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한국보다 문명국인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이산저산구름 2012. 12. 17. 12:40

한국보다 문명국인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자신들의만 숫자, 문자 수천년전부터 사용

가난하지만 웃을 줄 아는 나라

 

' 아프리카 정치1번지’라 불리는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며칠간 다녀왔다. 이집트에서 18개월

동안 살아보고 리비아·튀니지 등 북아프리카 국가를 잠깐씩 경험했었지만, ‘비아랍 아프리카’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역시 아랍권 아프리카와는 많이 달랐다.

IMG_9603.jpg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문자를 가진 나라인 에티오피아는 비록 경제적으로는 가난하기 그지없지만, 수많은 이야기를 지닌 곡절있는 나라였다. 우선 건국되는 사연부터 남다르다. 3천년 전 이스라엘 솔로몬 왕과 아프리카 쉬바 여왕과의 사이에서 때어난 혼혈아가 나라를 세웠다고 에티오피아인들은 믿는다. 더불어 모세의 십계명 돌판과 아론의 지팡이 그리고 이스라엘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 먹었다는 ‘만나’ 등이 담겨 있는 성궤가 에티오피아 북부 악숨에 있다고 한다. 독일의 함부르크 대학교에서 수년간 이러한 ‘설’을 과학적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 모든 이야기가 사실여하를 떠나 신기·흥미롭기 그지 없다. 이슬람교의 쿠란, 기독교의 구약성경, 유대교의 토라에서 조차 에티오피아가 언급될 정도이니, 아프리카 대륙의 변방에 있는 듯한 이 나라가 고대 때부터 얼마나 문화·경제·외교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디스아바바를 돌아다니면서 나에게 가장 매력적이었던 것은 그들의 ‘문자’였다.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문자를 가진 나라답게 그들은 자신들의 문자로 도시를 도배해놨다. 이들은 고대 히브리어와 같은 계열인 셈어족인 ‘게에즈(Ge’ez)’ 문자를 쓴다. 히브리어나 아랍어처럼 자음을 단어의 근간으로 삼는다. 모음은 거의 표시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나무’를 ‘ㄴㅁ’라고만 쓰는 식이다. 히브리어나 아랍어처럼 수천년이 흘러도 언어가 쉽사리 왜곡되지 않는 이유다. 언어학적으로 언어는 대체로 자음이 아닌 모음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고 한다. 우리말에서 과거에 ‘개’를 뜻하는 ‘가이’가 자음인 ‘ㄱ’은 변하지 않은채 ‘ㅏ’ ‘ㅣ’등 모음만 변한 것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문자를 가진 나라여서 그런지 이들은 자기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게에즈’를 뿌리로 삼아 현재 사용하고 있는 ‘암하릭’이란 이들의 언어는 문명의 상징이었다. 수천년동안 자신들의 종교를 잃어버리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고 지켜올 수 있었던 것도 ‘문자’라는 강력한 연결고리로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은 숫자마저 아라비아 숫자, 인도숫자, 로마숫자가 아닌 자신들만의 것을 썼다. 지금은 아라비아 숫자와 겸용하고 있다. 한국이 1443년 조선왕조 4대 임금인 세종 때에서야 ‘한글’이라는 문자를 갖게됐는데, 에티오피아는 수천년전부터 자신들의 언어에 숫자까지 만들어 썼다고 하니 자부심이 괜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이들은 고대사뿐 아니라 근현대사도 곡절있다. 해일 셀라시라는 왕은 6·25한국전쟁에 군대를 보낼 정도로 나라를 강성하게 통치했으나, 냉전이 한창이던 1974년 공산주의자에 의해 물러난다. 자유주의를 지지하던 나라에서 갑자기 쿠데타가 일어나 졸지에 공산주의 국가가 된 것이다. 그러다 1980년 대기근이 찾아와 민심이 흉흉해지고 1990년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면서 공산주의국가로의 매력이 사라지자, 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다. 선거를 통해 멜레스란 총리가 뽑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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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라시 왕이 살던 왕궁을 찾았다. 짙은 눈썹과 마른 체격이 강단있는 인물이라는 인상을 줬다. 그의 궁은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당시 이탈리아, 독일 왕으로부터 받은 선물 등이 진열돼 있다. 그는 6/25한국전쟁 때 한국을 돕기 위해 5차례에 걸쳐 6000여명의 에티오피아 군을 파병했다. 한국 춘천에는 이들의 참전을 기리는 비가 있다. 아디스아바바에도 있다.

이 총리는 얼마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지한파’로 한국과 가까웠다. 한국의 ‘새마을 운동’을 에티오피아의 발전 모델로 삼을 정도였다.

짧은 시간, 제한된 구역밖에 돌아다니지 못했지만 한가지 더 인상깊었던 것은 이들의 미소였다. 20도 정도의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인 아디스아바바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얼굴이 밝았다. 오래된 자동차의 매연과 정돈되지 않은 도로의 먼지가 가득찬 도시였지만 이상스레 사람들은 웃으며 거리를 활보했다.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왠지 1년 국민소득이 1000달러정도밖에 되지 않는 이 사람들보다 한국인의 자살비율이 더 높을 것 같았다. 이들에게 가난은 사는데 좀 불편할 뿐이었다.

‘에티오피아’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어로 ‘볕에 살짝 그을린 얼굴’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듣고 보니 왠지 피부색마저 이들의 민족성을 드러내는 듯 했다. 아주 까맣지도 하얗지도 않은...누군가에게 영악스럽게 아주 못되거나, 바보처럼 호락호락 당하지도 않는...그러면서도 태양 아래 땀 흘릴 줄 아는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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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스아바바 성삼일위체 교회에서 에티오피아 여인이 암하릭어 성경을 읽고 있다. 암하릭은 히브리어, 아랍어, 현지 아프리카어 등의 영향을 골고루 받은 언어라고 한다. 이들은 자신들의만 숫자도 따로 가지고 있으며, 달력도 '바하리 하삽'이라는 에티오파만의 달력도 따라 사용한다.


이들의 언어로 ‘아디스 아바바’는 ‘새로운 꽃’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있었던지라 뭐라 한 마디하기조차 겸연쩍지만,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이 나라에 이들이 붙인 수도 이름처럼 부흥의 새로운 꽃이 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프리카에 마음을 쏟을 수 있는 관심과 애정을 가져다준 에티오피아여, ‘아무 싸까날락(고맙습니다).'

뉴스카라반의 중동 천일야화

돌새 노석조 stonebird@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