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인생을 정상 궤도에서 이탈시켰던 사건들의 인과 관계를 곰곰이 추적해 보면, 어머니의 젖꼭지에서 쓰디쓴 맛을 감지했던 순간까지 거슬러 오른다. 그때 그는 다섯 살이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배고픔과 추위에 늘 시달렸다. 어쩌면 그 징후는 몸이 먼저 감지하고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반대로 마음이 먼저 움직인 뒤 몸의 기능들을 조작한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증세는 분명했으나 원인은 모호했다. 그래서 그는 야위었고 이런저런 잔병치레를 하느라 두 살짜리 동생과 집 안에 머무는 날이 많았다. 언제든지 어머니 품으로 달려들어 저고리 섶을 풀어헤치고 배고픔과 추위를 해결할 수 있는 동생의 처지와는 달리 그는 늘 유혹을 견디고 양보해야 했다. 아우를 탄다는 편견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젖가슴 안에는 우애를 훼손하지 않을 만큼 충분한 양의 젖이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자신의 차례가 되어 단 한 모금의 젖을 삼킬 수만 있다면, 자신을 집 안에 가두던 배고픔과 추위를 극복하고 부모의 기대대로 자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목적을 어머니에게 정확히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그의 사유 능력과 발성 기관들은 발달해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저 표정만으로 자신의 생각을 완벽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기적이 일어났다. 새참을 준비하러 밭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툇마루에 걸터앉아 옷섶을 헤치더니 동생 대신 그를 품 안으로 부르는 게 아닌가. 방에서 툇마루까지 어른 걸음으로 고작 일곱 발짝이면 충분한 거리를 걸어 어머니에게 도착하는 데 그의 일생 절반이 소요되었다. 젖꼭지에 묻어 있는 하얀 가루는 그에게만 허락된 초대장이자 선물 같았다. 하지만 그것에 혀가 닿는 순간 시간은 멈추었고, 그는 자신의 일생 절반을 들여 힘들게 걸어왔던 거리를 쥐며느리처럼 굴러서 단숨에 되돌아가고 말았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그의 고통 따윈 거들떠보지 않은 채 무명천에 물을 적셔 대접을 닦듯 제 가슴을 닦더니, 동생에게 그것을 다시 물렸다. 그러고는 자애로운 표정으로 동생을 내려다보면서 침묵으로 집 전체를 울려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 큰 녀석이 부끄러운 줄이나 알아라.”
배고픔이나 추위를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인지, 형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정도의 쓴맛도 참아 내지 못한 걸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인지, 이도 저도 아니라면 동생이나 어머니를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쨌든 어머니의 그 말은 오래오래 생채기로 남았다. 설상가상으로 금계랍金鷄蠟의 저주에 마비된 혀는 다섯 살 소년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여 어른들로부터 핀잔과 또래들로부터 조롱을 받아야 했는데, 이로 인해 영혼의 부피는 불어나지 않은 채 육체의 외피만 두꺼워지는 비극 속에 유폐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는 더 이상 가족과 친구와 스승과 선배를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내부로 침잠해 갈수록 지적 호기심은 더욱 왕성해져 갔고, 그에게 항상 대답을 해 준 것은 작은아버지가 고등학교 때까지 사용했다는 국어사전이었다. 그것은 그에게 한 번도 질문한 적이 없었지만, 그의 질문에 대해 단 한 번도 대답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열두 권으로 이루어진 총천연색의 백과사전을 가질 수 없는 현실을 한때 박해로 받아들인 적도 있었으나, 친구의 집에 놀러 갔다가 펼쳐 보게 된 그것들 속에서 무람없는 오탈자들을 별의 숫자만큼이나 발견한 뒤로 박탈감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외국어와 한국어 사이에서 정확히 교환될 수 없는 의미가 존재하는 이상 오역의 위험은 필연적이었다. 성경이나 불경마저도 이 치명적 결함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았다. 결국 그가 스스로 원본의 의미와 번역가의 능력을 검증할 수 없는 이상, 수백 명의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만든 국어사전이야말로 그에겐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책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그는 국어사전 읽기에 더욱 집착하였고, 독학으로 속독법까지 깨우치게 되었다. 하지만 속독의 능력과 편집증의 저주를 한 몸에 지닌 자의 고통이라면, 책에서 오탈자나 비문이 발견되는 즉시 독서는 멈추고 알레르기 반응처럼 그 책을 두 번 다시 독파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가 완벽하게 읽은 책이라곤 국어사전 이외엔 거의 없었다.
어머니 젖꼭지에 흰 설탕처럼 묻어 있던 가루를 금계랍이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국어사전을 통해 알게 되었다. 지금이야 ‘쓴맛’을 정의하기 위해 한약재나 소태, 씀바귀가 동원되지만 오래된 사전에는 금계랍과 소태가 사용되었다. 단맛이나 신맛, 짠맛의 정의는 듣고 나면 허탈해질 정도로 단순하지만 다른 해석이 불가능할 정도로 명확한 반면―단맛은 설탕이나 꿀에서 느끼는 맛, 신맛은 식초와 같은 맛, 그리고 짠맛은 소금과 같은 맛이라고 정의되어 있다―쓴맛만큼은 너무 추상적으로 여겨졌다. 씀바귀야 그 이름만으로도 맛을 짐작할 수 있다지만, 소태가 가마솥 밑바닥에 눌어붙어서 검게 탄 누룽지를 뜻하는 게 아니라 소의 태胎, 즉 암소의 태반이나 소태나무의 껍질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사전 없이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금계랍은 염산키니네의 통속적인 이름이라고 정의되어 있었으니, 염산키니네는 어디서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결국 그는 백과사전을 가지고 있는 친구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금계랍은 원래 말라리아 치료제로 개발되었으나 구한말부터 이 땅에 수입되면서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70년대 초반까지도 그걸 가정상비약으로 비치해 두지 않은 집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아이들이 열이 나거나 체하면 부모는 그걸 물에 개어 숟가락으로 떠먹였는데,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는 속담을 증명하듯, 거짓말처럼 열이 내리고 체증이 사라졌다. 아이들 사이에선 그 가루가 돼지 오줌을 정제해서 만든다는 소문이 돌아 경계의 대상으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어떤 연유로 그 만병통치약이 다 큰 아이에게서 어머니의 젖을 떼는 데까지 사용되었는지는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일단 그것에 혀를 대 본 자는 왜 국어사전에 그 기묘한 이름의 가루가 등장하게 되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금계랍이 사라진 지금 그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맛보고 싶은 자에겐 토닉워터를 권장하겠다. 열대 지방의 사람들이 말
라리아를 예방하기 위해 키니네 나무껍질을 씹는 것을 보고 영국의 군의관이 그것을 갈아 탄산수에 녹인 뒤 자국의 군인들에게 공급하게 되면서부터 그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 위 소설의 저작권은 김솔 작가에게, 사용권은 〈쉼표, 마침표.〉에 있으므로 무단 전재와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

글_김솔
1973 출생
2012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공동 당선
2013 문지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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