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 연회가 열리는 날, 부엌을 장악한 남자들! - 선묘조제재경수연도
재신들의 노모를 위해 요리하는 대령숙수는 남자?
조선 시대 궁중에서 우리는 요리하는 남성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준 것이 영화 <식객>에서 등장했던 ‘대령숙수’다. 대령숙수는 남자였으며 궁중의 행사 요리를 담당했던 책임 요리사였다. 그렇다면, 그를 도와주었던 사람들은 모두 여자들이었을까.
조선 시대의 궁궐 연회를 세심하게 묘사한 <선묘조제재경수연도(宣廟朝諸宰慶壽宴圖)>에는 요리하는 사람이 모두 남성이다. 1605년(선조 38) 4월 삼청동 공해(公廨)에서 13인의 재신(宰臣)들이 봉노계(奉老契)를 만들어, 70세 이상의 노모를 모시고 열었던 경수연을 담은 <선묘조제재경수연도>는 총 다섯 개의 장면을 나눠 담았다. 손님을 맞는 대문 안팎의 정경, 음식을 만드는 임시 부엌, 계원들의 회동 광경, 대부인에게 예를 올리는 모습, 주인공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연회 장면이 그것이다. 조찬소(造饌所)에는 가마솥에 불을 때고 분주히 음식을 만들고 나르는 모습이 표현됐다.
첫 번째 그림을 보면 그림을 대각선으로 나눠서 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담장을 중심으로 담장 밖에서 음식을 만드는 조찬소의 풍경과 담장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행사의 모습을 동시에 담아내는 재미있는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대문 주변에는 시종과 말이 쉬면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으며, 선비들은 연회장으로 들어가 둘러앉아 잔치를 즐긴다. 풍속화 속 개개인의 얼굴이 세심히 표현되고 있지는 않으나 그들이 각각 선보이는 동작은 흥겨운 연회의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그림들 중에 주목해야 할 부분은 두 번째 장이다. 야외 임시 부엌인 조찬소를 묘사한 그림에는 음식을 조리하거나 불을 때며 상을 차리고 이동하는 사람들 모두 남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남자만 있는 것일까? 이는 과거 전근대 시대에 남자는 공식적인 일을, 여자는 비공식적인 일을 맡아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궁중의 행사나 형식적인 직책 또한 남자들의 몫이었던 것. 이러한 이유로 평소 부엌일을 담당하고 살던 여성들이 궁중 부엌에서만큼은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이다.
또 하나 이 두 번째 그림은 전통 음식을 계승하고 있는 전문가들에게 귀중한 자료로 여겨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풍속화 속에 음식을 만들거나 부엌에 대한 묘사가 없었던 것과는 달리 <선묘조제재경수연도>에는 음식의 종류나 가짓수, 상의 형태, 독상차림까지 자세히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류의 기록화는 참여한 사람들과 나눠 갖기 위해 모사본을 만들곤 했다. 총 13명의 재신이었기 때문에 모사본도 최소 13개였을 것으로 추측해본다. 이러한 연유로 <선묘조제재경수연도> 역시 총 3개가 전해지고 있다. 원본 격은 홍익대박물관에, 18~19세기 그려진 것은 고려대박물관에, 19세기에 다시 모사한 것이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있다.
요리를 곁에 두고 즐겼던 조선의 남자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따르면 수라간에 있던 남녀의 비율은 14.2 대 1로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세종 시기 수라간의 출입 대전노비 388명 가운데 12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남성들이었다. 이때는 여성도 만들어진 음식을 차리거나 따뜻하게 만드는등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1453년(세종 15) 명나라에서 요리를 젊은 여성이 바치도록 요구가 있자, 왕과 신하들은 당황했다. “궁중 요리는 모두 남자들이 담당하는데 어떻게 한단 말인가?” 궁중 요리를 할 수 있는 여성들이 없었던 것이다. 명나라의 요구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속성으로 여성들에게 요리를 가르쳐서 보내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이 외에도 1903년 고종이 음식을 씹다가 이가 부러지는데 이에 대한 책임을 “숙수 김원근(金元根), 사환 김만춘(金萬春), 숙수패장 김완성(金完成), 각감 서윤택(徐潤宅)”에게 물어 처벌했다. 책임 요리사인 숙수 이하로 언급된 인물들은 모두 남성들이었다.
음식을 만드는 것만큼 조선 시대 선비들 중에는 맛을 즐기는 미식가들이 존재했다. 연암 박지원은 눈 내리고 찬바람 부는 가을·겨울에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식도락 모임 ‘난로회’를 결성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손수 밥을 지어 먹이기도 했으며 고령에도 직접 장을 담그기도 했다. 소설가 허균은 최초의 맛 칼럼니스트라 불릴 만큼 일찍이 미식가의 기질을 갖고 있었으며 그의 미식은 팔도를 누비며 체득한 토산품과 음식의 맛을 소개한 『도문대작』 안에 잘 드러나 있다.
글‧김헌식(문화평론가) 그림‧고려대학교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