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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뜻이 모이다(다국어 사전)-편찬 책임자 강현화 교수

이산저산구름 2013. 2. 22. 16:06
"최근 국제 사회는 다언어적, 다문화적 사회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언어와 문화에 관한 지식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세계 각지에서 이주해 오는 사람이 많아짐에 따라 한국어 사용자의 다변화가 눈에 띄게 확대되고 있지요. 하지만 언어 문화적 지식의 소통과 교류 체계가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이고, 한국어 학습의 기반이 되는 기초 학습 자료가 산재돼 있어 그 활용도와 접근성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이유로 한국어 교육 및 한국어 지식 접근을 위한 공공적 지원 사업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다국어 사전> 편찬 사업을 진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간 국립국어원에서는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학습 사전>,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범용 교재>, <한국어 학습용 기초 어휘 목록> 등의 한국어 교육 분야 관련 기초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다국어 사전>은 그간에 이루어진 연구들을 바탕으로 국내외 한국어 교육에 활용할 수 있게 할 목적으로 편찬되는 것으로써, 대상 언어를 계속 추가할 수 있는 개방적 시스템이 될 것이라고 강 교수는 강조했다.

<다국어 사전>, 쉽게 생각하면 국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을 위해 제작되는 사전으로서 그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 혹은 국내에서 해당 언어를 전공한 사람이 할 일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대역어 사전 제작을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것이 의아했다. 이에 대한 강 교수의 대답은 명쾌했다.
"우리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단어나 표현을 제시하려면 기초 어휘를 모으고, 실제 사용 빈도가 높은 단어들을 추려 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작업입니다. 그래야 사전의 효율성도 높아지고, 또 번역되었을 때 오류 없이 정확한 표현으로 전달될 수 있겠지요. 그것이 바로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기초 작업을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기초 어휘 5만 개가 실린 <한국어 기초 사전> 편찬의 책임을 맡은 관계로 이를 5개 국어로 번역한 <다국어 사전>의 편찬에도 힘을 보태게 된 것이지요."

이번 <다국어 사전> 편찬은 기초 사전 30여 명, 대역어 사전 30여 명 등 총 60여 명의 인원이 참여하는 작업인 만큼 보다 정확하고 효율적인 결과물을 낼 것이라고 강 교수는 말했다. 단어 하나하나마다 담당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으면 몇 번이고 논의를 거듭하여 객관성과 정확성을 높여 왔다고 하였다.

"<다국어 사전>은 선정된 대역 언어 분야의 어휘 대역 전문가한국어를 구사하는 현지 언어 전문가가 1차 번역과 2차 번역을 수행합니다. 이 결과물을 다시 언어별로 전문가 감수를 거쳐 대역 작업의 질적 제고를 꾀하게 되지요. 표제어가 다의어인 경우에는 세부 의미 항목별로 대역 작업을 진행하였고 부표제어관용어, 상투 표현 등의 대역 작업도 병행함으로써 한국어 학습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기초 토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어로서 한국어를 학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사전으로 <다국어 사전>을 표현한 강 교수. 국내외에 거주하는 외국인이나 재외 교포뿐만 아니라 일반 한국인들에게도 효용이 높은 <다국어 사전>의 가장 큰 특징이자 기존 사전과의 차이점은 과연 무엇일까. 답은 바로 웹web이었다.

"웹을 통하면 사전의 사용 범위가 굉장히 넓어집니다. 검색은 물론이고, 그림 및 영상 자료를 통한 학습이 가능해지고, 개방형 지식 대사전과의 연계는 물론, 위키피디아형 사전으로 지식 공유형 학습을 할 수 있지요. 기존의 종이 사전이 갖는 한계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표제어 첨삭이나 편집이 언제든 가능해지기 때문에 바로 지금 시점에서 널리 쓰이는 어휘를 반영할 수 있게 됩니다. 앞으로 폰트 지원 등의 제약을 해결하면 어느 나라의 누구든 잘못된 표현이나 정보를 수정할 수 있고 현실 어휘를 추가할 수 있기 때문에 활용도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한 강 교수는 웹을 통해 언어적 지식 외에 정보 지식, 문화 정보 등을 교류할 수 있어 정보와 지식의 교류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하였다. 더불어 영어, 일어, 중국어, 독어 등 주요 외국어에만 집중되어 있는 ‘이중 언어 사전’의 영역을 확장해 다양한 외국어 학습자의 사용자 편의를 도모하고 기존 사전에는 없거나 부족하게 제시되어 있는 파생어, 복합어, 잘못된 표현 등의 정보를 대폭 반영함으로써 실제 언어생활에 쓰임새가 많은 사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사전은 주로 이중 언어 사전한-영 사전, 영-영 사전 등의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주변에 흔히 보는 한-영 사전을 보면, 해당 단어와 번역어만 바로 제시해 놓았기 때문에 오류, 또는 부족한 정보가 자주 눈에 띕니다. 예를 들어 '먹다'를 번역하면 'eat'이지만, '나이를 먹다', '물을 먹다' 등과는 일치하지 않는 번역이 되겠지요. 영-영 사전은 해당 단어가 어떤 맥락에서 쓰이는지 자세하게 알 수 있지만, 외국인 입장에서는 그 단어가 모국어로는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없어 불편하지요. 이러한 이중 언어 사전의 한계를 극복한 것이 바로 '반이중 언어 사전'입니다. '반이중 언어 사전'에서는 표제어의 뜻풀이는 학습자의 모국어로 하여 궁금증을 풀어 주고, 예문이나 부가 정보는 목표 언어로 하여 쓰이는 방식이나 맥락을 짚는 데 도움을 주는 방식을 취한 사전입니다. <다국어 사전>은 바로 '반이중 언어 사전' 형식으로 제작되고 있습니다."
<다국어 사전>은 최종적으로는 20개 언어를 대상으로 편찬할 예정이다. 이번에 완료한 베트남어, 몽골어, 타이어, 러시아어, 말레이·인도네시아어의 대역 결과물은 수정, 보완을 거쳐 오는 10월 9일에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영어, 아랍어를 포함한 5개 언어의 대역은 제2단계 사업으로 예정되어 있다. 이렇게 단계적으로 총 20개 언어의 대역이 마무리되면 다양한 언어권에서 온 외국인들이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다국어'의 선정 기준은 무엇일까.

