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향기에서 호스피스 운동
net향기에서
호스피스 운동
백승균 교수
사람이 살다가 죽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모든 다른 생명체와는 달리 사람만은 그 삶에서는 물론이고,
죽음에서도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특히 젊은 나이로 불치병에 걸려 3개월 내지 6개월 내로 사망할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다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큰 어두운 그림자로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신음하는 환자 자신의 분노와 허탈함은
말할 것도 없고,
그 가족들에게도 청천벼락이 따로 없을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과 젊은 아내, 그리고 노환에 시달리고 있는 양부모를 남겨둔 채
말기 암의 진단을 받아 사투를 벌려야 하는 한 가장(家長)의 아픈 마음이
어찌 천근만근이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그 충격적인 사망진단의 통보가 사람을 기겁하게 만들고,
그 고통과 아픔이 사람의 억장을 무너뜨리게 합니다.
그 당사자들의 슬픔과 당혹감은 말할 것도 없고,
밖에서 보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안절부절케 합니다.
사실 죽음이란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는 하나의 결정적인 운명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도 그러한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여사 일이 아닙니다.
특히 그러한 죽음이 다른 사람의 죽음이 아니고, 바로 나 자신의 죽음일 때,
내 자신이 그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하는 것은
무엇보다 사람이 살아가는 가운데서도 가장 심각한 최대의 사건입니다.
그렇다고 그러한 내가 나 혼자만도 아닙니다.
나를 나아주신 부모님과 처자식들이 있고, 형제자매들이 있으며,
수많은 친구들과 동료들,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 수두룩하게 쌓여있습니다.
이 수많은 업들을 그대로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나야 한다면,
그 스스로 아무리 눈을 감으려야 감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운명으로서 다가오는 그 죽음을 어느 누가,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고도로 발달한 현대의술의 덕분으로 수술과 항암(화학)요법 등의
온갖 수단을 다 이용하였지만, 그 결과는 여전히 속수무책이라고 할 때,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호흡기나, 심폐소생술 등 생명유지기술을 통하여
의식이 없는 생명까지도, 그 존엄성 때문에 나날을 연장시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는 우리 스스로가 심사숙고해야할 일입니다.
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사망자가 약 25만이고,
그중 약 6만 여명이 암으로 사망하고 있습니다.
그 가족까지를 다 포함하면 매년 약 100여만 명이 죽음의 고통을
직접-간접적으로 겪고 있다는 겁니다.
이처럼 말기질환은 환자 자신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에게도 사회경제적으로는 물론이고,
정신적으로나, 심리적으로도 많은 부담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람의 죽음을 각 개인들이 겪어야 하는 문제로서만
치부하여버리기보다는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진지하게 수용해야 합니다.
이때 아무리 갑자기 우리에게 다가온 말기 암의 진단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 충격은 어느 정도라도 줄일 수는 있을 것이고,
황당하게 허망해 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과 같은 사람들의 깊은 배려가 함께 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배려의 사실을 누가 싫다고 하겠습니까!
물론 더욱 분명하게 그 당사자의 심경은 우리 모두가 온 정성으로 위로해주고,
그 가족에게는 혼자가 아님을 더욱 적극적으로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이때 나 역시 어느 날 당할 수 있는 죽음이라 해도 외롭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고,
쓸쓸하기만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나의 죽음은 사회적 위엄성을 갖춘 죽음이 될 것이고,
그래서 품위 있는 죽음으로도 될 것입니다.
사람이 한평생을 사는데도 천하게 살지 않고 고귀하게 살아야 했다면,
사람이 죽을 때도 품위를 갖추어서 고귀하게 죽어야 합니다.
그러한 죽음을 준비하도록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돕는 일은
그 자체가 선하고 바람직한 일입니다.
이로써 임종환자의 마음과 정신이 더욱 깨끗해지고 맑아져서
산만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정신으로 그는 본연의 고향으로 되돌아갈 것이고,
그렇게 되도록 호스피스 활동은 최선을 다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어제오늘에만 있던 일들이 아닙니다.
이미 수천 년, 수백 년 이전부터 있어왔습니다.
인도에서도 있었고, 유럽에서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근년(1967)에 와서는 영국의 손더스(C. Saunders)라는 사람이
호스피스(Hospice)를 설립하여 그러한 역경의 임종환자들을 간호하면서
시작하였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 전파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호스피스, 즉 완화의료라는 말도 사람을 간호하고,
환자를 돌보는 ‘병원’(hospital) 내지 ‘환대’(hospitality)라는 뜻으로
성지순례자나 여행자들에게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하기도 하였습니다.
더욱 포괄적으로는 “죽음을 앞둔 말기환자와 그 가족을 사랑으로 돌보는 행위로서
환자가 남은 여생동안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평안하게 맞이하도록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영적으로 도우며,
사별가족의 고통과 슬픔을 경감시키지 위한 총체적 돌봄을”(노유자) 말합니다.
그래서 호스피스란 말 그대로 단순한 공간이나 장소 내지 휴식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임종하는 환자가 사람으로서의 존엄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평안히 맞이할 수 있도록, (즉 well-dying할 수 있도록)돌보는 활동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먼저 사람의 생명을 더욱 품위 있는 죽음으로 승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죽음을 다시 영생으로 부활시켜 인간의 인격과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성의 가치를 드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의료인들과 간호사들, 목회자들과 자원봉사자들,
또한 사회사업가들과 약사들을 비롯한 여러 계층의 많은 사람들이
이 호스피스 운동에 적극 참여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인류미래의 건전한 질적 인간사회를 우리 모두가
마련하여 나가게 됩니다.
촛불 하나가 적막 같은 어둠을 제치듯이,
당신의 선행 하나가 이 험한 세상을 아름답게 밝혀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호스피스 운동에 여러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걸 기대하여 마지않습니다.
오죽 했으면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 더 큰사랑이 없느니라”고 했겠습니까!
그러므로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well-ending이 바로 well-being의 시작임을 이해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