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짓기

한옥에 담긴 배려의 마음 - 그 기본에는 빌림, 어울림, 되돌림의 태도가 있다

이산저산구름 2015. 8. 6. 16:36

 

자연과의 관계를 중시하다

삶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교육의 공간이었던 옛집의 핵심적인 요소에는 자연과의 관계도 포함되었다. 옛집에는 다양한 형태로 자연과의 관계 맺음이 이루어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옛집에 반영되어있는 자연과의 관계를 간단하게 정리하면‘빌림, 어울림, 되돌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 빌림은 자연으로부터 터를 빌린다는 것이다. 어울림은 일생 동안 자연과 어울려 살아간다는 것이다. 되돌림은 삶의 필요를 충족한 다음에는 다시 자연으로 되돌린다는 것이다. 또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비롯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옛 사람들이 집을 지을 때 그 첫 절차는 지신에게 땅을 빌려서 집을 짓는다고 고하는 텃제이다. 텃제는 개기제開基祭라고도 하는데 땅을 파내고 집을 세우기 전에 땅의 주인인 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이 때 지신에게 ‘집 지을 땅을 빌려 주어 고맙다’는 제를 지낸다. 자신이 소유한 터에 집을 지으면서 ‘빌린다’는 표현을 쓴다. 땅의 진정한 주인은 대지의 신이고 인간은 잠시 그 땅을 빌려서 사는 유한한 존재라는 생각이다. 빌린 땅이기에 조심스럽게 사용하고 최대한 보전하려고 하였다. 요즘 같으면 땅을 깎고 메우고 높여서 자신이 원하는 모양을 만들지만 옛 집과 마을들은 원래의 땅 생긴 모양에 맞추어 지어져 있다. 안동 하회마을의 집들은 둥근 원추 모양의 땅 생김을 따라서 각기 앉은 방향이 달라서 남향에서 북향까지 다양한 방향을 보이고 있다. 지형을 따라서 흐르는 물줄기를 바꾸는 것도 꺼려해서 때로는 집마당을 휘돌아 나가는 물줄기를 그대로 살리기도 하고(아산 외암마을 송화댁) 담장 아래로 물줄기가 흘러가기도 한다(담양 소쇄원). 이 또한 자연을 더 근본으로 여기고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배려의 결과이다.

01. 담양 소쇄원(명승 제40호)의 오곡문. 담장 아래로 물줄기가 흘러가게 했다. ⓒ문화재청 02.아산 외암마을(중요민속문화재 제236호). 선인들은 지형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를 바꾸는 것도 꺼려해서 담장 아래로 물줄기가 흘러가도록 놔두기도 한다. 이 또한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배려의 결과이다. ⓒ연합콘텐츠

집을 짓는 재료들도 자연의 보전을 위한 배려의 마음을 그대로 반영해서 선택하고 가공하였다. 흙과 돌과 풀과 나무들이 옛집의 주 재료들이다. 그래서 집은 주변의 자연과 어울린 모양새다. 오래되어 집이 무너지고 재료들이 썩고 흩어지면 모든 것이 원래의 자연으로 돌아가서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게 된다. 빌린 땅을 원래의 상태대로 되돌리려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재료를 가공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배려가 작용하였다. 자연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원래의 형태를 보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노력하였다. 우리 옛집이 가진 두드러지지 않는 부드러운 아름다움은 이와 같은 자연에 대한 배려가 만들어낸 자연과의 어울림의 결과인 것이다.

03. 안동 하회마을(중요민속문화재 제122호)의 집들은 둥근 원추 모양의 땅 생김을 따라서 각기앉은 방향이 다르다. ⓒ문화재청 04.원래대로 휘어진 기둥과 부재들이 돋보이는 하회 원지정사 연좌루. 우리 조상은 자연재료를 부득이 가공해야 하는 경우에도 최소한으로 가공하려고 노력했다. ⓒ윤재흥

자연재료를 그대로 사용할 수 없고 가공해야 하는 경우에도 최소한으로 가공하려고 노력했다. 생긴 그대로 휘어진 나무를 가져다가 기둥이나 대들보 등의 부재로 삼았다. 주춧돌도 자연석 그대로를 사용해서 때로는 기둥의 길이가 각기 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내소사 봉래루를 떠받치고 있는 주추와 기둥은 자연을 배려하는 재료의 선택과 가공을 보여주는 매우 좋은 예이다. 봉래루를 받치고 있는 주추와 기둥은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다. 낮았다가 높아지고 다시 낮아지는 돌의 높이와 그에 맞추어 잘라낸 기둥의 길이들이 획일적이지 않은 리듬을 만들어낸다. 모양과 크기가 각기 다른 자연석을 가져다 주춧돌로 썼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는 건물을 받치는 기둥의 높이를 돌의 크기에 맞추어 서로 다르게 가공하였다. 이를 통해 자연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흔적을 남기면서 자연과 어울린 건물을 만들어 사용하고자 한 세심한 배려를 읽을 수 있다.

자연석 위에 기둥을 세우기 위해서는 모양에 따라 기둥의 아랫부분을 깎아내야 한다. 이러한 가공의 방법을 그렝이질이라고 한다. 매우 까다롭고 때로는 위험하기도 한 방법인데 굳이 그렇게 하는 것은 기둥이 흔들리거나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기술적인 고려가 작용한 면이 있다. 이와 함께 자연에 대한 배려가 작용하였다. 나무는 세월이 지나서 썩으면 흔적 없 이 자연으로 돌아가지만 돌은 한 번 깎아내면 절대로 원래의 모양으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나중에 자연으로 되돌릴 때를 생각해서 가공의 방법과 대상의 우선성을 고려한 것이다.

