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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부안의 <국립공원 변산반도>에는 '바다의 강'이 있습니다.
변산반도는 바다와 산이 결합되어 독특한 풍광을 보이는 곳입니다 만 특히 해안단애 <채석강과 적벽강>에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이른 봄에 돌아 본 바다의 강, 채석강과 적벽강 탐방기가 3번째 부안이야기 입니다.
채석강(彩石江)이란 명칭은 중국 당나라의 시인 '이백(李白, 이태백)'이 물속에 비친 달을 쫓아 들어 갔다는 중국의 채석강과 견줄만 하다 여겨져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합니다. 이백은 두보와 함께 중국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시선(詩仙)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적벽강(赤壁江) 역시 당송8대가의 1인인 대문장가 '소식'이 노닐던 황주(黃州)의 적벽(赤壁)에서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채석강이나 적벽강이나 모두가 바닷가의 해안절벽인데도 강(江) 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바다에 강의 명칭을 붙인것이 우리 선조들의 파격의 멋이라 해야 할 지, 아니면 무리수라 해야 할 지는 여러분의 생각에 맡깁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 고유의 아름다운 이름을 지으려 하지 않고 중국에 비교하여 명명하였으니 후세의 우리 입장에서 볼 때에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를 소중화(小中華)라 여기며 중국에 가까워지고자 했던 당시 사대부들의 중국몰입의 일면을 보는 듯하여 씁쓸합니다만 이미 오랜동안 불러와서 정형화 되었으니 이젠 우리적인 이름이라 자위해 봅니다.
지명에 대한 이야기는 영남지방의 예도 생각이 납니다. 천황산과 재약산 등이 속해 있는 <영남알프스> 역시 일본 북알프스에서 지명이 연유 했고, 일본은 유럽 알프스에서 지명을 빌어 온 것이지요.
몇 해전 한 지자체에서 영남알프스라는 명칭을 '울주7봉'으로 개칭하려다가 "왜 울주만 들어 가느냐"는 타 지자체의 반발로 무위에 그쳤다는 이야기가 생각 납니다. 타 지역과 협의 없는 일방적인 개칭 시도여서 실패했겠지만 한 번 이름하여 세월이 흐른 뒤에는 다시 고치는 것이 아주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먼저 채석강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채석강 彩石江]

채석강 입니다.
아침의 바다공기 속에서 해식단애 아래를 천천히 걷는 여유가 즐겁습니다.
오전시간이 아니면 탐방로가 서해바다의 밀물에 의해 잠기기 때문에 안쪽까지 제대로 감상 할 수가 없습니다.
오후에 밀물이 들어차 버리면 단애 아래를 걸으며 바다를 바라보는 즐거움은 누릴 수는 없는 것이지요.

언제나 탐방객이 많은 채석강인데 아침 시간이라서 한가롭습니다.
그 한가로움이 마음을 여유롭게 해줍니다.

파도에 침식되어 여러가지 기묘한 형태의 단애를 이루고 있는 채석강의 퇴적암은 7000만년 전 부터 켜껴이 쌓인 것이라고 합니다.
지구의 나이가 46억년이라는걸 기억하면 7000만년 이란 세월도 짧게 느껴지는군요.

지구에 비하면 짧은 7000만년... 그러나 우리 인류의 기원이 400만년 전이라고 하니 우리 인간에 비하면 긴 시간입니다.
원시인류가 40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어 우리 현생인류의 모습으로 진화되었다고 하나
이곳 채석강의 7000만년 역사나 이 땅의 46억년의 세월에 비하면 짧게만 느껴집니다.
이런 셈하기 어려운 시공(時空)을 생각하니 우리의 생生이 머물다 가는 시간은 찰나지간이 아닌가 합니다.

찰나지간 처럼 짧은 삶이라면 1분1초가 아까운 시간들일 것입니다.
채석강의 넓은 암반 위에 걸터 앉아서 바다를 바라 보세요...
이 땅이 끊임없이 순환하니 바다에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암반에 붙어있는 푸르른 파래가 봄을 노래하고 있는것만 같았습니다.

채석강의 해식동굴
이곳도 오후에 밀물이 밀려오면 바닷물에 잠기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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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강 赤壁江]
채석강에서 2km 정도 해안을 따라가면 적벽강이 있습니다.
적벽강은 채석강의 기암절벽에 비하면 아담한 규모 입니다만
채석강이 유명세 만큼 인파가 몰리는 것에 비해 적벽강은 언제나 한가로워서 여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로운 풍광과는 달리 바람과 파도는 그 어디 보다도 더 거세게 일렁이는 곳이 적벽강입니다.

바위가 붉어서 적벽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만 서두에서 이야기 했듯이 중국의 지명에서 온 것입니다.
중국 양자강의 적벽(赤壁)은 삼국지의 무대로서 오나라가 조조의 위나라 백만대군을 격파한 적벽대전의 현장입니다만
소식의 적벽은 그 곳과는 다른 황주의 또 다른 적벽이었습니다.
후세인들은 적벽대전의 적벽을 <삼국적벽>이라하고
소식이 읊은 적벽을 그의 아호 동파(東坡)를 딴 <동파적벽>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송(宋)대의 소식(蘇軾 호;동파)은 황주(黃州)의 적벽을 보고 명문 <적벽부赤壁賦>를 지었습니다.
소식은 아버지 소순(蘇洵), 동생 소철(蘇轍)이 모두 뛰어난 문장가여서 각각 당송8대가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고려의 선비들은 소식의 문장을 추종했고 이런 '동파사랑'은 조선사회에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우리의 고대 역사서 <삼국사기>를 엮은 고려의 문신 김부식은 소식과 그의 동생 소철의 이름을 본따서
자신과 동생을 김부식(金富軾). 김부철(金富轍)이라 이름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고려인들의 사랑과는 달리 소식(동파)은 평생 고려를 혐오했습니다. 우리의 짝사랑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고려와 종교.정치 경제적 교류를 하지 말라는 상소를 수 차례 일관되게 올림은 물론 고려사신들을 위해 객사를 짓는 것도,
사신단이 서적을 구입해 가는 것도 모두 그는 송의 국익을 해하는 일로만 여겼습니다.
문약했던 조국 송을 염려해서라고만 하기에는 지나친감이 많았던 그의 행태 였습니다.
'동파사랑'은 조선 이후에도 여전해서 그 짝사랑의 편린을 여기 변산 마실길의 한 바위벽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사진은 작년 봄에 동아닷컴FT회원들과 함께 서울을 출발하여 마실길을 걸을 때의 적벽강 모습입니다.
당시 변산해수욕장~채석강까지 마실길 1구간 2~3코스를 걸었습니다.
적벽강을 지나서 단애 위로 난 길을 따라가면 해안절벽 위에 여해신을 모시는 <수성당>이 나타납니다.
다음 이야기는 그 수성당과 바닷바람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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