 유곽으로 간다” 등과 같이 어두운 시대상을 반영한 가사로 달라진다. 일제의 착취와 압박으로 인해 항거하는 사람은 맞아 죽어 공동묘지로 가고, 처녀들은 술과 몸을 파는 유곽으로 팔려간다는 뜻이다.
시대의식을 반영한 아리랑은 지금까지도 부단히 우리 삶의 과정 속에서 다양한 변이와 재창조를 거듭하며 진정한 ‘민족 노래’로 정체성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리랑은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 속엔 수심도 많다”처럼 어느 정도 가사의 길이가 제약되어 있지만, 변이가 다양했던 옛날 아리랑들은 단순한 길이 비교가 쉽지 않다. 다만 가장 짧은 아리랑과 긴 아리랑의 전통은 구분할 수 있다.
가장 짧은 아리랑의 전통은 삼국시대 민요를 반영한 4구체 향가이다. 예컨대 ‘서동요’와 같은 짧은 민요이다. 이런 전통을 이은 가장 짧은 아리랑은 앞서 언급한 동부 메나리조의 노동요들이다. “저기 가는 저 아주머니 속곳가래 풀고 가네”라고 부르면, 이어 “풀고나 들고 가나 도련님께 상관있나”라고 받아 부르고, 이에 다시 “상관이야 없네마는 내 마음이 심송감송”이라고 받아 부르는 식이다.
가장 긴 아리랑의 전통은 정선 아라리 중 이른바 ‘엮음 아라리’이다. “강원도 금강산 일만 이천 봉 팔만 구암사 유점사 법상대 팔자에 없는 아들딸 낳아 달라고 백일 정성을 말구우.....” 식으로 가사를 길게 이어 나아가는 방식이다. 이것이 보통 엮음식 아리랑의 전통이며, 전국 방방곡곡 그 지역 나름의 방식으로 전승되고 있다.
글‧김익두(전북대 국문과 교수) 일러스트‧이근길
'음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Blowin’ in the Wind(바람만이 아는 대답), Bob Dylan (0) | 2016.10.17 |
---|---|
밥 딜런 - 가수 - 노벨 문학상 (0) | 2016.10.17 |
애국가 (0) | 2016.08.08 |
Antonio Vivaldi - The Four Seasons (0) | 2016.07.06 |
솔개합주 ?? 악보 (0) | 2016.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