이와 같은 자연에 대한 배려와 삼가는 마음은 옛집과 마을들에 골고루 배어 있다. 안동 하회마을이나 아산 외암마을 등 지금까지 보존된 옛 마을들에서 그와 같은 자연과의 어울림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마을들의 지붕과 지붕들이 연이어 만들어낸 곡선은 주변산들의 윤곽과 닮은 모양이다. 자연의 원래 모양을 훼손하지 않고 그 안에 조화롭게 안겨들고자 했던 배려가 두드러지지 않고 닮은 모양새를 만들어낸 것이다.

05. 06. 아산 외암마을 참판댁의 텃밭 출입 통로는 사랑채의 왼쪽 측면에 쪽문으로 마련되어 있다. 사랑채의 옆이 바로 텃밭이기 때문에 이 쪽문을 통해서 바로 텃밭으로 출입할 수 있다. 남녀유별의 질서를 따르면서도 집안사람들끼리 서로 편리하게 교류하고 텃밭에서 자연과 어울릴 수 있는 배려를 찾아볼 수 있다. ⓒ윤재흥

 

공동체적 삶을 배려하다

자연에 대한 배려의 마음은 인간과의 관계에도 반영되었다. 그래서 옛집에는 곳곳에 인간에 대한 배려, 공동체적 삶에 대한 배려가 담겨 있다. 흔히 조선시대를 남녀유별의 사회로 보고 여성들은 집안에 갇혀서 살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양반가의 경우는 남녀유별이 엄격해서 여성들의 공간이 매우 폐쇄적으로 닫힌 구조였다고 이해한다. 사실 여성공간은 남성들의 공간에 비해 외부에 대해 폐쇄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것은 외부인과의 관계에 한정된 경우가 더 많다. 한 집 사람들끼리는 남녀의 유별보다는 남녀간의 어울림을 배려하고 또 여성들을 배려한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남녀유별을 유지하면서도 집 안에서는 비교적 편리하게 생활하고 이동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춘 것이다. 외암마을 참판댁의 경우에서도 그와 같은 여성에 대한 배려 장치를 여럿 발견할 수 있다. 참판댁의 안채는 사랑채의 뒤에 위치해서 바깥사람들의 눈길에서 거의 완전하게 차단되어 있다. 대문간에서 집 안을 들여다보면 안채는 사랑채에 가려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사랑채의 측면에 위치한 안채 출입문도 대문간에서는 보이지 않게되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안채 사람들이 바깥으로 출입할 수 있는 작은 문을 안채 출입문 곁에 따로 마련하여 출입의 편리를 도모하였다. 한층 더 여성을 배려한 장치는 협소한 안채에서의 살림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텃밭(참판댁에서는 이 텃밭을 남새밭으로 부른다.)과의 출입 통로이다. 참판댁에서는 이곳을 텃밭으로 사용하지만 많은 경우에 안채의 뒤뜰은 텃밭과 더불어 아름다운 수목을 심어서 자연을 접할 수 있 게 하였다. 이를 통해서 외부출입이 제한된 삶의 답답함과 무료함을 달랠 수 있도록 하였다. 참판댁의 텃밭 출입 통로는 사랑채의 왼쪽 측면에 작은 쪽문으로 마련되어 있다. 사랑채의 옆이 바로 텃밭이기 때문에 이 쪽문을 통해서 바로 텃밭으로 출입할수 있다. 더구나 이 텃밭은 큰집과 작은집 두 집으로 이루어진 참판댁의 작은집 안채 쪽문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큰집의 쪽문과 텃밭, 작은집의 안채는 외부인들의 눈길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여성들이 공유하고 활용하는 공간이었던 셈이다. 결국 남녀유별의 질서를 따르면서도 집안사람들끼리 서로 편리하게 교류하고 텃밭에서 자연과 어울릴 수 있는 배려를 여기에서 함께 찾아볼 수 있다. 안동하회의 양진당養眞堂이나 충효당忠孝堂에도 외부인들은 쉽게 찾을 수 없는 안채와 사랑채 사이의 출입 통로가 있다. 이들은 모두 남녀유별이라는 당시의 사회적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가족들 간의 실제적인 어울림과 소통을 배려한 장치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의 옛집에는 인간과 자연의 어울림과 인간과 인간 사이의 어울림을 위한 배려들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그 근원은 자연과의 어울림의 마음이다. 자연을 전체로서 조화로운 질서로 생각하고 인간 역시 그 안에 포함된 존재로서 파악하였다. 전체 안에서 자신을 보는 태도와 커다란 질서 안에서 겸허하게 자신을 파악하는 자세가 한국인의 옛 삶의 근본 질서였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역시 그와 같은 어울림의 틀 안에서 고려되었다. 집에 반영된 다양한 배려들은 그와 같은 어울림에 기초한 것이었다. 집에 반영된 어울림의 질서는 일상의 삶을 통해서 반복적이고 체험적으로 습관화되는 어울림의 교육으로 연결되었다. 그 어울림의 마음이 한국인의 삶을 관통하는 배려의 근원이다. 낮은 울타리를 두르고 이웃과 더불어 살며 좁은 집 안에서 가족들과 화목하게 사는 삶의 바탕에는 그와 같은 배려와 어울림의 마음이 깔려 있었다.

 

※ 참고문헌
『빌림 어울림 되돌림』, 윤재흥, 민속원, 2015

 

글. 윤재흥 (나사렛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