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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방언 말모이 6 - 김유정의 '동백꽃'은 '생강나무'였다? - 강원도 방언 '동백꽃' 이야기

이산저산구름 2015. 7. 22. 12:18

 

전국 방언 말모이

김유정의 ‘동백꽃’은 ‘생강나무’였다? 강원도 방언 ‘동백꽃’ 이야기

김유정(1908~1937)의 소설 ≪동백꽃≫은 1930년대 일제 강점기, 강원도 두메산골을 배경으로 순박한 소년∙소녀의 풋풋한 첫사랑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강원도를 배경으로 한 만큼 강원도 방언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요. 이 소설은 인생의 봄을 맞아 사춘기 풋사랑에 접어든 주인공들의 투박한 애정을 해학적으로 그려낸 김유정의 대표작입니다.

 
 

생강나무 꽃

 
 

≪동백꽃≫의 소녀는 마름(지주를 대리하여 소작권을 관리하는 사람)의 딸로 소작농 아들인 소년에게 관심을 보이며 애정을 표현합니다. 하지만 순진한 소년은 그런 소녀의 마음을 몰라주고, 이에 심술이 난 소녀는 자기 집 수탉과 소년의 집 수탉을 싸움 붙이면서 소년을 여러 차례 약 올립니다. 화가 난 소년은 급기야 마름 집 닭을 작대기로 때려죽이고 마는데요. 당황해서 울음을 터뜨린 소년에게 소녀는 자기 말을 들으면 일러바치지 않겠다고 달랜 후, 소년을 안고 흐드러진 동백꽃 속으로 쓰러집니다.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푹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김유정, ≪동백꽃≫ 중에서

 
 

소년과 소녀가 부둥켜안고 쓰러진 곳은 동백꽃이 활짝 핀 곳이었는데요. 그런데 이상하지요? 우리가 알고 있는 ‘동백꽃’은 장미처럼 꽃잎이 크고 둥근 빨간색 꽃인데, 소설 속 동백꽃은 ‘노란색’이라 합니다. 왜 그런 걸까요?

 
 
 

강원도의 ‘동백꽃’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의 꽃을 ‘동백꽃’ 또는 ‘산동백’이라고 불러왔습니다. 즉, 김유정 소설의 ‘동백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백꽃이 아니라 강원도의 방언으로, 실제로는 노란 꽃을 피우는 생강나무 꽃을 뜻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동백나무에서 동백기름을 추출해 부인들이 머릿기름으로 썼는데요. 날씨가 추워서 동백나무가 자라지 않는 중부 이북 지방에서는 동백나무 대신 생강나무의 까만 열매로 기름을 짜서 머릿기름으로 썼습니다. 그래서 생강나무를 ‘산동백나무’, ‘개동백나무’, ‘동박나무’ 등으로 불렀고 덩달아 생강나무 꽃도 ‘동백꽃’으로 불렀던 것입니다.

 
 

생강나무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인데요. 생강이 열리는 나무가 아니라, 잎과 가지에서 생강 냄새가 난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소설 ≪동백꽃≫에서도 소년과 소녀가 동백꽃 속으로 쓰러지면서 ‘알싸하고 향긋한 향기’를 맡았는데요. 실제로 생강나무의 꽃은 코를 찌르는 정도의 알싸한 향기가 난다고 합니다. 강원도의 방언을 모르고 소설 ≪동백꽃≫을 읽는다면 분명 고개를 갸웃할 부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강원도를 대표하는 문학가, 김유정

 

강원도 춘천에 가면 기차역인 ‘김유정역(구 남춘천역)’과 김유정 생가를 문학 마을로 조성한 ‘김유정 문학촌’이 있습니다. 강원도를 대표하는 문학가, 김유정을 기념하여 만든 것인데요. 김유정은 강원도 춘천의 한 작은 마을인 실레에서 태어났습니다. 김유정은 소설의 배경이 되는 마을의 모습처럼 순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산골에서 농민들의 생활을 직접 보며 자랐는데요. 그랬기에 당시 관념적이고 피상적인 농촌 소설과는 달리 실감 나는 농촌 소설을 쓸 수 있었습니다.

 
 

김유정 소설에 등장한 강원도 방언

 
 

1935년 신춘문예 당선으로 문단에 데뷔한 김유정은 대부분 농촌을 무대로 한 작품들을 내놓았습니다. 김유정은 1937년, 29세의 나이로 요절할 때까지 불과 2년 동안에 ≪봄봄≫, ≪금 따는 콩밭≫, ≪노다지≫, ≪소낙비≫ 등 30여 편의 작품을 남길 만큼 문학적 열정을 불태웠는데요. 특히 그의 소설은 600여 개의 강원도 방언 어휘를 담고 있어 우리 방언 연구에도 중요한 문학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 참고 자료
기태완, ≪꽃, 들여다보다≫, 푸른지식, 2012.
이선영, ≪리얼리즘을 넘어서≫, 민음사, 1995.
박성희, <김유정 소설의 어휘 연구 : 농촌 배경 작품을 중심으로>,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