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쓰레기통을 뒤지는 습관이 있다. 교실 구석에 외로이 서서 학생들의 흔적을 말없이 받아주는 쓰레기통. 그러면서도 학생들에게 특별한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쓰레기통. 어떤 날은 교실의 쓰레기통에서 욕설을 적은 구겨진 종이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마음이 심히 아프다. 대부분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몰래 적고 버린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날 학생들에게 욕설은 복도 등에서 공개적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또는 욕설이 문자로 적혀서 쓰레기통이라는 음지에 숨어 있기도 한다. 이른바 욕설은 음과 양으로 존재하는 셈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욕설 문제는 심각한 상태이다. 학생들의 욕설은 분명한 목적이 있어서 사용되는 사례는 많지 않다. 일상화된 습관에 따라 욕설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책임의 상당 부분을 성인들에게 돌려야 하는 이유다.
쓰레기통에 담긴 욕설이 더욱 심각하다. 음성으로 행해지는 욕설은 대부분 교육으로 순화가 가능하다. 그러나 종이에 적혀서 은밀히 존재하는 욕설은 통제가 어렵다. 쓰레기통에 담겨진 욕설은 대상자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 다른 쓰레기와 섞여서 은밀히 존재하는 쓰레기통의 욕설 문자들, 내 마음을 무척 아프게 한다. 쓰레기통의 내용물이 학생들 삶의 흔적이라고 할 때 욕설이 담겨서야 되겠는가.
그러나 쓰레기통에 욕설이 아닌 ‘시(詩)’가 담겼다면 어떨까?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경우다. 학생들이 시를 쓰다가 지우고 쓰다가 지우고를 반복한 종이들이 구겨져 들어 있는 쓰레기통, 생각만 하여도 마음이 훈훈해진다. 내가 그런 쓰레기통을 확인하는 순간은 특별한 깨달음을 얻는다. 그럴 때는 쓰레기통의 존재가 위대해 보이기까지 한다. 우리가 공기의 소중함을 특별한 계기로 깨닫듯이 말이다. 이런 기대를 하면서 오늘도 국어수업에 들어간다.
나는 항상 ‘시(詩)’를 사례로 들어 수업하려 한다. 교과서를 재구성하여 학생들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수업을 주로 한다. 수업의 어떤 주제든 시를 통한 사례 제시가 가능하다. 시를 사례로 들면서 관련되는 그림까지 그리게 하면 학생들이 더욱 좋아한다. 시는 음악적 리듬에 아름다운 우리말을 사용하여 화자의 정서를 주로 표현한다. 학생들은 자연스레 마음이 정화되어 욕설 대신에 아름다운 우리말을 사용할 것이다.
3월인데도 겨울 날씨처럼 바람이 불고 춥다. 학생들의 차가운 마음을 봄바람으로 녹여줄 시가 필요하다. 오늘 배울 주제에 대한 시는 김억의 <연분홍>이다.
이 시는 봄날의 꽃과 나비가 이루는 애틋한 정경을 표현한 시이다. 7·5조 음수율과 3음보로 이루어진 민요조의 가락이다. 전통적인 애틋한 정서를 표현한다. 같거나 유사한 아름다운 말의 반복이 내용에 리듬감을 더해 준다. 애상감이 감도는 시의 분위기가 마음을 평화롭게 느껴지게 한다. 시의 분위기는 의태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그래서 정겹고 귀여우면서도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이것이 평화로운 봄의 정경을 떠올리게 되는 이유다.
신학기인 3월에 중학생들에게 이런 시를 사례로 수업한다면 어떨까? 시의 따뜻한 봄바람으로 학생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녹여줄 것이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삭막한 마음을 정화해 줄 것이다. 학생들은 주로 어른들에게 배운 일상의 욕설에 익숙해 있다. 대부분 욕을 하고도 죄의식에 빠지지 않는다. 학생들의 이런 마음의 자리에 아름다운 우리말이 채워진다면 어떨까. 교사들이 시를 사례로 들어 수업해야 하는 이유다.
학생들의 반 구성을 5모둠으로 만들고 시 창작의 활동 수업에 들어갔다. 활동 과제는 순수한 우리말을 운율을 통해 시로 살려내는 것이다. 즉 의태어 등의 아름다운 우리말로 7·5조 음수율과 3음보 가락의 운율이 있는 시를 창작하는 것이다. 시의 내용과 관련되는 그림도 그리도록 했다. 시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은 창작을 하고 그림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은 시 옆에 그림을 그리면 된다.
