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 싶은 글

사랑이여 건배하자

이산저산구름 2008. 5. 1. 16:03
사랑이여 건배하자

휴대폰도 훌륭한 시집이 될 수 있습니다.

황지우 시인(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이 지난 주 지인들에게 문자 메시지<사진>를 보냈습니다. '아픈 자리 생살 돋듯/ 온 산에 신록이/ 치밀어 올라오는 이 아침/ 당신도 아아 살고 싶으시죠'

액정화면에는 띄어쓰기도, 행갈이도, 메시지도 없었습니다만, 수신자 기분 내키는 대로 연을 나눠보면 한 편의 시가 되네요. 햇잎 돋아나는 봄날 풍경에 함께 취해 기운을 얻자는 시인의 애틋한 마음이겠지요. 시인이 썼다고 모두 시가 되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첫 소설 〈뱀과 백합〉에도 봄이 오기 전에 필요한 대지의 아픔을 그린 문장이 있으니 비교해보세요. '겨울의 고독 속에 내던져진 대지가 온몸을 아파하면서 봄을 기다리는 것처럼 나는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역시 시는 다르지요?

황지우 시인은 간혹 휴대폰을 이용해 지인들에게 짧은 시적 메시지를 전하곤 합니다. 어느해 겨울이던가, 이런 메시지를 보낸 적도 있습니다. '새해 마당에 또 내리는 눈: / 차마 밟지 못하고, / 저 순한 마음의 파스 한 장. / 당신의 등짝에 붙이려오.' (중략)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고은 '그 꽃'),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정현종 '섬'). 같은 짧은 시를, 보내고 싶은 이에게 먼저 문자로 보내보세요. 시가 있는 하루가 시작되잖아요. 이렇게 짧은 시라면 나도 쓸 수 있다는 분은 대환영입니다. 엄지로 시작해서 맛 들이면 어느 날 자판을 두드리거나 펜을 쥘 지도 모르잖아요.


- "시(詩)가 흐르는 휴대전화" 中에서(chosun.com)
박해현 기자의 컬쳐 메일 전문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사랑이여 건배하자.
추락하는 모든 것들과 꽃피는 모든 것들을 위해 건배.

서울 한복판, 광화문 네거리에 자리잡고 있는 교보빌딩에 내걸린 시(詩)구절 입니다. 삭막한 도시를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지요. 찌든 삶에 지친 사람도 상처받은 영혼도 잠시나마 위로받을 수 있는 말 한마디. 아이러니하게도 콘크리트 벽이 그 말 한마디를 건네주고 있습니다.

봄이 속삭인다.
꽃 피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삶을 두려워하지 말라.

작년 이맘때 그 곳에서 전해준 말입니다. 장황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의미를 담고 있고 소란스럽지 않으면서도 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로 남으시겠습니까? 작은 속삭임 하나로도 소중한 인연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해 보세요.

"단 한번의 커다란 행복감이 그 동안 겪은 수많은 일로 상처받았던 마음을 치유해주는 법이다" -중국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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