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용한, 박무식 선생님의 무죄를 추억함
2017.2.17. 이광철
배용한, 박무식 선생님의 무죄를 추억함
1. 첫 만남
배용한선생님, 박무식 선생님 두분을 처음 뵌건 2011. 7. 경이었다. 두분은 경북 안동에서 평통사와 전교조에 가입하여 활동하셨다. 나중에 변론하면서 알게 된것이지만,두분 선생님은 아이들이 물신주의에 빠지지 않고 사람의 가치를 잃지 않도록 아이들에게 애정을 쏟는 참스승이셨다. 동시에 민족의 분단에 깊이 고민하면서 어떻게 하면 나라와 민족이 평화와 통일을 이룰지를 모색하는 시민이기도 하셨다. 이분들이 인터넷 다음 카페 "안동 평통사" 등에 올린 글이 공안당국의 감시망에 포착됐고, 2011. 6.경 서울경찰청 보수대의 압수수색을 받으셨다. 그리고 나서 서울청 보수대의 조사를 앞둔 며칠전 나를 찾아오셨다.
2. 구속영장 청구
광화문 사무실에서 첫 대면을 통해 국보법 전반을 설명해드리고 첫 조사에 입회키로 했다. 조사장소는 장안동 대공분실이었다. 조사는 순조로웠다. 검찰송치를 기다리고 있는데 난데없이 구속영장청구소식이 들려왔다. 2011. 10.경이었다. 나중에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에 가담한 이시원 검사는 영장실질심사 법정에서 두분 피의자들로 인해 당장 내일 대한민국이 적화라도 될듯 사자후(라고 쓰고 호들갑이라 읽는다)를 토했다. 순한 어린양 같은 학생들을 붉게 물들이는 피의자들같은 교사는 어서 교단에서 축출해야 한다고 했다. 난 검사의 저런 주장이야말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주범이라 맞섰다. 다행히 영장은 기각됐다. 그날 두분은 자정 무렵이 되어서야 근처 서초서 유치장을 나와 술을 한잔 나누시고 여관에서 주무시고 안동으로 내려가신 것으로 안다.
그 눈물겨운 모습이 채 뇌리에서 가시기 전 검찰은 이번에는 박무식 선생님에 대해서만 영장을 재청구했다. 이시원 검사는 또다시 사자후를 토해냈다. 같은 얘기를 반복했다. 박 선생님은 실질심사 최후진술에서 사모님 얘기를 하신 것으로 기억이 난다. "못 돌아올수도 있을거다. 꿋꿋히 살아라." 법정에서 그 진술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책 몇권 소지하고 인터넷에 글 몇개 쓰는게 "못 돌아올지 모를" 그런 일인 대한민국 정말 후지다.
다시 영장은 기각됐다. 법원에 깊이 감사했다. 또다시 선생님은 자정이 넘은 시간에 유치장에서 풀려나셨다. 이번에는 그렇게 안동으로 내려가시는 쓸쓸함보다, 그렇게라도 자유의 몸으로 안동에 가실수 있다는 다행스러움이 훨씬 컸다.
3. 기소와 1심재판
영장칠때는 당장이라도 두분이 구속 안되면 대한민국이 적화될 것처럼 jr을 하더니, 막상 영장 기각후에는 검찰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잠잠했다. 2012. 12. 대선이 허망한 패배로 귀결되고도 한참 조용했다. 그러다 난데없이 대구지검 안동지청 명의로 공소장이 날라왔다. 2013.6.의 일이었다.
증거를 열람하니 증거기록이 배 선생님 사건이 12,000쪽, 박 선생님 사건이 15,000쪽 정도였다. 증거검토하고 첫기일에 공소사실을 부인한다고 했다. 그로부터 2015. 6.까지 총 12회 안동으로 재판을 다녔다. 변호인의 거친 변론을 그래도 귀를 열어 경청해 주신 1심 판사님 덕분에 2015. 6.30.두분 모두 무죄를 선고받으셨다.
1심 무죄소식은 다음 기사참조
http://m.pn.or.kr/news/articleView.html?idxno=13542
4. 그리고 2심
과거 형사항소심은 별 합당한 이유도 없는데 1심의 형을 관행적으로 몇달 깎아주거나 1심 실형을 집행유예로 바꿔주었다. 이런 양형 문제를 포함해 1심 재판의 전반적 운용의 모습이 1심 형사재판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다고 하여 사법당국은 2007년을 기점으로 하여 1심중심주의를 표방해 형사항소심의 운영을 바꾸는 제도개선을 한 바 있다. 따라서 항소심은 가급적 1심의 심리범위 내에서 유무죄 판단도 하고, 양형도 1심의 양형 판단을 존중하여야 한다. 법리가 이런터라 내심 이 사건 1심 무죄가 바뀔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검찰의 태도가 수상했다.
우선 까닭없이 기일을 늘어뜨렸다. 이것저것 새로운 증거를 내고, 증인도 신청했다. 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자 검사를 2명 더 충원하더니(1명은 대검 공안부에서 파견), 공소장 변경을 시도했다. 기이한건 이적표현물을 소지 내지 반포했다는 골자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이적성의 징표되는 내용만 추가하는 것이었다. 이건 공소장 변경으로 볼수 없는 거다. 그런데도 검찰이 굳이 공소장 변경을 시도한건 어떻게든 1심을 파기하고 유죄를 받기 위함었다. 그러면서 대검에서 내러온 검사는 "이 사건은 결코 무죄가 돼서는 안된다"며 예의 사자후를 토해냈다.
항소심 결심공판때는 검찰은 애초 예정에도 없는 피피티를 하겠다고 해서 그럼 변호인에게도 피피티 변론의 기회를 달라고 요구해서 결심공판이 한번 더 연기되기도 했다.
그리하여 지난 1.25. 항소심 결심후 오늘 선고일을 잡았다.
5. 마침내 항소심도 무죄
두분 공소사실상의 이적표현물 반포 및 소지의 점은 보수적인 법관들이 보기에 따라서는 국보법 위반으로 볼수도 있는 것이었다. 더구나 항소심에 이르러 대검 공안부가 검사를 파견하여 공판검사가 3명이나 된 것도 재판부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난 최후변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민으로서 저는 국보법이 위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법률가이기에 이 법정에서는 저는 국보법의 실정법적 규범성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그 대신 실정법이 마땅히 지켜야할 헌법적 원칙에 벗어난 부분에 대하여는 법원이 단호히 그 위헌성을 시정해 주십시요. 비록 달팽이 걸음이나마 우리 법원은 이런 국보법의 악법, 위헌성을 조금씩 시정해 왔고, 그래서 국가보안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을 조금씩 확대해 왔습니다. 이 재판에서 유죄가 선고된다면 그런 법원의 노력이 헛되게 됩니다."
오늘 대구지법 항소부가 두분 선생님께 국보법 무죄를 선고했다. 두분 선생님께 축하의 말씀을 드리고 대구지법 항소부 판사님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2011년 수사때부터 이 사건을 변론해 온 변호인으로서 안도와 함께 짜릿한 보람을 느낀다.
검찰은 또 상고할 것이다.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그래도 오늘은 두분께서 술한잔 하시면서 편안한 밤을 보내시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