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

어떨 때는 ‘량’이고, 어떨 때는 ‘양’이고? 기준이 뭘까요?

이산저산구름 2013. 11. 20. 12:32

어떨 때는 ‘량’이고, 어떨 때는 ‘양’이고? 기준이 뭘까요?

 

어떨 때는 '량'이고, 어떨 때는 '양'이고? 기준이 뭘까요?

 
 


 


이번 호에서는 한글 맞춤법 ‘제5절 두음 법칙’에 딸린 제11항을 살펴보겠습니다.

 
 
 


‘랴, 려, 례, 료, 류, 리’로 시작되는 한자어는
‘야, 여, 예, 요, 유, 이’로

역사, 이발

 
제11항 한자음 '랴, 려, 례, 료, 류, 리'가 단어의 첫머리에 올 적에는 두음 법칙에 따라 '야, 여, 예, 요, 유, 이'로 적는다.앞을 취하고, 뒤를 버림.
 

지난 호에 설명했듯이, 한자어의 단어 첫머리에서는 [ㄹ]이 실현되지 못합니다. 뒤에 어떤 모음이 연결되느냐에 따라 [ㄴ]으로 바뀌는 데에 그치거나 더 나아가 아예 탈락해 버리거나 하는 것이지요. ‘ㅑ, ㅕ, ㅖ, ㅠ, ㅣ’ 등의 모음과 연결될 때에는 [ㄹ]이 완전히 탈락합니다. 예를 들어, ‘旅行’의 본음은 ‘려행’이지만 이 조항을 적용하여 ‘여행’으로 적는 것이지요. 의존 명사로 쓰인 ‘里’와 ‘理’는 비록 단어의 첫머리에 쓰이긴 했으나 실질적으로는 항상 어떤 말의 뒤에 나오므로 두음 법칙을 적용하지 않습니다.

 
 
 


모음이나 ‘ㄴ’ 받침 뒤에 이어지는
‘렬’, ‘률’은 ‘열’, ‘률’로

치열, 백분율

 

 

[붙임 1]은 별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列, 烈, 裂, 劣’ 등과 같이 본음이 [렬]인 한자와 ‘律, 率, 栗, 慄’ 등과 같이 본음이 [률]인 한자는 단어 첫머리에 나오지 않는 경우에도 [ㄹ]이 탈락할 때가 있습니다. 이들 한자가 모음이나 ‘ㄴ’ 뒤에 나오는 경우에는 [ㄹ]이 탈락합니다. ‘卑劣’을 본음을 따라 [비ː렬]로 발음하지 않고 [ㄹ]을 탈락시켜 [비ː열]로 발음한다든지, ‘陳列’을 본음을 따라 [진ː녈←진ː렬]로 발음하지 않고 [지ː녈←진ː열]로 발음한다든지 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말하자면, 엉뚱한 데에 두음 법칙이 적용되는 셈이지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언중들이 그렇게 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에 소리를 따라 적도록 정한 것입니다.

 

 

성명은 성과 이름이 합쳐진 것입니다. 따라서 한자로 된 이름의 첫 글자에도 두음 법칙을 적용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金龍哲’은 ‘김용철’로 적지만 ‘金哲龍’은 ‘김철룡’으로 적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원리는 이름이 외자인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이름이 ‘金龍’이라면 ‘김룡’이 아닌 ‘김용’으로 적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를 따르면 ‘배수진’ 하면 떠오르는 임진왜란 때의 장수 ‘申砬’도 ‘신입’으로 적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인물은 한글 맞춤법 제정 훨씬 이전부터 ‘신립’으로 널리 불려 왔다는 점을 현실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관용을 인정하여 예외적으로 ‘신립’으로도 표기할 수 있도록 한 것이지요. 즉, ‘신입’으로 적는 것이 원칙이고 ‘신립’으로 적는 것도 허용된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최인/최린, 채윤/채륜, 하윤/하륜’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적인 인물의 이름에만 국한된다는 점, 두 자 이상의 이름에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점, 현실적으로 성을 적을 때에도 두음 법칙을 적용하지 않는 사례가 많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조항은 조금 부족해 보입니다. 앞으로 한글 맞춤법을 개정한다면 언어 현실을 좀 더 포괄할 수 있도록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국제연합’을 줄여 말할 때는 [국연→구견]이라 하지 않고 [국련→궁년]으로 소리를 냅니다. 즉, 본말에서는 두음 법칙이 적용되는데 준말에서는 두음 법칙이 적용되지 않은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소리를 따라 적는다는 것이 [붙임 3]의 취지입니다.
지난 호에서도 설명한 바 있습니다만, 어떤 두 말을 합쳐 한 단어로 쓸 때에는 우선 각각의 요소에 두음 법칙을 적용한 후에 합쳐 쓰면 됩니다. 즉, ‘旅行’이 우선 ‘여행←려행’으로 바뀐 후에 ‘해외’와 합쳐져서 ‘해외여행’이 되는 것이지요. 다만, 두 말이 합쳐진 다음의 몇몇 단어는 사람들의 발음 습관이 본음의 형태로 굳어졌다고 보아 예외를 인정하므로 따로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한자어 뒤에서는 ‘량’
고유어, 외래어 뒤에서는‘양’

산소량, 구름양, 알칼리양

 

끝으로, ‘糧’의 표기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糧’은 단독으로 쓰이거나 단어의 첫머리에 쓰일 때는 당연히 ‘양’으로 적습니다. 그런데 ‘糧’이 둘째 음절 이하에서 쓰일 때에는 어떤 말 뒤에 쓰이느냐에 따라 표기가 달라집니다. 한자어 뒤에서는 ‘량’으로 적고, 고유어나 외래어 뒤에서는 ‘양’으로 적어야 합니다. 고유어나 외래어 뒤에 결합한 ‘糧’에는 두음 법칙을 적용하여 적어야 한다는 점, 꼭 알아 두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