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 순천만 ■, ■ 충주 탄금대 ■

이산저산구름 2016. 3. 2. 10:19

 

순천만 ■

 

 

 

 

지정번호 명승 제41호
소 재 지 전라남도 순천시 안풍동 1176 외
지정면적 3,015,859㎡
지 정 일 2008년 6월 16일

 

순천만은 남북길이 약 30㎞, 동서길이 약 22㎞, 고흥군·보성군·순천시 ·여수시 등과 접하며, 매우 복잡한 해안선을 따라 발달한 연안습지로서, 광활한 갯벌과 드넓은 갈대밭으로 이루어져 있다. 순천만의 북부에는 순천시가 위치하고 서북쪽에는 벌교읍이 있다.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여수반도와 고흥반도가 둘러싸고 있어 항아리 모양을 지니고 있는 순천만은 강 하구와 갈대밭·염습지·갯벌·섬 등 다양한 지형을 가지고 있고, 그 주변 육지에는 논(간척지)과 염전·갯마을·양식장(옛 염전터)·낮은 구릉·산 등이 인접하여 있다. 간조시에 드러나는 갯벌의 면적은 12㎢이며, 전체 갯벌의 면적은 22.6㎢이다. 또한 순천의 동천과 이사천의 합류 지점으로부터 순천만의 갯벌 앞부분까지에는 총 면적 5.4㎢에 이르는 넓은 갈대 군락이 펼쳐져 있다. 순천만은 조류와 갯벌 또한 흑두루미의 월동지로서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갈대가 고밀도로 단일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갈대 군락은 새들의 서식환경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은신처와 먹이를 제공하고 자연정화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순천만에는 자연과 지형적 여건으로 주로 뻘 갯벌이 형성되어 있다. 과거 상사댐이 생기기 이전에는 유량이 풍부하여 모래가 많은 하구였으나 댐 건설로 흐르는 물의 양이 줄어들면서 뻘과 갈대 등이 풍부한 지형으로 변화하였다. 순천만을 구성하는 다양한 자연 공간들은 자연스럽게 하천과 개울로 이어져 서로 어우러지며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넓게 펼쳐져 있는 갯벌과 나지막한 산이 함께하는 경관은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순천만 갯벌의 특징이다. 그리 크지 않은 한 지역에서 생태계형의 다양성과 생물 서식지 다양성을 모두 느낄 수 있어 남해안 지역에 발달한 연안습지 중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하며, 갯벌에 펼쳐지는 갈대밭과 칠면초 군락, S자형 수로 등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해안생태경관을 보여주는 경승지이다. 넓은 갯벌에는 갯지렁이류와 각종 게류, 조개류 등 갯벌 생물상이 다양하고 풍부하여 천연기념물인 흑두루미와 먹황새, 노랑부리저어새를 비롯한흰목물떼새·방울새·개개비·검은머리물떼새 등 11종의 국제 희귀조류와 200여 종의 조류가 이곳을 찾는 등 생물학적 가치가 크다.

 


순천만은 지구상의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해수면의 높이가 160m쯤 높아지면서 우리나라의 서해가 육지에서 바다로 변하고 한반도의 모양이 지금의 형태로 변하였다고 한다. 이때 기수 지역으로 바뀐 순천만은 강물을 따라 유입된 토사와 유기물 등이 바닷물의 조수작용으로 인하여 오랜 세월동안 퇴적되어 왔고, 그 결과 지금의 넓은 갯벌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순천만은 오랜 역사를 가진 만큼, 반만년 우리 조상들의 역사 속에도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삼국시대에는 지금의 도사·별량·해룡 등이 광활한 갯벌과 모래로 되어 있었음을 입증하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 조선시대에는 홍두 지역에 곡물을 저장하여 임금께 진상하는 해창海倉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홍두는 예전에는 갯벌이었으나 근세에 간척을 통해 들로 바뀐 곳이다.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 간의 경제개발로 순천만의 많은 갯벌이 간척되어 없어졌다. 그러나 만의 서부와 북부에는 아직도 세립질 퇴적물의 집적이 활발하여 갯벌이 점점 확장되고 있다.


자연 해안선이 온전하게 남아 다양한 생물이 서식할 수 있는 순천만은 2003년 12월 31일 해양수산부에 의해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고, 연안습지로는 최초로 2006년 1월 20일 람사르협약에 등록되었다.

 

 

 

■ 충주 탄금대

 

 

 

지정번호 명승 제42호
소 재 지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산1-1 외
지정면적 289,492㎡
지 정 일 2008년 7월 9일

 

충주 탄금대는 원래 대문산으로 불리어 오던 작은산으로 그 밑으로 남한강과 면하면서 기암절벽과 울창한 송림으로 인하여 경치가 아름답다. 절벽을 따라 남한강이 휘감아 돌고 울창한 송림으로 뒤덮여 있는 탄금대는 남한강과 달천이 합쳐지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강줄기의 모습은 강물이 내려다 보이는 벼랑에 위치한 열두대에서 가장 잘 보인다. 정상부에는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탄금정이 위치하고 있고, 탄금대 동쪽으로는 계명산과 남산이 솟아 있으며, 그 아래로 충주 시가지와 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지고 있다. 탄금대는 중생대 쥐라기에 관입된 대보화 강암류가 남한강과 달천에 의해 침식작용을 받으며 노출된 하식애에 위치하고 있다. 탄금대의 암석은 세립질의 우백질 규장암으로서 남한강 수직절벽이 조화를 이루며 좋은 자연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탄금대의 식생구조를 보면, 소나무·리기다소나무로 구성된 송림이 잘 발달되어 있고, 하층에는 붉나무·싸리·쪽동백·산초나무·뽕나무·생강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탄금대는 현재 도시공원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곳에는 신립(1546~1592) 장군의 충의심을 기리는 탄금대비를 비롯하여 신립장군순절비·조웅장군기적비·악성우륵선생추모비·충주문화원·야외음악당·충혼탑·감자꽃노래비·탄금정·궁도장·대흥사 등과 조각공원 및 체육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지역 내에서 접근하기 쉽고, 산의 정상부근까지 자동차로 접근할 수도 있게 되어 있으나, 인공의 공원시설이 과도하게 설치되어 있어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신라 진흥왕 시기인 537년에, 우리나라의 3대 악樂성聖중 하나인 가야국의 우륵이 가야국의 멸망을 예측하고 신라에 귀화하였다. 진흥왕이 기뻐하며 우륵을 충주에 거주하게 하며, 신라 청년 중에서 법지·계고·만덕에게 춤을 수습시켜 우륵을 보호하게 하였다. 우륵은 이곳을 우거지로 삼고 풍치를 즐기며 산상대석에 앉아 가야금을 타니, 그 미묘한 소리에 사람들이 모여 부락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로 연유하여 이곳을 탄금대라 부르고 있다. 우륵의 가야금과 관련된 지명으로서, 칠곡리(지금의 칠금동)·금뇌리(지금의 금능리)·청금리(지금의 청금정) 등의 마을 명칭은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 또한 열두대의 부근을 금휴포라고 부르는데 이는 우륵이 제자들과 가야금을 타다가 피곤하면 휴식을 취하던 곳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도순변사 신립 장군이 8,000여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이곳에 배수진을 치고 왜장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대를 맞아 격전을 벌인 전적지이기도 하다. 탄금대는 신립 장군이 전세가 불리하여 패하게 되자 천추의 씻지 못할 한을 품고 강에 투신자살한 순국 전적지이다. 충주지방의 절경인 탄금대는 이러한 아름다운 이야기와 신립장군의 충절이 서려 있는 역사의 장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