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
문인이 말하는 한글, 아름다운 문장 19 - 평론가 송종원 편, 사랑(김수영)
이산저산구름
2013. 12. 18. 11:26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 김수영, 〈사랑〉 전문
‘너’에서 ‘너의 얼굴’로 변하는 순간, 존재의 동반자인 불안은 피어오르고,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찰나와 같이 한 세계의 명확한 경계가 되살아나며, 영원에 대한 당신의 관념은 번개처럼 금이 가고 만다. ‘너의 얼굴’이라는 구체는 그렇게 ‘너’라는 추상의 거짓을 폭로한다. 또한 그것은 불안한 나를, 못 견디게 외로운 나를, 우울하게 비춰 보이며 결국에는 늘 처음 바라본 듯 생경한 슬픔을 나에게 제공한다. 그래서 너의 얼굴은 그렇게 똑바로 쳐다보기가 힘든가보다, 그래서 나는 늘 얼굴을 그리며 허공을 만지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