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君子(梅, 蘭, 菊, 竹) 중 하나인 대나무는 식물학적으로 竹科, 竹亞屬에 속하는 것의 總稱으로 열대 및 아열대 지역에 분포하며, 종류는 무려 1,250종이 넘는다. 대나무의 명산지로는 南中國과 臺灣, 日本및 우리나라 일부 지역이 대표적이다. 대나무는 왕성한 생명력과 번식력으로 인해 고온다습한 지역에서는 대숲을 항상 볼 수 있을 만큼 지리적으로나 생태적으로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식물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구하기 쉬운 재료인데다 특유의 성질로 인해 광주리, 소쿠리, 키 등의 생활용구에서부터 종이를 대신했던 竹簡과 같은 문방구를 비롯하여, 笙簧이나 피리와 같은 악기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자연생태에서나 생활속에서 인간의 일상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던 대나무는 자연스럽게 문예의 소재로 다루어지게 되었고, 다양한 문학적 비유를 거치면서 상징화 되었다. 四君子중 제일 먼저 詩와 그림에 나타난 대나무는 그 아름다움, 君子의 人品과 비유될 수 있는 理想的 人間像과 强靭性, 謙虛, 志操, 節槪. 吉祥, 祝壽등 의미가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다.
현재 전하는 문헌 기록으로 볼 때, 대나무가 그림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六朝時代부터이다. 東晋의 화가인 顧愷之가 竹林七賢을 그린 <七賢圖>나 劉宋 武帝때 활동한 화가인 顧景秀의 <王獻之竹圖>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다만 육조시대 그림의 대부분이 人物畵 중심이었던 사실로 미루어 보아 이 두 그림들도 그 배경에 대나무가 보이는 인물화였을 것으로 믿어진다.
唐代에 들어오면 畵目이 일반적으로 좀 더 다양해지고 그와 더불어 대나무 그림은 花鳥畵의 발전과 맞물리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한다. 朱景玄의 『唐朝名畵錄』에 수록된 제화가들 중 韓幹, 薛稷, 韋偃, 程修己, 殷仲容, 肅悅, 李靈省등 18명이 竹木, 花竹, 竹樹 등에 특기를 가진 것으로 수록되어 있어, 대나무가 그림의 소재로 일반화하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唐代의 竹畵들은 대체로 대나무를 花鳥나 樹木과 병치시키거나 부수적으로 그렸으며, 기법 또한 주로 彩色畵 위주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唐代에 그 기틀을 마련한 竹畵는 五代(908~960)에 이르러서 본격적으로 발전한다. 이 시기의 예술 활동은 西川을 중심으로 하는 蜀과 金陵을 중심으로 하는 南唐에서 매우 활발히 진행되었다. 이에 회화 분야에서도 많은 화가들이 배출되어 다양한 기법과 소재를 선보임으로써 중국회화의 외연을 한층 확대해 나간다.
그 가운데 唐 末期부터 五代에 걸쳐 살았던 南唐의 화가 孫位는 唐代 竹畵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본격적으로 墨竹畵를 시도했던 인물이다. 손위의 묵죽화풍은 黃筌에게 전해진다. 황전은 주지하듯이 花卉와 翎毛에서 발군의 기량을 보인 五代 최고의 화조화가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五代 시기 묵죽화 전통은 北宋대로 계승되어, 기법적인 발전은 물론이거니와 이론적인 토대까지 한층 강화된다. 이에 묵죽화는 북송대에 이르러 산수나 인물화 같은 주도적인 화목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독립된 畵科로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묵죽이 士大夫畵의 主要畵目으로 자리를 굳히게 된 것은 북송의 蘇軾과 文同의 활약에 의해서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문동의 묵죽화와 소식의 탁월한 이해와 해석에 의하여 묵죽화는 사대부들의 단순한 자기표현 수단을 넘어서서 道의 경지의 표현, 또는 조물주의 창조와도 비유되는 자연섭리의 표현으로까지 승화된다. 後代 동양의 모든 묵죽화가들이 소식과 문동을 宗으로 삼는다고 할 만큼 神的인 존재가 되어 버렸다. ▲ 문화재청 김포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실 오기복 감정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