시 창작과 더불어 그림까지 그리게 되니 학생들이 활기차게 움직인다. 각 모둠별로 내용을 협의하고 운율이 살도록 시어를 수정하고 또 수정한다. 이런 과정에서 시를 쓰다가 버린 종이들이 점점 많아진다. 쓰레기통으로 가야 할, 시가 적힌 종이들이다. 쓰레기통만 바라봐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학생들이 꽃샘추위에도 꽃망울을 피우려는 꽃나무와 같다. 시로 마음의 봄을 아름답게 발산하고 있다.
학생들의 모둠별 시 창작 발표가 시작되었다. 5모둠의 <학교 가는 길>이다.
의태어 등을 활용한 순수한 우리말이 돋보인다. 7·5조 음수율과 3음보 가락의 운율이 민요적 느낌을 준다. 각기 모둠별로 시를 지어 그림과 함께 발표를 했다. 발표를 끝낼 때마다 박수 소리가 우렁찼다. 학생들이 맑은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 욕설은 사라질 것이다. 순수한 우리말이 더러운 욕설을 자연스레 마음에서 밀어낸다. 쓰레기통을 살짝 보니 학생들이 시를 짓다가 버린 시들이 뭉쳐져 쌓여 있다. 쓰레기통에 욕설이 사라지고 시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참으로 기쁜 순간이다.
나는 일부러 쓰레기통을 뒤집어 자세히 보았다. 각 모둠별로 시를 창작하다가 버린 종이들이 쏟아져 내렸다. 각 모둠에서 고민했던 시들이 쓰레기통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쓰레기통이 교실 공간으로 훈훈함을 뿜고 있었다. 학생들의 맑은 시심이 욕설을 밀어내고 마음속에 자리 잡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쓰레기통은 단순한 쓰레기를 담는 통이 아니다. 오히려 학생들의 특성을 드러내는 증거물이다. 우리는 욕설의 피해에 대하여 논의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해왔다. 그 해결책의 대부분은 ‘욕설의 문제점을 심각히 인식하고 바른 말을 사용하도록 교육해야 한다.’ 등이다. 학생들에게는 일회성 훈계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수업에서 시를 사례로 들어 학생들의 마음을 밝게 하면 어떨까? 시는 운율이 흐르고 아름다운 우리말이 시어로 존재하는 것이 많다.
학생들의 텅 빈 마음에 욕설이 들기 전에 시를 가득히 채우면 어떨까. 시를 창작하는 과정의 모든 것이 쓰레기통에 가득 담기게 하면 어떨까. 시는 학생들에게 욕설을 밀어낼 공감의 대안이 될 것이다. 학교의 한 학생 한 학생 모두가 귀한 방문객이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사용하여 맑은 정신으로 졸업해야 할 방문객들이다. 정호승 시인의 <방문객>을 감상하며 그 의미를 생각해보자.
교사들이 학생들과 만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그는 그의 과거와 / 현재와 /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를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학생들의 어마어마한 모습을 쓰레기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올해도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알을 낳은 개구리들이 다시 동면에 들어가고, 알에서 나온 올챙이가 얼어 죽었다. 또한 싹이 돋았던 개나리가 추운 바람에 얼어버렸다. 봄을 시샘하는 추위가 학생들의 마음도 얼게 한다. 특히 3월의 신입생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학생들에게 욕설이 많아지는 계절이다. 나는 오늘도 시를 준비하고 그 기쁨을 교실의 쓰레기통에서 거듭 확인하고 싶다.
'말과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가 알면서도, 또 모르고 쓰고 있는 일본식 한국말 (0) | 2015.06.25 |
---|---|
쉽게 글을 쓰는 방법 10가지 (0) | 2015.06.22 |
[특집] 한글 자료 이야기 3 - 한글을 배우는 능률적인 방법 '한글 반절표' (0) | 2015.01.31 |
[특집] 한글 자료 이야기 1 - 한글 자모의 명칭에 대한 이야기 (0) | 2015.01.15 |
2014 숫자로 살펴보는 우리발 (0) | 2015.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