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날씨가 후텁지근하다. 집에 있으면 그래도 시원하다. 통 크게 우리 집 정원이라고 내세우는 불암산에서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주어서다.
덕분에 아직 선풍기를 꺼내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덥기는 더운 것이 땀이 많이 흐른다.
남편이 남해 고사리를 넣고 육개장을 끓여보란다. 그럴까? 뜨끈뜨끈한 육개장에 밥 말아 먹으면서 땀을 뻘뻘 흘린 뒤 샤워를 하면 개운한
느낌이 이열치열로 더위를 이기는 것일 게다. 바로 시장에 가서 숙주나물과 소고기를 사 와서 육개장을 끓였다. 궁중의 육개장은 소의 양과 곱창도
한데 넣고 끓인다니 고급음식이다.
육개장은 원래 한여름 복날에 먹는 서울의 향토 음식으로 알려졌다. 육개장을 먹을 때 흘리는 땀은 더위에 흘리는 땀과는 다르다. 즉
체내에 축적된 불필요한 노폐물이나 분비물을 배설해 주고, 혈액 순환을 잘 되게 해주며 체내의 여열을 발산시켜 준다. 이렇게 땀을 쭉 흘리고 나면
온몸이 개운해짐을 느낄 수 있다.
친정엄마 떠나시고 한동안은 육개장을 먹지 못했다. 쉰두 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신 엄마를 보내드리는 동안 장례식장에서 풍기던 냄새
때문이었다. 엄마를 잃은 슬픔 속에서도 갑자기 맹렬하게 찾아오는 허기도 나를 아프게 했다.
‘밥 먹고 기운 내서 엄마 잘 보내드려야지.’ 하고 권하기에 못 이기는 척 밥상에 앉아서 밥을 먹으면서 자신이 한없이 밉게 여겨지던
아픈 기억...그래서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새록새록 찾아오는 슬픔이 그 순간에도 허기를 느끼던 나를 용서할 수 없게 하였다. 애꿎은 육개장을
탓하면서 먹지 못하다가 다시 육개장을 먹기 시작한 것은 꽤 시간이 지나서였다.
동네에서 일하면서 행사에 갔을 때 커다란 통에서 부글부글 끓는 것을 밥이 든 그릇에 퍼주는 것을 만류하지 못하고 받아먹었는데 뜻밖에 참
맛있었다. 집에서 먹는 것보다 동네잔치나 모임에서 먹는 것이 특별하게 맛있는 것은 커다란 솥에 푹 끓여서 많은 재료가 서로 어우러져 깊은 맛을
내기 때문인 것 같다.

재료/ 아롱사태, 고사리, 대파, 숙주나물, 고춧가루, 다진 마늘,조선간장, 참기름, 소금

기름이 둥둥 뜨는 것이 싫어서 내 식으로 만드는 육개장이다.
우선 고사리를 삶는데 쌀뜨물에 담가서 불린 뒤 삶으면 시간도 불도 절약된다.
삶은 고사리는 물에 잠시 담가서 씁쓸한 물을 제거한 뒤 건져둔다.
세일 판매하기에 아롱사태를 사 와서 덩어리째 잠시 물에 담가서 핏물을 빼고
펄펄 끓는 물에 넣고 푹 끓여서 익힌 뒤 결대로 찢는다.
대파도 길게 썬다. 흰 부분은 절반 갈라서 넣는데 푸른 잎은 바락바락 주물러 씻어서
끈적한 진액을 없앤 다음 소고기를 삶은 물에 넣고 끓인다.
7cm 정도로 자른 고사리에 고춧가루, 다진 마늘, 조선간장, 참기름을 넣고
살살 버무려서 무친 뒤 국물에 넣고 끓인다.
어느 정도 어우러지게 끓인 뒤 뚜껑을 열어 둔 상태에서 숙주나물을 넣는다.
부족한 간은 소금으로 맞춘다.

