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확산 거미, 항해도 능숙…다리는 돛, 거미줄은 닻
공중 장거리 이동 거미에 항해 능력은 필수, 일부 거미 세계 전역 분포 배경
다리나 배 세워 돛으로, 거미줄 늘어뜨려 속도 줄여…세찬 물, 짠물서도 가능
» 배의 돛처럼 앞다리를 번쩍 들어올려 바람을 받아 물 표면을 미끄러지듯 이동하는 접시거미의 일종. 사진=알렉산더 헤이드
알에서 깨어난 어린 거미가 실 같은 거미줄을 타고 멀리 날아가는 모습을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몸집이 작다면 어른 거미도 이런 방식으로 먼 거리를 이동한다.
찰스 다윈은 1832년 비글호를 타고 항해하다 아르헨티나 해안에서 100㎞쯤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서 특이한 경험을 했다고 그의 항해기에 적었다. 하늘에서 수천 마리의 붉은 거미가 배 위로 떨어져 내렸던 것이다. 이 경험은 동물이 어떻게 멀리 떨어진 곳에 분포하게 됐는지를 이주로 설명하는 유력한 근거가 됐다.
실제로 많은 거미가 이런 방식으로 퍼져나가 날개가 없는데도 세계 전역에 분포한다. 새로 생긴 화산섬이나 간척지를 가장 먼저 개척하는 동물의 하나도 거미다.
» 나뭇가지 끄트머리에서 비행을 막 시작하려는 거미(오른쪽). 들어올린 배에서 가는 거미줄을 뿜어낸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Rothamsted Research
거미는 공중비행을 위해 먼저 나뭇잎 등 높은 곳으로 오른다. 이어 다리를 들고 배를 공중으로 향한 다음 아주 가는 거미줄을 내뿜는다.
바람 또는 상승 기류가 불어오면 이 거미줄은 삼각형의 낙하산 형태를 이뤄 거미를 공중으로 들어올린다. 거미는 보통 한 번에 평균 500m, 하루에 최고 30㎞를 이렇게 이동할 수 있다.
거미줄을 탄 거미는 상승기류를 타고 고공의 제트기류에 올라 장거리를 이동하기도 한다. 육지에서 1600㎞나 떨어진 대양의 선박이나 고층 기상관측기구에서 이동중인 거미를 발견한 건 이상할 것도 없다.
» 바람을 타고 이동한 거미들이 잔디밭에 가득 붙어있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그런데 이렇게 수백~수천㎞를 이동하려면 반드시 겪어야 할 난관이 바로 물이다. 강, 호수, 늪, 그리고 방대한 바다는 지구 표면의 70% 이상을 덮고 있다. 공중 확산에 성공한 거미라면 당연히 물 표면에서 살아남는 전략이 있어야 한다.
영국 노팅엄대 하야시 모리토 등 연구자들은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접시거미 21종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접시거미는 전체 거미 종의 11%를 차지할 만큼 성공적으로 진화했다. 그 배경의 하나가 뛰어난 확산능력이다.
쟁반에 물을 담고 모터를 돌려 바람을 일으키는 방식의 실험에서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거미줄 비행을 하는 거미들이 모두 항해에도 능숙했던 것이다.
» 앞다리를 돛으로 이용해 물위를 미끄러지는 거미. 사진=알렉산더 하이드
» 배를 들어올려 바람을 받아 물위를 미끌어지는 거미. 사진=알렉산더 하이드
거미들은 5가지 항해술을 썼다. 앞다리를 돛처럼 하늘로 들어올리거나 물구나무 자세에서 배를 돛처럼 들어올려 물 표면을 미끄러지듯 이동하는 것이 대표적인 동작이었다.
거미 다리에 있는 물에 젖지 않는 센털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었다. 물 표면에서 다리를 이용해 재빨리 걷거나 아예 몸을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은 채 바람에 밀려가기도 했다.
» 물위에 떠있는 물체에 거미줄을 뿜어 그 위에 올라가 쉬려는 거미. 사진=알렉산더 하이드
물에서도 거미줄은 유용했다. 물 표면에 거미줄을 뿜어 늘어뜨려 이동속도를 줄였다. 물에 떠있는 물체가 있으면 거미줄로 고정한 뒤 그 위에 올라가 쉬기도 했다. 거미줄은 항해에서 닻 구실을 했다.
연구자들은 “거미의 항해가 잔잔한 물이거나 거친 물, 민물이나 짠물 모두에서 가능했다”며 “항해 능력이 거미의 공중확산을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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