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어느 블로그에서 봉숭아 노래를 듣다가
문득 씨애틀 누나가 생각났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어도 못 들어온 누나는
삼일 아닌 오일장을 해야하는 부담을
맏상주인 형님이 원치를 않아
그냥 전화기 저편에서 펑,펑, 울기만 했다.
그렇게 어머니를 보내고서는
이내 소식이 한참 없다.
잘 살아보겠다고
늦은 나이에 건너간 미국땅 끄트머리에서
씨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연속이다.
누나는 역이민으로 들어오고자 해도
매형 형제들이 모두 그곳에 있으니
누나의 소원은 희망사항으로만 남아
눈물바람이곤 한다.
결혼식에 들왔을 때 누나 얼굴을 보니
눈이 한 십리는 들어갔다.
그저 매양이 그리움에 젖은 축축한 눈이었다.
자식을 에우고 며느리를 얻는 그 좋은 날에도
미소 뒤에 숨겨진 그 쓸쓸함을 보았다.
그렇게 꿈같은 며칠이 지나고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뵙고는 펑,펑, 눈물을 쏟으며
다시 씨애틀로 건너가더니
어머니 돌아가신 그 후로 영 소식이 없다.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애매모호함으로
정체성마져도 무너져가는 눈치였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만이 행복였을까?
자기 것의 일상을 찾지 못하는
먼 이국에서의 여정.
물질적인 것 이상의 정신적 행복이
월등히 중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한참을 멀어진 다음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옛날의 회상에 자주 젖어든다는 것은
이국 땅에서나 고향 땅에서나 매 한가지겠지만
가고파도 갈 수 없는 향수병은
더욱 깊고 애닲으리라.
가족을 버리고 홀로 들어와 산다는 것이
불가능한 현실이라는 것에서
체념하듯 살아가는
누나의 생이
가련타.
누나는
인생 잠깐이라고 했다.
십년이 훨씬 넘어버린 이민생활에서
정신없이 흘러간 세월을 돌아보니
앞으로 닥쳐올 십년 세월 또한
잠깐일 것이 아니냐고.
그러다보면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무슨 영화를 바라고 살아가야 할지
도대체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매형은 그저 묵묵히
한 쪽 귀로 듣다가 흘려버리기만 할뿐
누나 혼자 애걸복달이다.
부지깽이같이 여위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동생된 마음이 영 좋지를 않다.
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어머니를 보내드리고는
그런 생각이 부쩍 자주 들곤 한다.
삶의 중심을 제대로 잡고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녹록치가 않은 것임을..
형제 뿔뿔히 흩어지고
소식 뜸하니 살아가는 세상에서
생각사록 쓸쓸함으로 젖어드는 홀로 저녁이다.
유년기를 제일 많이 함께 했던 추억을
이러 저러 지니고 살아갈 누나.
이렇게 쓸쓸한 저녁이면
나같이 누나도 나를 생각이나 해줄까?
누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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