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

간체자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산저산구름 2016. 2. 3. 19:49


[ 중국어 익히기 ]


간체자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간체자? 이건 한자야, 뭐야?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신문은 한글 반 한자 반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신문에 기사나 논설을 실을 때, 우리말 중 한자로 쓸 수 있는 말은 모두 한글이 아닌 한자로 표기되었죠. 그래서 신문 기자들이 한자를 아는 것은 필수였고, 한자를 모르면 기자를 할 수 없는 시대였어요. 


그런데 한자를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기자들을 당황시키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1983년 5월 5일에 발생한 ‘중국 민항기 불시착 사건'인데요. 중국에서 납치된 민항기가 국경을 넘어 우리나라 강원도 춘천에 불시착한 사건입니다.


지금이야 사이가 가까운 중국이지만 그 당시에는 6.25 전쟁 때 북한을 도운 적성 국가였죠.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중국은 가까워도 갈 수 없는 먼 나라였습니다. 그럴 떄에 120여 명이나 되는 중국인들이 우리나라에 도착했으니 기자들이 몰려간 건 아주 당연하겠죠? 


중국말을 할 수 없던 기자들은 한자를 써서 필담으로 대화를 시도합니다. 중국 어느 도시에서 왔냐는 기자들의 물음에 그들이 쓴 글자는 '沈阳'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존재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던  간체자였죠. 


이 한자를 어떻게 읽는지 몰랐던 기자들은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沈阳’은 우리나라에서 쓰는 한자로 바꾸면 ‘瀋陽’ 즉, 심양(션양)이라는 중국 동북 지방에 있는 도시죠. 간체자는 중국에서 1964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었 때문에, 전쟁 이후에 중국과 교류가 없었던 1983년의 한국에서는 중국에서 간체자를 쓴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기자들이 어떻게 읽는지 모르는 것이 당연하죠. 아마 이 때 한국 사람들이 간체자를 처음 접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간체자의 제작 원리


 




자, 그럼 우리나라 기자들을 당황시킨 간체자의 제작 원리에 대해 알아 볼까요? 간체자라고 해서 모든 한자를 바꾼 것은 아니에요. 복잡하고 어려운 한자도 있지만, 원래부터 쉬운 한자들도 있어요. 一, 日, 月 같이 원래부터 획수가 적고 쉬운 한자들은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면 '中國' 은 간체자로 '中国'입니다. 中은 원래 한자 그대로지만, 國은 간체자로 쓰면 国으로 바뀝니다. 이렇게 비교적 획수가 많고 쓰기 어려운 한자들만 바꾸었어요.





간체자를 만든 규칙


 

쉽게 쓰는 간체자라고 해서 옛날부터 쓰였던 한자, 즉 '번체자'를 아무렇게나 간단하게 만든 것은 아니에요. 다음과 같은 규칙에 따라서 한자를 간단하게 만들었답니다.


[글꼴 생략형]

1. 고대 자형: 옛날 글자를 부활시켜 만들기

예) 從 → 从  ‘좇을 종(從)’ 


2. 필획 생략형: 글자의 복잡한 부분만 따로 떼어 간단하게 만들기

예) 變 → 变  ‘변할 변’


3. 대체 부호형: 글자 전체의 복잡한 구조를 단순한 부호로 대체해서 만들기

예) 歲 → 岁  '세월 세'


4. 일부 자 사용형: 글자의 한 부분만 따로 떼어서 만들기

예) 聲 → 声  ‘소리 성’


5. 새로운 자형 구성형: 글자 자체를 재해석 하여 '회의의 원리(한자 제작의 원리 중 하나)'로 만들기

예) 淚 → 泪  ‘눈물 루’ - 눈물은 눈에서 떨어지는 물이니, 물(氵)과 눈(目)


6. 초서체 사용형: 한자의 흘림체인 초서체의 글자를 사용해서 만들기

예) 樂 → 乐  ‘즐거울 락'


[발음 이용형]

1. 동음문자 사용형: 동일 음을 표기하여 두가지 의미를 동시에 갖게 만들기

예) 麵 → 面: ‘밀가루 면’ - 얼굴 면 面자를 빌려서 원래의 한자 麵는 사라지고, 面이 '밀가루'와 '얼굴' 이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짐


2. 소리 부호 교체형: 소리가 같은 것에 착안해 '형성의 원리(한자 제작의 원리 중 하나)
로 재해석하여 만들기

예) 歷 → 历 ‘역사 역’ - 힘 력力 역사 역 歷



중국 사람들의 문맹률의 줄여서 부국강병의 길을 가고자 했던 중국의 지도자와 학자들의 고민이 담긴 간체자 덕분에 중국어를 배우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번체자 중국에서 쓰는 간체자 두 가지 모두를 익혀야 하는 부담이 늘었어요. 하지만 간체자는 번체자를 바탕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한자를 많이 알고 있으면, 간체자는 금방 익힐 수 있답니다!



참고 : 한자의 역사를 따라 걷다(김경일), 살아 있는 한자 교과서(정민, 박수밀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