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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
충청남도 안면도 바다 파도자락 느릿느릿 오래 전의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정작 개펄 가까이 다가와서는 더이상 어쩔 수 없는 이야기 끝 물보라였다.
옷 젖어버린 채 밀물 뒤 썰물에 드러난 드넓은 개펄 아직 남은 햇살에 옷이 마르기 시작했다. 하략 고은_<두고 온 시> 중에서, 창비 시선 213_창작과 비평사
안면도는 관능적인 섬이라 했다. 참 적절하다. 우리가 아는 안면도는, 서해안은 고은 시인이 묘사한 그대로이다. 안면도의 파도는 느릿느릿 갯벌을 넘어서 한 군데 각진 곳 없는 완만한 곡선으로 사구 앞까지 다가와 모든 에너지를 한 번에 쏟아 놓고 물러난다. 안면도의 바다는 숙성되어 농후한 향취가 있다. 그 파도가 빠지고 난 개펄의 선 또한 유려하고 부드럽기 그지없는데, 검은 속살에 비친 햇살이 따사롭고 친절하다. 밝은 날 안면도 해안선은 가늘고 긴 띠 같은 잔잔한 파도로 한산하다. 개펄이 잘 발달해 수심이 얕은 안면도의 특성상 어지간한 바람에도 백파가 일지 않아 사납지 않다. 그래서 남은 햇살에 옷을 말려도 바람이 덜 차게 느껴지고 아늑한 정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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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와 중매인, 어물 장수들의 시끄러운 고함 속에 대하 박스가 실려 나가고 실려 들어 왔다. 그 소란스러운 와중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선원들의 얼굴은 거칫하지만 해낙낙하게 보였다. 물초가 되도록 파도에 시달린 뒤끝의 후련함과 안도감인지, 어획량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알 수 없었다. 판장이 끝나면 그네들은 어느 술집, 어떤 물새를 찾아갈지, 서늘한 가을날 느지거니 안면도는 쉬이 잠들지 못하고 뭉싯거렸다.1 정기태_안면도, <고기잡이 여행>_바보새
1 '뭉싯거리다'는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말이나 필자의 의도를 고려하여 그대로 인용함
광주일보 기자였던 정기태가 지은 고기잡이 여행에 안면도 대하 어판장을 묘사한 장면이다. 참 좋은 글, 좋은 책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나라 전국 연안의 고기잡이에 대해 이처럼 상세하고 아름답게 적어 놓은 책은 흔하지 않다. 거칫하지만 해낙낙한 선원들의 얼굴이라, 참 시적이지 않은가! 쉬이 잠들지 못하고 뭉긋거리는 어부의 마음이 세세하게도 전달된다.
지금도 안면도 어귀에 있는 백사장 해수욕장은 늦가을 대하와 꽃게로 분주하다. 어제 바람이 많이 불어 오늘 급하게 꽃게 그물을 걷어 수확하는 어부들의 깊게 주름진 검은 얼굴도 이때만은 행복해 보인다. 오래 그물에 걸려 있어 선도가 떨어진 꽃게는 바로 얼음에 채워진다. 아직 알이 덜 찼고, 살이 더 올라야 할 꽃게들이다.
저 너머로 양식 대하가 원형 수조를 끊임없이 맴돌고 있다. 자연산 대하는 생물이 없다. 성격이 급해 잡히는 족족 죽어 버리기 때문이란다. 마침 평일 이른 저녁 백사장항 식당가는 아직은 한산했다. 호객꾼들만 심드렁하게 지나가는 강아지를 희롱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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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쪽은 바닷물에 씻긴 하얀 원형을 잃은 사구가 3중으로 해안을 이루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사구는 바다 생태를 유지해 주는 경계선으로 환경 오염을 막고 바다와 육지 간의 엄정한 환경 필터라는 것이다. 이곳 “바람아래해변”은 내가 만난 해변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원시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 해안이라 볼 수 있다. 개발이 아닌 보다 철저한 보존이 요구되는 곳이다. 사구는 어디까지나 안면도를 영원히 지켜 주는 보석 띠인지 모른다. 서창원_<이생진 시인과 안면도 문학 기행> 중에서
안면 해변은 천천히 걷기에 좋다. 태안 해변 길 중 노을 길은 백사장항에서 꽃지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약 12km의 산책로이다.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삼봉해수욕장을 만난다. 삼봉해수욕장의 설탕 같은 금사가 아물아물한 곳까지 드러났을 즈음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참 드넓은 공간에 빛이 가득한데 공기는 차가웠던 듯싶다. 센바람을 피해 사구에 몸을 반쯤 숨기고 한참을 쳐다본다. 조금 전 지나온 백사장항의 개펄이 지척인데 이리도 고운 해변이 있을 줄이야. 신두리만은 못하지만 삼봉은 육지와 바다를 구분 짓는 생태계, 사구가 잘 발달되어 있다.
조금 더 섬 깊이 들어가면 두여 전망대를 만나게 된다. 참 절경이다. 백여 미터 아래 두여 해안 습곡은 물때를 잘 맞춰야 볼 수 있는 곳인데 온통 바닥이 바위로 되어 색다른 풍광을 자랑한다. 그 너머로 이어지는 끝없는 서해, 일몰을 보려 한다면 이 전망대가 호젓하고 가릴 것 없이 시원해서 좋다.
안면도는 굽이굽이 이질적인 풍경들이 모여 있다. 몽돌 자갈 해변이 펼쳐지다 갑자기 개펄이 나오고 고개를 넘어가면 곱디고운 모래 해수욕장이 출현하는 식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해안선을 하나씩 골라 모아 놓은 듯한 매력이 그만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한 발자국 물러나면 곧 깊은 산으로 이어져 버려 30미터가 넘는 낙락장송의 원시림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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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 일주로를 따라 천천히 차를 몰아도 한 시간 남짓. 작은 섬이다. 원래는 육지였는데 황금송을 잘라 수로로 나르려고 일부러 육지와 연을 끊어 섬이 되었다고 한다. 안면도 수목원에 가도 백 년 넘은 소나무는 찾아볼 수 없다. 안면도의 소나무는 내가 알던 뒷동산의 소나무가 아니다. 굽음이 없고 옹이도 많지 않아 기개 높은 장년의 남정네를 바라보는 듯 대견한 구석이 있다. 수형이 탄탄한 것이 선이 올곧다. 침엽수는 활엽수보다 깊은 그늘을 만들어 낸다. 태양을 많이 담아 낼 수 있는 바늘 같은 잎새 덕에 척박한 토양과 불리한 기후에도 생존에 유리하다.
두여 안면도 소나무 방풍림을 보면서 일본 도카쿠시 삼나무 숲보다 장대했을 안면도 황금송의 부활을 기원하게 된다. 태안 국립공원에 조성된 송림 산책길, 아직은 어린 소나무 숲 그늘, 고개를 들어 연못처럼 떠오른 하늘을 본다. 기대를 걸고 싶다. 이 숲의 미래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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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_정녕
인용 문헌 <두고 온 시>, 고은 저, 창작과 비평사 <고기잡이 여행>, 정기태 저, 바보새 <이생진 시인과 안면도 문학 기행>, 서창원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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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문화 기획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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