"<다국어 사전>에 반영할 언어는 여러 대상 언어들 중에서 학습자의 요구 및 언어권별 수요, 한국어 보급의 파급력 등을 조사하여 연차별로 우선순위를 정했습니다. 또한 '한국어 능력 시험'의 지원자 분포, 한국에 입국하는 외국인 근로자의 국적 분포,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의 국적 분포도 조사하여 반영하였습니다. 현재 가장 사전 제작이 절실한 언어부터 시작하고자 한 것이지요. 또 대역어로 선정된 5만 단어는 기존에 출판된 한국어 교재에 소개되었거나 한국어 능력 시험에 출제된 어휘,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사전에 등재된 어휘, 전문가가 집필한 필수 기초 어휘 등에서 중복적으로 추출된 단어 약 7만 8천 개 가운데에 꼭 필요하다고 판단된 단어들을 추렸습니다. 이중 실질 어휘는 약 4만 개 정도이고, 연관 어휘나 합성어 등을 포함하면 5만 개가 됩니다. 통계에 따르면 5만 개 정도면 90%가량의 의사소통이 가능합니다.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에는 충분한 양인 것이지요."
몇 해에 걸쳐 <다국어 사전> 등 외국인을 위한 사전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강 교수. 그가 이토록 외국인의 언어생활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가 궁금했다.

"작년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외국인 학생을 10명 선발했는데 국적이 모두 달랐어요.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외국인이 그만큼 다양해졌다는 뜻이지요. 중국이나 일본 유학생만 눈에 띄던 교정에서 지금은 전 세계에서 온 유학생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한국어 교육에서는 이주민이주 여성, 이주 노동자, 다문화 가정 아동 등을 대상으로 한 언어문화 교육의 방향성 설정과 방법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며 학술적으로 다양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연구가 꼭 필요하다고 전했다. 또한 일반인이 외국인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고 한국어를 배우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들에 대한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최근 자원봉사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열정이 일차적 조건이겠지만 전문성이 없으면 아무래도 힘든 일입니다. 한국을 배우려는 외국인의 말에 귀 기울여 주고, 격려해 주면서 마음으로 함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못되었거나 어색한 언어 표현들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갖추어야 제대로 된 교육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13년 1월에 <다국어 사전>의 제1단계 사업인 5개 언어 대역 작업이 완료되었고, 곧이어 제2단계 사업이 시작된다. 대역어에 존재하지 않는 어휘나 품사를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세심한 고민부터 각 언어 간 번역의 통일성 기준 마련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난관들을 지나며 <다국어 사전>은 조금씩 치밀해지고, 단단해져 가고 있다.

단일한 문화권에서 하나의 언어만을 사용해 온 우리에게 외국어는 거추장스럽게 여겨진 때가 많았다. 그러나 오늘날 외국어는 그저 소통의 장애 요소로만 기능하지 않게 되었다. 외국어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 내리고 있는 문화적 다양성을 흡수하고 공존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런 시대 변화에 맞추어 <다국어 사전> 편찬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다국어 사전>이 다문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 한국어의 국제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해 본다.

글·사진_최민영
강현화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학교 석사 및 박사 과정을 마치고 경희대학교 외국어대학 한국어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어심의회 위원, 외국어교육학회 부회장, 문법교육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국어의 동사 연결 구성에 대한 연구>1998, <대조 분석론>2003,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 개론>2005, <한국어 학습자 사전>2005, <한국어 교육을 위한 한국어 연어 사전>2007,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경영 한국어>2007, 2009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