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 싶은 글

행간 속에 숨은 의미

이산저산구름 2010. 2. 24. 11:02

행간 속에 숨은 의미

정제규


“그대와의 하룻밤 이야기가 십년의 독서보다 낫다

(共君一夜話。勝讀十年書)”
 

 이제는 고인이 되신 은사님께서 신미년(辛未年, 1991)의 원단(元旦)에 내게 써주신 글이다. 그 글을 받아들었던 순간의 기억이 있다. 깊은 애정에 대한 벅찬 감정과 새로운 다짐…… 그 순간의 마음은 격정 그대로였다.  

  옛글 가운데 간간이 나오는 이 말은 대부분 깊은 감정을 그대로 담고 있다. 최립(崔?, 1539~1612)의 『간이집(簡易集)』에는 멀리서 찾아온 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다.  

  최립은 임진왜란과 광해군 즉위 무렵에 외교 문서를 담당하였던 인물이다. 그는 1593년(선조26)에 승문원 제조(承文院提調)에 기용되었는데, 이는 전쟁 중에 문장을 잘하는 이들이 필요했던 까닭이었다. 시문에 나오는 오음상공(梧陰相公)은 당시 능문자(能文者)를 발탁할 필요가 있다고 논하였던 윤두수(尹斗壽, 1533~1601)이다. 저나무(樗)는 『장자(莊子)』<소요유(逍遙遊)>에 크기만 했지 무용지물(無用之物)이라 비유되어 있는 큰나무로서, 곧 세상에 쓸모가 없어서 버려진 자신을 상징하는 것이다. 글에서 느껴지는 것은 쓸모없다 생각되는 자신을 탁 트인 마음으로 대해 주는 이에 대한 최립의 마음이다.  

천리 길 수레 마냥 찾아 주신 삼공(三公)의 행차 / 三公柱駕?千里
한 번 대화 나눈 것이 십 년의 독서보다 낫네 / 一話當書勝十年
이것을 즐길 자격 있는 위대한 현인이 아니라면 / 非是大賢能樂此
쓸모없는 저나무(樗)를 소연히 대하려 하리이까 / 肯將樗散對蕭然
(『簡易文集』卷之七, 「麻浦錄」<謝梧陰相公臨訪疊前韻> )


 이같은 마음은 퇴계의 글에서도 발견된다. 『퇴계선생문집별집(退溪先生文集別集)』 권1에는 “欣然一室內 坐談雜今古 風華盡可慕 激烈起昏莽 勝讀十年書”라 하여 집에 찾아온 길원(吉元) 정유길(鄭惟吉, 1515~1588),선명(善鳴) 이탁(李鐸, 1508~1576),정서(廷瑞) 이원록(李元祿, 1514~1574)과 더불어 집안에 앉아 고금의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들이 소중했음을 말하고 있다. 이같이 인간사 가운데 교감(交感)을 나누는 일은 무엇보다도 의미있다고 생각되었으니, 이는 『소재집(?齋集)』의 ‘逢君勝讀十年書’, 『학봉속집(鶴峯續集)』의  ‘淸談勝讀十年書’, 『희락당고(希樂堂稿)』의 ‘與君一日話 勝讀十年書’,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의 ‘一夜留話 勝讀十年書’, 『지천집(遲川集)』의 ‘一言勝讀十年書’ 등 옛글 곳곳에 남아 있는 비슷한 표현들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주자어류(朱子語類)』에도 나타나고 있다. 이 책은 주희(朱憙)와 그 문인(門人)들이 나누었던 학문상의 문답을 담은 것으로, 이곳에 철저하게 이치를 궁구하라는 뜻으로 인용되어 있는 것이다.



이미 시전(詩傳)을 가르침받고  힘써 초록(抄錄)하였으나 자못 막힌 것이 있어 선생님을 모시고 가르침을 받았다. ……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주재(周宰)가 이르기를, ‘선생님의 글은 논지가 바르고 뜻과 이치가 정밀합니다. 이미 얻어 열심히 읽고 생각을 깊게 하여 이를 따르고 힘써 행한다면 차이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고 하였다.” 말씀하시기를, “주재의 재질은 매우 총명하나 다만 조금 정밀하지 못하고  서툴러 세밀한 곳에까지 가서 구하기를 즐겨 하지 않으니 이같이 말한 것을 알 수 있다. 책을 읽고 말을 ?i아 얻는 것이 더욱 분명해지나 어찌 의논(議論)함과 같을수 있겠는가. 한마디 말 반구(半句)라도 통하여 도달할 곳이 있겠는가. 이른바 『그대와의 하룻밤 대화가 십년의 공보다 더하다』라고 하였다. 말과 같이 투철한 곳에까지 이른다면 어찌 십년의 공에만 그치겠는가.

《朱子語類 卷117 朱子14 訓門人5》
 

  주자는 주재(周宰)의 재질을 평하며, 뜻과 이치를 얻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말하는 과정에 이 말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깊은 감정이 포함된 ‘교감’이라는 의미에서 벗어나있다. 의론(議論)을 통하여 ‘투철하게 정밀한 곳에 이를 수있다’는 것으로, 이를 표현한 것이  ‘共君一夜話 勝讀十年書’라는 것이다.  

  이같은 의미는 『조선왕조실록』의 한 대목을 통하여도 짐작할 수 있다. 곧 영조30년(1754)의 7月 3日(庚辰) 기사에 정언 서명응(徐命膺)이 예덕(睿德)의 면려를 1강 8목으로 아뢰는 대목이 나오는 것이다.

 

정언 서명응이 상서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지금 염려되는 온갖 일 중에서 예덕(睿德)의 성취보다 더한 것은 없으니, 삼가 1강 8목(一綱八目)으로 아룁니다.” …… 첫째 강학(講學)을 밝히는 것입니다. …… 사부가 여러 빈객들과 궁료들을 거느리고 크게 모여서 합강(合講)하되, 오로지 읽는 것만 일삼지 말고 무릇 행실의 요체와 처사하는 방법과 백성을 다스리는 도리를 반복하여 상확(商確)한 다음 해가 기울면 파하고, 춘분 이전과 추분 이후의 밤이 조금 긴 때에는 경루(更漏)가 내리기 시작할 때에 와합(臥閤)에서 궁료를 인접하여 벗들이 학문에 힘쓰며 격려하듯이 조용히 강마(講磨)한다면, 점점 물들어서 반드시 크게 힘을 얻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옛말에, ‘그대와 함께 하루 동안 이야기하면 10년 동안 글을 읽는 것보다 낫다.’ 한 것이 이 때문입니다.  


정언 서명응은 영조에게 밝은 덕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우선 강학(講學)에 힘써야 한다는 사실을 간언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오로지 읽는 것에만 치우치지 말고 여러 사부와 빈객들을 모시고 행실의 요체와 처사하는 방법과 백성을 다스리는 도리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 나누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서로 힘쓰며 격려하여 큰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비로서  ‘共君一日話 勝讀十年書’의 진의를 깨닫게 된다.
 

  새로운 한 해의 첫날을 기다리며 비로서 은사님의 글 속에 스며 있던 행간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유독 혼자만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지금 홀로 책을 읽어가며 생각의 깊이를 더하는 것도 매력이겠지만, 옛사람들의 말과도 같이 많은 이들과 어울리며 의리를 밝게 하고, 세밀하여 투철할 수 있다면 조금더 시행착오는 적으리라 여겨진다. 진정 그마음을 얻을 때 어찌 십년의 독서보다 못할 것이며, 어찌 그대와의 하룻밤 대화가 즐겁지 않겠는가.
▲ 문화재청 청주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실 정제규 감정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